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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팀 켈러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3) : 기독교 변증

사진: Fun_loving_Cindy on pixabay

존경하는 목회자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기지만 팀 켈러의 부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가진 독보적인 영역 때문일 것이다. 마치 기독교 안의 한 영역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특히 팀 켈러의 변증적 설교와 가르침은 그의 탁월한 능력이 더욱 돋보인 영역이었다.

포스트모던 시대

레슬리 뉴비긴은 영국 교회의 부흥기에 인도 선교사로 갔다가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영국이 마치 자신이 처음 인도에서 마주했던 그 사회처럼 이교도의 사회로 변해 버렸다고 그의 다윈주의 사회에서의 복음에 술회한다. 뉴비긴은 영국 교회가 그렇게 쇠퇴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 문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 분석하면서 “서구 교회의 과제는 계몽주의 이성의 허망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다원주의 사회에서 일방적인 기독교의 선포는 자칫 교만으로 비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1]

팀 켈러도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의 하나는 이전 시대에는 없었던, 기독교 신앙에 점점 더 적대감을 드러내는 문화라고 말한다. 이제는 비기독교 문화가 아니라 탈 기독교 문화 시대에 직면했다. 이전 시대에는 교회의 가르침과 일반 사람들의 생각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지만, 오늘날은 초월과 초자연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은 문화적 분위기 때문에 신성한 질서 체계(sacred Order)를 무시하는 경향을 띤다.[2] 한국 교회에서 유행했던 사영리, 브릿지 전도법은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서 일대일로 전도하는 방식이었다. 가가호호 방문해서 전도하기도 했지만, 오늘날은 낯선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는 것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큰 저항이 있는 시대이다. 복음은 변하지 않지만,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시대마다 달라져야 한다. 팀 켈러는 복음의 접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복음의 접점(missionary encounter)을 마련하는 일은 (세상 문화를 배척하는 전략과 달리) 주변 문화와 연결점을 만들고(connects), (세상 문화에 동화되는 전략과 달리) 그 문화 속에 자리한 문제를 드러내며(confronts),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전략과 달리) 사람들이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도록 다가가야 한다(converts). … 세상과 같은 모습으로 그들과 연결되어야 하지만 또한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유지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돌아볼 뿐 아니라 그들을 섬겨야 하며 리드하되 진정으로 회개하고 변화되도록 이끌어야 한다.[3]

전제주의 변증

이런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팀 켈러는 변증의 방식으로 복음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변증학 교수였던 코넬리우스 반틸의 전제주의 변증을 뼈대로 자신의 변증 신학을 전개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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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gckorea.org

코넬리우스 반틸은 수업 시간마다 위의 그림을 그리고 수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생각은 큰 원인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성에 의해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반틸은 “하나님 안에는 절대적 진리의 체계가 있어서 하나님은 비논리적이시지 않으시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전제로 하지 않는 모든 인간의 생각은 모순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4]

전제주의 변증(Presuppositional Apologetics)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모든 사람의 생각과 세계관 속에는 기초가 되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반틸은 이것을 생각의 ‘궁극적 준거’라고 표현했고, 팀 켈러는 ‘믿음의 도약’이라고 표현했다.

사실이란 누구나 다 알기에 따로 증명할 필요가 없거나(예를 들어, 길에 돌이 떨어져 있다) 감각적으로 자명하지 않지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걸 가리킨다.[5] 그러나 사람의 세계관이나 주장들은 증명할 수 없는 믿음이 전제로 깔려 있다. 즉 “수많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취하는 첫째 신념은 배타적 합리성이다.”[6]

유신론은 믿음을 근거로 하고 무신론은 이성을 근거로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가장 기초가 되는 첫째 신념은 믿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무신론을 신념으로 가지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신론을 증명하기 어렵듯이, 무신론 또한 증명으로 확정할 수 없는 신념일 뿐이다. 결국 유신론보다 무신론은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래서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신념이며 ‘믿음의 도약’을 통해 어떤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팀 켈러는 “무(無)에서 불쑥 솟은 관점은 없다”라고 말하면서 “모든 논리의 기초는 논리로 도달하지 않는 선행적인 신앙적 헌신”이라 설명한다. 결국 “‘이 세상 너머에 초자연적 실재가 없다’라는 진술이나 ‘이 세상 너머 초월적 존재가 실재한다’라는 진술 중 어느 쪽도 합리적 인간이 회의할 수 없게끔 경험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것이다. 요컨대 신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하는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담겨있다. 따라서 과학만이 진리의 기준이라는 선언은 그 자체가 과학적 연구 결과가 아니라 또 하나의 신념일 뿐이다.”[7]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가지 계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데, 자연을 통한 일반계시와 성경을 통한 특별계시가 그 둘이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자연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그리스도와 성경의 렌즈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분별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은 세속적인 생각은 모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팀 켈러는 전제주의 변증의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잘못된 전제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복음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복음 전도의 방식이라 말한다.

팀 켈러는 반틸의 전제주의를 변증의 틀로 사용하지만, 반틸과 다른 면도 많다. 팀 켈러 전기의 작가 콜린 핸슨은 “켈러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코넬리우스 반틸로 대표되는 신칼빈주의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면서도 켈러는 일반 은혜 교리를 강조함으로써 반틸과 노선을 달리했다”고 평가한다.[8]

가장 다른 점은 반틸이 거부했던 고전주의 변증을 받아들여서 활용하는 것이다. 반틸은 전제주의를 통해서만 바르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팀 켈러는 변증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믿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결국 성경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만 세상과 인간에 대해 더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둘 다 자신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비교해보면 성경적 관점이 더 말이 되고 합리적이며 비성경적 관점은 스스로 안에서 모순을 드러낸다.

문화 내러티브

왜 팀 켈러는 이렇게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을 통한 변증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 즉 다른 신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마음의 주인으로 삼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주인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문화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은 문화를 통해 사람의 마음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종교를 완전히 없애버릴 때가 아니라 종교 때문에 특별히 동요하게 되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때 사회는 세속화된다. 영국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1퍼센트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 29퍼센트만이 자신이 종교적이라고 답변했다. 자신이 특정 종교 그룹에 속해 있지만 열성적이지 않다는 의미이며. … 블룸즈버리 그룹이 하나님의 왕국을 대체해버린 셈이다.[9]

테리 이글턴이 말하는 ‘블룸즈버리 그룹’은 1906년경부터 1930년경까지 런던과 케임브리지를 중심으로 활동한 영국의 지식인, 예술가 모임을 말한다. 즉 오늘날 신의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바로 문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라고 했다. 세속화된 오늘날은 신을 죽인 사회이지만 사람의 마음속에는 ‘종교의 씨앗’이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무언가를 신의 대체자로 삼아야 하는데, 오늘날은 그 자리를 ‘문화’가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팀 켈러는 이것을 ‘문화 내러티브’라고 부른다. “문화 내러티브는 모두가 아는 것들, 너무나 자명해서 거의 의식조차 하지 않지만, 성경과 다른 세상이 아는 공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식의 표현이다.”[10]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복음 설교자들은, 문화 이야기가 복음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도전하고, 궁극적으로 문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다시 들려줌으로써 선(good)을 향한 그들의 가장 깊은 열망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채워질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11]

설교자가 성도들 생각 속에 숨어 있는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고 도전해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 속에 있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들을 깨닫고 회개하게 된다. 복음으로 가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그 뒤에 복음을 제시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렇게 팀 켈러는 변증적 요소를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삼으며, 복음으로 가는 장애물을 제거해준 후 복음을 소개한다.

변증의 예

사람들이 교회를 거부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독교에만 진리가 있다고 하는 ‘진리의 배타성’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여러 종교가 모두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성경의 진리에 대해 배타적이라 비난한다.

그러나 팀 켈러가 말하는 전제주의 변증의 방식으로 ‘기독교가 배타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전제를 살펴보면 아마도 ‘진리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신념이 있을 것이다. 진리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는 신념이 있을 때만이 진리가 하나라는 신념을 배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A 진리를 비판하는 근거는 B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가 하나라는 사람의 전제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전제를 도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표현기독교는 배타적이라 틀렸다기독교는 진리이다
신념진리는 하나가 아니다진리는 하나이다
근거없음성경

기독교가 배타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가 배타적이다’라는 명제를 알고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생각하는 세계관은 결국 어딘가부터 들어온 것인데 바로 문화 내러티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의 신념은 ‘진리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생각의 뿌리에서 온 것인데 ‘진리가 하나가 아니다’라는 신념은 증명할 수 없는 생각으로 결국 그의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모든 사람의 첫째 신념은 언제나 믿음이다. 그래서 팀 켈러는 이것을 ‘믿음의 도약’이라고 표현했다.

‘도약’이라는 말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연결이 없다는 뜻이다. ‘기독교가 배타적이다’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신념은 ‘진리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말이고 그 신념이 어디서부터 왔냐고 묻는다면 합리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독교가 진리이다’라고 믿는 사람들의 신념은 ‘진리는 하나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성경이라는 근거를 통해서 온 것이다. 즉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은 어떤 근거도 없는 문화 내러티브적 생각만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성경이라는 가장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믿음을 세운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므로 상충되어 보이지만 모순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경이 아닌 세계관은 모두 스스로 모순에 부딪치게 된다.

‘기독교의 배타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종교관이 기독교의 종교관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비난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서 그리스도인도 기독교의 종교관이 다른 종교의 종교관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를 비난하는 사람의 논리대로라면 기독교가 자기 종교관이 우월하다고 다른 종교관이 틀렸다고 말하는 방식으로 자기도 동일한 배타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자신이 따르는 신앙이 다른 것들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은 자기중심적인 발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단정부터가 자기중심적이지 않을까?[12]

자신의 종교관이 진리라는 주장 자체만으로는 그것을 배타성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 정말 진리가 하나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 포용과 연합이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사지선다 문제 중에서 정답이 오직 하나라면, 정답을 하나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배타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배타성이란 어떤 의미인가? 기독교가 진리라는 주장을 하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폭력 또는 회유와 협박을 통해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배타적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근본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할 수 없는 종교이다. 왜냐하면 은혜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이들 가운데 자신들보다 훨씬 인격적이고 슬기롭고 훌륭한 사람들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째서 그런가? 그리스도인은 스스로의 윤리적인 공로나 지혜, 덕성 때문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그리스도가 이루신 역사 덕분에 하나님의 용납을 받은 까닭이다. … 근본주의는 폭력으로 이어진다고들 하지만, 불가피하게 (진리를 진리라고 믿기 때문에) 배타적일지라도 따르는 이들을 겸손하고 평화를 사랑하게 만드는 신념이 있을 수도 있다.[13]

진리가 하나라고 주장하는 배타적 확신 체계를 믿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적이며 섬기며 살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행위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불의를 저질렀던 일들을 눈 질끈 감고 가볍게 넘어갈 순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가장 근본주의적인 신념에서 나오는 힘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 평화를 이루는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팀 켈러는 ‘기독교가 배타적이어서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신념을 들추어서 그가 가진 모순을 드러낸 후에 진리를 하나라고 믿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어도 세상에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것이 기독교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기독교가 배타적이라고 비난했던 사람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며 모순이 없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팀 켈러는 탈기독교 시대 전도에서도 문화 내러티브의 영향 아래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바르게 복음을 전하려면 세속적 내러티브에 대항할 교리문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전 개신교 교리문답을 보면 로마가톨릭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이 많다. 그것은 로마가톨릭의 문화 내러티브적 오류를 드러내는 대항적 교리문답이었다.[14]

이처럼 기독교 신앙 안에서 변증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의 모순을 드러내고 진리를 바르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팀 켈러는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에 대한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레슬리 뉴비긴이 서구 교회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져야 할 ‘계몽주의 이성의 허망함을 드러내는 것’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이 바로 팀 켈러일 것이다.

팀 켈러는 복음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복음을 전달하는 방식과 과정의 중요함을 변증을 통해 알려준다. 팀 켈러의 유산인 기독교 변증을 통해 문화 내러티브의 모순을 드러내며 바르게 복음을 전하는 많은 사람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1] 레슬리 뉴비긴, 다윈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26.

[2] 팀 켈러, 탈기독교 시대 전도, 15.

[3] 같은 책, 26.

[4] 이승구, 코넬리우스 반틸, 59.

[5]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370.

[6] 팀 켈러, 답이 되는 기독교, 51.

[7] 같은 책, p.56.

[8] 콜린 핸슨, 하나님의 사람, 팀 켈러, 115.

[9] 테리 이글턴,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 14.

[10] 팀 켈러, 설교, 154.

[11] 같은 책, 35.

[12]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46.

[13] 같은 책, 57.

[14] 팀 켈러, 탈기독교 시대 전도, 77.

[복음기도신문]

고상섭 | 고상섭 목사는 영남신학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그사랑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있다. 팀 켈러 연구가로 알려져 있으며 CTC코리아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최근 공저한 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를 출간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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