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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칼럼] 두 가지 폭우, 타이밍의 하나님

사진: 원정하

인도 뭄바이에는 선한목자교회 단기 선교팀이 다녀갔습니다. 정말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기간에 이 땅에 왔는데, 놀랍게도 비를 거의 맞지 않으며 온갖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빈민가들에서의 야외 사역의 경우, 비가 쏟아지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평소에 둘씩 다니던 저와 현지 청년 팀이라면 비가 와도 얼마든지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현지 성도들의 오두막 같은 곳에 들어가서 비를 피하며 사역을 이어 나가거나, 혹은 어린이 사역을 가정 심방으로 전환할 수도 있고, 정 안되면 다음날을 기약하며 철수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서른 명에 가까운 대규모의 팀이, 많은 물자를 갖고 버스로 이동해 와서, 이미 정해진 프로그램을 해야 하는데, 다음 날도 기약할 수 없다면, 그런데 수시로 폭우가 쏟아진다면, 우리는 오직 주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8/9일, 여독이 미처 풀리지 않은 몸으로 ‘크리슈나 스틸’ 빈민가에서 첫 사역을 할 때부터 시작해서 다음날(8/10) 마히마 학교의 세 건물을 오가며 사역을 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정말 1, 2분 단위로 우리가 내리기 전까지 비가 쏟아지다가, 사역 중에는 그치고, 우리가 버스에 타면 비가 쏟아지게 해 주셨습니다. 준비해 간 우산이나 비옷이 거의 쓸 일이 없을 정도였지요.

사진: 원정하

심지어, 저녁의 ‘샬미나가르’ 빈민가에서의 달란트 시장 사역에서는 더욱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 빈민가는 예전에 마술과 귀신 들림, 살인 등의 이슈로 어두운 곳 중 가장 어두운 곳이었습니다. 코로나 시절의 긴급 구호 사역 때조차 방해 세력이 쌍욕을 하며 덤벼들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의 사역에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1. 달란트 시장처럼 물건을 많이 나누어 주는 사역 시, 거의 언제나 “왜 우리 아이(달란트가 없는)에게는 아무것도 안 주냐?”며 항의하는 이들이 몰려옵니다. 실내의 주일학교 공간에서 하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을 광장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2. 마을 광장 중심에 작은 건물이 달란트 시장 장소로 주어졌는데, 기본적으로는 중립적인 건물이지만 주로 철마다 바뀌는 힌두교 축제의 우상 안치소로 쓰이는 곳입니다. 다행히 우상은 치워졌지만, 원래 그 건물을 관리하던 이들은 주변에서 계속 우리와 함께 있어야 했습니다.(조금 도와 주기도 하구요.) 그러니 그들이 불필요한 참견을 하거나, 종교적인 이유로 시비를 걸 수도 있었습니다.

3. 다행히 달란트 시장의 매대는 건물 안에 설치했지만, 대기자들은(한 번에 열 명씩, 3분씩 들어옵니다.) 노상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질서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지만 비가 쏟아지면 행사 자체가 무산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많은 게 아닌가?’ 싶었을 정도의 우리 팀원들의 존재가 그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선한목자교회의 29명과, 파란색 조끼 유니폼을 입은 마히마 교회 청년 열두 명이 요소마다 버티고 서 있으니, 서 있는 자리를 배치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인간 울타리가 되고, 이동 유도선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시비 걸지 못했고, 혹여 우리 팀의 여성들을 건드리려는 사람은 찾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사진: 원정하

그렇다고 위압적인 얼굴로 소리 지르며 하는 게 아니라, 달란트 시장 입장하는 아이들, 선물을 한아름 안고 퇴장하는 아이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아낌없이 쏟아내는 엔돌핀의 역할도 잘 해 주었지요. 심지어 신당 관리인(?)이라 할 만한 형제가, 서너 번이나 진지하게, ‘나도 당신들의 그룹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성공적인 사역이었습니다. 물론 비도 오지 않았고요.

사진: 원정하

그렇게 달란트 시장이 끝난 후, 그 자리에서 우리 선한목자교회 팀의 복음 드라마와 힌디어 합창이 시작되었습니다. 샬미나가르 슬럼처럼 9년째 연 30회 이상 방문하면서도, 마을의 중심, 우상 안치소에서 복음 프로그램이 이루어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과거 순회 의료선교는 한 적이 있습니다만.

방금 전 달란트 시장의 흥이 남아있었기에, 모두 거부감 없이 행복하게 복음 드라마를 보고, 찬양에 반응해 주었습니다. 저로서는 선교 초년병 시절, ‘아닐’ 형제와 단둘이 이곳에 어린이 사역을 세우러 와서 겪었던 수많은 시간들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사진: 원정하

그 아닐 형제가, 선한목자교회 팀의 공연이 끝난 후 전체 마을 주민들에게 마이크를 잡고 힌디어로 대표 기도를 하는 모습이 정말 너무나 찬란했습니다.

그리고 단체 사진을 찍고 가려는 순간, ‘김치’를 외치며 사진을 찍으려는데, 몇몇 마을 청년이 ‘스리 람! 스리람!(거룩하신 라마신!)을 외치고, 여러 힌두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해치려 했습니다. 얼마든지 큰 사건으로 퍼질 수 있는 상황, 제가 그 청년들 쪽으로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순간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원정하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팀원들이 부랴부랴 우비를 꺼내고 우산을 챙기는 사이에, 단체 사진과 마지막 인사는 약간 흐지부지되었고, 마을 힌두교 청년들은 비를 피해 집에 갔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자연스럽게 몰아내 주신 것이지요. 그리고 우비를 다 뒤집어쓰고, 우산을 꺼내서 조별로 건물 밖에 나오는 순간 비는 그쳤습니다. 100미터도 안 되는 길조차, 비를 안 맞은 것입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한 선생님은 또 눈물을 터뜨리시더군요. ‘하나님, 이 정도 비는 맞아도 되는데, 너무 감사해요.’ 하구요.

하늘에서 떨어졌어야 할 비들은, 그 대신 우리 팀원들의 눈에서 내리곤 했습니다. 그동안 수십 개의 팀을 맞이해 봤지만, 이토록 눈에서 비가 많이 흐르는 팀은 처음 보았습니다. 마히마 학교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마다, 빈민가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기도 시간마다, 긍휼의 눈물, 기쁨의 눈물, 감사의 눈물, 감격의 눈물. 이토록 사랑이 넘치는 이들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복음기도신문]

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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