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세상 바로 보기]
한국의 대표적 개신교단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현직 목회자가 동성애를 찬성 동조하고 있다는 논란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친동성애 성향의 경향신문 자매지 주간경향은 ‘성소수자 축복식 이동환 목사 다시 재판에’라는 제목으로 감리회에서 이 목사를 기소했으며, 정직 2년 받은 후 8개월만에 또다시 직임이 정지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목사는 ‘동성애 찬성 동조 행위’ 등 교회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교단 내에서 기소돼 재판을 받게됐는데, 지난해에도 같은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정직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에 따라 또다시 이 목사가 징계를 받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목사는 이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교회법의 해당 조항이 목회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이미 많은 성소수자 교인이 교회 내에 존재하며, 성소수자들이 동성애 조항 때문에 교회에서 밀려나고, 상처받는다면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결론은 교회법이 사람을 위해서 법을 만드는 것인데, 사람들이 어려워하면 그 법에 문제가 있다는 괴이한 주장을 피력했다.
고린도전서 6:9~11절까지 이런 말씀이 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동성애)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동성애를 금한다는 말씀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고린도전서 5:11~13 말씀이다.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동성애보다 더 근본적인 음행을 하지 말라는 말씀도 있다. 또 고린도전서 5:6~7 말씀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성도는 누룩이 없는 자여야 하는데, 누룩과 같은 죄된 행실을 내어버리라는 말씀이다.
감리교가 퀴어 축제를 축복 목사 치리 건으로 오래 시간을 끌고, 소극적인 징계 조치를 했던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다. 너무나 단순한 결론을 미적대고 분명하게 입장을 취하지 못하자, 그 결과 동일한 사건이 다시 돌아오게 됐다. 오래 끌수록 여론을 의식한다고 생각해서 언론과 사회를 통합 압박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왜 교회가 세상의 여론에 신경을 써야 하는가. 이처럼 시간을 끄는 게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동성애 옹호 목회자들은 동성애 반대 그룹에 대해서 ‘동성애만 죄라고 비난하다’는 프레임을 씌운다. 다른 죄는 용인하는 나쁜 놈들이란 배경을 만드는 발언이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고린도전서 5장, 6장에서 동성애는 언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죄 중에서 하나일뿐이다.
즉, 여러 가지 죄들을 모두 용납하자는 것이 아니면, 그것들 중의 하나인 남색(동성애)만 특별히 용납하자거나 하나님이 그렇게 만든신 것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여부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80년대 미국에서 에이즈 환자가 급증하여 죽어갈 때 감리교는 에이즈 환자를 위한 목회활동에 대한 아이디어에 찬성하고, 연회에서 지원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동성애 옹호적 교회에서 동성혼 사건이 일어나고 분란이 시작됐다.
퀴어(괴이한) 신학은 동성애자가 교회 예배나 모임에 참석이 허용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교회 내 지도적인 주요 보직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교단 전체가 동성애에 정복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주장을 신학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현실도 아이러니다.
그래서 최근에 미국 감리교회들이 교단을 탈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백년 역사의 교단이 동성애로 인해서 갈라지는 것이 미국 교단들의 현실이다. 이것이 ‘누룩’이 가져온 현실이다. 처음에는 한두 명 목사로 대세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언젠가는 교단 전체를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교단은 동성애 이슈에 대해서 ‘누룩’을 버리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치리해야 한다. 성경대로 하지 않고 사람들의 눈치를 볼 때 누룩이 빵 전체를 뒤덮게 된다.
구약 시대 유다의 요시야 왕 때도 그랬다. 요시야는 성전 안에서 발견된 언약책 즉,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백성들의 귀에 들리고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기로 결정하자, 백성들도 그 언약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지도자가 마음을 정하자, 그를 바라보던 모든 백성들도 언약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요시야의 성전개혁은 성전의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당시 성전에도 있는 남창의 집 즉 동성애 현장을 아예 헐어버렸다. 그것이 성전개혁이다. 성경 어디에 동성애를 용인하는 구절이 있는가. 없다.
자체에 교회는 동성애만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요시야가 성전 개혁을 통해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언약의 말씀을 이룬 것 같이, 동성애에 대한 입장과 같이 다른 모든 영역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이 목사는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통해 ‘예수님이 안식일에 사람을 치료한 행위와 목회자의 성소수자 포용’을 동일한 관점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설마 신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적인 율법에 치우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시선을 예수님이 안식일에 주인이심을 드러내는 성경 본문을 이렇게 왜곡하고 있는 것은 누룩을 내버려둔 결과이다.
물론, 그렇게 동성애를 받아들인 교단과 교회는 충성된 기독교인들이 떠나기 때문에 축소된다. 장로교단(PCUSA)은 70년대에 비하면 1/3 이하로 줄었다. 동성애 반대 교단들은 성장세를 유지하다가 최근에서야 감소하고 있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총회 사이트에 동성애는 죄라고 아예 선언해 놓은 교단이다.
동성애 정책 추진 정당을 지지하는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동성애를 언급하는 것이 교회의 분열을 가져온다고 한다. 아니다. 그것은 교인을 유지할 목적으로 눈가리고 외면하는 모습일 뿐이다.
동성애 옹호자의 논문을 보면, 동일한 관점의 목회자들은 기독교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 한다고 한다. 비진리로 진리를 재단하려는 전형적인 포스트모든 시대에 나타나는 탈(脫)진리 현상이다.
성경은 디모데전서 1:9~11을 통해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 경건하지 아니한 자, … 음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등을 위함”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고 명령하고 있다(디모데전서 6장). <S.Y>
[복음기도신문]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제보 및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