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가정의 아이들은 중요한 전도의 대상이다. 전도는 교회 밖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도는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진다. 교회 안에 있으나 믿음이 불분명한 명목상 신자들도 전도의 대상이다. 현재 부모를 따라 교회에 나오는 믿음의 자녀들도 앞으로 성인이 되면 신앙에 관한 주체적 선택을 해야 한다. 많은 교회에서 경험하듯, 초등학생에서 중고등학생으로, 그리고 중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성장할 때마다 아이들이 신앙을 떠난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다음세대가 신앙을 지속할 것인지는 개 교회를 넘어서 한국 교회 전체가 떠안아야 할 과제다.
다음세대를 위한 문화적 맞춤 사역에 주력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교회가 지루하고 고리타분해서 아이들이 오지 않으니, 교회를 재미있는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 디즈니 만화를 연상시키는 캐릭터들이 기독교 이름으로 채워지는가 하면, 예능프로나 드라마 콘텐츠를 기발하게 모방한 교회 프로그램 포스터와 문구들이 경쟁하듯 선보인다. 세상에서 즐길 만한 게임이나 운동을 교회 안에서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춰주면 미래를 대비하는 과감한 혁신으로 주목받는다. 또는 다음세대 사역을 독립 부서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간섭 없이 안전하게 그들만의 예배와 프로그램을 실행하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 교회가 다음세대를 소중히 여기며 “꼰대력”을 포기하는 결단이라고 여기는 목회자들도 본 적 있다. 아예 어린이교회, 청소년교회, 청년교회 등과 같은 ‘교회 안의 교회’를 지향하기도 한다.
다음세대의 문화적 요구를 파악하며 영적 부흥을 이루려는 이러한 노력은 귀한 헌신이다. 또한 젊은이들에게 교회에 대한 편견이나 종교적 엄숙주의를 해소해 주며 기독교를 더욱 가깝게 하는 시도 또한 현대 사회를 향한 선교적 관점에서 상당한 필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러한 시도들이 다음세대에게 신앙을 전하고, 그들의 신앙이 자라 영적으로 성숙하고 제자의 삶으로 살게 하는 필수적 해법이겠냐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신앙의 성숙이고 뭐고 간에 교회가 재미없어 오지 않으려는 아이들을 어떻게든 끌어모아야 하지 않느냐?’ 나 또한 다음세대에게 교회가 딱딱하고 지루한 곳으로 비치기를 원치 않는다. 아울러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성경 읽고 기도하는 생활이 그들에게 무의미한 형식이나 강요 사항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교회의 다음세대 사역이 현대 문화와 엔터테인먼트 코드를 창의적으로 활용한다고 해서 신앙의 전수와 성장에 정말로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든다.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리보다 먼저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서구 기독교도 이와 관련해서 의미 있는 자기반성을 하고 있다. 수년 전 미국의 권위 있는 기독교 잡지인 Christian Century에 기고한 한 청소년 사역자는 처음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창의적이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청소년 맞춤 예배에 현대적 음악과 (성, 이성 교제, 음주 등의) 흥미로운 주제 토론 및 교육적 게임 등을 도입했으며, 정기적으로 사회봉사나 행사도 기획했다. 이 사역자는 교회의 청소년들이 대부분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는 잘 안다고 생각해서 주로 기독교 문화에 주력했다. 그 결과 자신이 그때 사역했던 청소년들 가운데 여전히 신앙생활을 하는 이는 소수에 불과했으며, 자신의 다채로운 문화 사역은 아이들에게 영적으로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결론 내린다. 이 사역자는 자신이 아이들의 관심과 기호에는 민감했지만, 아이들이 평생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역점을 두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꽤 오래전부터 교회학교 사역에서 중요한 과제는 교회 전체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통합될 수 있느냐가 되었다. 성인 회중과 분리된 독립적인 다음세대 사역은 한동안 활성화될 수는 있지만, 아이들 자신이 성인으로 자라면서 원 교회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다가 성인이 되어서도 신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이들은 성인 회중과 자주 접촉하고, 성인 예배 또는 세대통합 예배에서 봉사했던 경험이 있었다는 조사가 있다(김선일, 모든 사람을 위한 가족전도, 161-162).
30년간 청소년 전문 사역자로 일한 바 있는 역사신학자 토마스 버글러는 The Juvenilization of American Christianity(미국 기독교의 청소년화)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의 연구를 통해서 미국 기독교가 시대의 청소년, 청년 문화를 수용하고 모방함으로 신앙의 전승과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지목하는 오늘날 청소년문화가 교회에 스며든 현상은 낭만주의나 정서주의, 즉 내 기분을 좋게 해주는 데서 교회 분위기나 프로그램의 의의를 찾는 현상이다. 이는 복음 메시지의 연성화를 초래하는데, 예를 들어 “예수, 나의 연인” “나는 예수와 사랑에 빠졌다” 같은 표현들이나, 신앙생활에서 성화나 제자도 보다는 선택이나 ‘여정’(journey)이 더 중요한 개념이 된 것이라 한다. 교회가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에서 영적인 삶의 습관을 형성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소비심리를 만족시키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화적 적응력은 항상 매력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성공의 대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 문화를 교회에 접목한 대표적 사례인 윌로우크릭교회가 자기들의 사역을 총체적으로 점검하면서 사람들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을 제자로 성장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고백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Reveal).
현대 대중문화의 가벼움과 신속함은 강한 휘발성을 지니고 있어서 기독교의 메시지를 스쳐 지나가게 만들 수 있다. 디지털미디어에 둘러싸인 아이들은 초월적인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적으로 유일무이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고민하고 성찰하게 하기보다, 통속적인 마블 영화 세계관의 유사품으로 취급할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기프티콘을 제공하며 교회 출석이나 성경 읽기를 유도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소비주의 문화의 이해관계로 인식시킬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계승하는 데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그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앞선 세대에게 익숙한 전통적인 신앙훈련을 익히게 하며 순종과 성숙을 요구하는 것일까? 그러한 퇴행적인 방법은 더더욱 아니다. 여전히 문화는 중요하다. 문화는 내용의 핵심을 덮고 있는 외피이자, 내용을 이해시키는 소통 창구다. 따라서 문화를 통한 신앙의 표현과 대화는 사역자들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문화의 전부가 아니며, 사역에서 문화를 적절히 활용하는 데 필수 통로도 아니다. 물론 현재 대중문화의 흐름과 언어를 잘 알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접촉점을 갖고 대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아이들도 영적인 탐구자라는 것, 그리고 기성세대는 그들을 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다음세대의 아이들도 영적 관심과 열망을 지닌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영적 관심이란 종교활동에 대해서라기보다 삶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와 같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서만 진정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왜 다음세대의 아이들은 가벼운 재미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는가? 미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기독교 가정의 청소년들 대부분은 부모의 종교와 신앙에 관해서 관심이 있으며 알고 싶어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도덕적 치료주의 이신론으로 잘못 알고 있다고 한다(Christian Smith, Melina Lundquist Denton, Soul Searching). 신앙은 착한 사람이 되는 것, 혹은 문제 해결하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 긴급한 과제는 다음세대 아이들의 신앙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필자가 교육목회를 할 당시에 동역자들과 함께 개신교 영성수련원을 다녀온 적이 있다. 얼마 뒤에 여름 성경학교가 열렸는데, 그때 담당 전도사가 아이들을 위한 묵상기도 훈련을 시도했다. 영성수련원에서 경험했던 미로 기도를 아이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아동부실에 기도 코스를 만들어 놓고 천천히 걷다가 한 번씩 멈춰서 기도하는 방식이었는데, 아이들이 진심으로 진지하게 기도하는 모습에 필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 무슨 예능적 요소는 가미되지 않았다. 다만 곁에서 같이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는 교사들이 있었을 뿐이다.
둘째, 아이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존중하고 환대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다음세대를 신앙의 성숙과 헌신에 이르게 한다고 일방적인 지시나 강요의 신앙 교육을 하면 오히려 그들을 교회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다. 교회와 신앙에 관해서 아이들이 제기하는 의문과 비판에 개방적이고 포용적으로 대한다면, 이는 아이들이 자신들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주며 결국에는 신앙에 더욱 긍정적이 될 수 있다(Vern Bengston, Families and Faith).
다음세대는 전도의 대상일 뿐 아니라 환대의 대상이기도 하다. 환대라는 단어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동등한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면, 다음세대의 아이들을 환대한다는 것은 그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음세대로 신앙 전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한 연구를 보면, 믿는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상호존중의 분위기가 형성된 곳에서 신앙이 잘 계승된다고 한다. 무조건 믿으라고 하거나 의심에 대해서 질타하고 정죄한다면 오히려 신앙에 대한 반발과 이탈을 불러일으킨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부모의 이해와 관용 속에서 신앙에 관한 대화를 자유롭게 나누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가정예배나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성경 읽기와 기도 생활도 유익하다. 하지만 그조차도 신앙에 관한 안전하고 자유로운 대화가 보장되는 가정에서 그러한 경건의 훈련도 더 효과적이다.
최근 한국 기독교에 관한 조사에 의하면, 현재 교인들의 최초 신앙 시기는 모태신앙(26.4%)과 초등학교 때(34%)까지 합하면 60.4퍼센트에 이른다. 여기에 중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신앙을 가진 이들까지 더하면 그리스도인의 무려 78퍼센트가 미성년 때 신앙을 갖는 것으로 나온다(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한국기독교 분석 리포트 2023, URD, 근간). 이 통계는 신앙을 갖는 데 있어서 다음세대의 영적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다음세대 신앙 전수의 문제는 사실 나중 과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과제이다. 그들은 다음세대가 아니라 지금세대이다. 그들을 위한 사역은 더욱 면밀하고, 더 반성적이고, 더욱 깊은 헌신을 요구한다. [복음기도신문]
김선일 교수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를 거쳐 풀러신학대학원(MDiv, PhD)에서 수학하고 2008년 9월부터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풀러신학대학원 재학 중에는 한인 최초의 캠퍼스 교목으로 일했으며, 한국교회의 청년 선교와 교회 성장을 위해 섬겨왔다. 저서로는 ‘전도의 유산: 오래된 복음의 미래’, ‘교회를 위한 전도가이드’ 등이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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