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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김명호 칼럼] 그의 오심을 애타게 기다리는가

사진: Unsplash의 An Tran

요한계시록 일곱 번째 이야기(7): 1:7-8 “재림의 확실성”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주제인 “오시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내용을 확실함으로 단호히 선포(exclamation)하고 있다. 이 선포에는 역사의 종말을 가져오는 그 영광스러운 주의 날에 대한 그의 뜨겁고 열렬하고 간절한 기다림이 베어 있다(계 22:20). 히브리어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 알렢과 타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파와 오메가로 호칭하시며 영원히 존재하시는 자신의 영원한 통치, 절대 주권으로 다스림을 주님이 친히 선포하시고 계신다.

1.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오시고 계시는 주님은 구름을 타고 오신다. 성경에 나타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창 9:14, 눅 9:35, 시 97:2).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구름 기둥으로(출 13:21-22, 민 10:34), 시내산에서는 빽빽한 구름가운데 임재하셨다(출 19:16). 성막과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으로 가득하였다(출 40:37, 신 31:15).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리스도는 단 7:13-14의 예언 성취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단 7:13-14)

심지어 그 분의 이름은 “광야에서 하늘의 구름을 타는 자”이시다. “하나님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하늘을 타고 광야에 행하시던 이를 위하여 대로를 수축하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니 그의 앞에서 뛰놀지어다”(시 68:4). 그 분의 이름이 하늘의 구름을 타시는 자인 만큼 주님이 공중 재림하실 때 신실한 교회는 구름과 함께 오를 것이다(살전 4:17). 하늘에 구름 속을 뚫고 날아가는 비행기를 타는 일도 신나는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는 주님과 함께 올라간다니 상상만 해도 너무 기대되고 신난다.

2. 모두가 다 본다

그가 구름을 타고 공중에 강림할 때 모두가 다 그 분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것이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참조. 마 26:64, 막 13:26, 14:62, 눅 21:27) 마운스(Robert H. Mounce) 교수가 말한 것처럼, 주님 오시는 그 날에 “비밀스러운 휴거”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본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찌른 사람들 조차도 본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 분 때문에 슬피 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스가랴 12:10절 말씀의 예언의 성취이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슥 12:10)

3. 그러하리라 아멘(ναί, ἀμήν)

사도 요한은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고 계시며 그 날에 모든 사람이 볼 것이며 그 때는 모든 족속이 오시는 그 분으로 인하여 애곡할 것을 말하면서, 이 성경의 핵심 진리를 헬라어와 히브리어, 두 단어를 사용하여 끝을 맺는다. 여기에는 애타는 간절한 소망과  확신의 기도가 담겨있다. “그러하리라 아멘”(ναί, ἀμήν)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닌 두 단어를 결합하여 보다 한 의미를 강하게 나타내는 히브리어 문학적 기법을 헬라어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렘 29:11, ‘미래와 희망’).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ναί, ἀμήν. כֵּן יִהְיֶה אָמֵן (So it is to be, Amen)

“ναί”(나이) 라는 헬라어 단어는 어떤 사실을 확증하는 단언의 외침이다(yea! verily, truly, assuredly, even so). 마 9:28절에 예수께서 맹인들의 눈을 고쳐주실 때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ναί)” 계 1:7절의 히브리어 번역은, כֵּן יִהְיֶה אָמֵן (켄 이흐예 아멘, So it is to be, Amen), 본문이 주고자 하는 의미를 세 단어가 함께 결합하여 어떤 번역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마음에 다가오게 한다. 이 고백을 듣노라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의 함성을 지를 수 밖에 없다. “주님, 그렇지요. 그렇구 말구요, 주님 오시지요? 아니요! 지금 오고 계시지요! “כֵּן יִהְיֶה אָמֵן”(켄 이흐예 아멘!) 세 단어 모두가 다 강조 단어이며 두 단어는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이 되어 있다. 하나님의 두 이름(יִהְיֶה [이흐예] /  אָמֵן[아멘])을 걸고, 오시고 계시는 주님을 확증하여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출 3:14, 계 3:14). 얼마나 심장 뛰는 감동인가!

4.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계 1:8절은 선행하는 구절에 이어 다시 재림이 확실함을 문서에 서명을 하듯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인(印)을 친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8)

“그 알파와 그 오메가”(τὸ Ἄλφα καὶ τὸ Ὦ) 이신 주님은 지금 현존하시며 과거에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다. 알파와 오메가란 헬라어 처음과 마지막 글자로 처음과 끝을 의미하는 구약의 사상을 그대로 반영한다(계 22:13).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처음부터 만대를 불러내었느냐 나 여호와라 처음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사 41:4)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라 (사 44:6)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 이라 (사 48:12)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이라고 하는 편지의 서론(1:1-8)을 마무리하면서 그 어느 누구도 재림을 비웃거나 먼 미래의 일로 일어날 것이라 여기지 못하도록 “알파와 오메가”라는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약속대로 오실 신실한 주님의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하고 있다. 알파와 오메가, 자신의 영원한 통치를 강조한 것이다. 이 편지를 읽고 듣는 순간 주후 1세기 믿음으로 인해 핍박 받는 소아시아 흩어진 나그네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실 뿐만 아니라 능히 그 고난을 이길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그 분이 다시 오실 때는 유약한 모습을 가진 구원자가 아닌 백마를 타고 공의의 왕으로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계 19:11). 그 분이 다시 오실 때는 열방의 모든 족속이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그를 높이고 그를 만왕의 왕으로 섬길 것이다(시 2:10-12).  

5. 장차 올 자요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의 전형적인 표현을 요한계시록의 특성에 맞게 표현을 하였다.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אֶהְיֶה [에흐예], [에고 에이미]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미래에 계실 여호와 하나님”을 “장차 올 자”로 바꾼 것이다. 사실 헬라어 본문은 “장차 올 자”라는 본문이 “현재 오시고 계시는 주님으로” 되어 있다.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호 에르코메노스) 그러니까 현재의 표현인 것이다. 미래를 삭제하고 두 번의 현제 시제를 사용하여 독특하게 주님의 재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주님 오시고 계시는 임박성을 강조한 것이다. 임박성이 없으면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한다. 재림을 사모하는 임박성이 종말이 가까울수록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시간법을 배워(벧후 3:8)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사모해야 한다(딤후 4:8).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는,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이 사모함이 있어야 한다. 이 애타는 사모함이 없는 사람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이 사상을 애절하게 표현해 낸 구약의 말씀이 아가서이다. 주님을 사모하는 병(חוֹלַת אַהֲבָה [홀라트 아하바]), 그의 오심을 애타게 기다리다 이 병에 걸린 자가 주님을 참 사랑하는 자이다. 이 병에 걸린 자는 세상의 모든 두려움과 병을 이긴다.

내가 사랑하므로 이 생겼음이라 (아 2:5)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이 났다고 하려무나 (아 5:8)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 42:1-2)

주의 오심이 가까운 이 때에, 그대는 도대체 무슨 병에 걸려 살아가는가! [복음기도신문]

김명호 | 헤브론선교대학교 성경언어대학 교수. 복음과 기도의 기초 위에 성경의 원어 연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한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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