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왜 북한 공산당이 하필 1950년 6월 25일에 그 참혹한 전쟁을 일으켰는지 아시는가?
소련의 요시프 스탈린, 중공의 모택동,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 이들 3인은 머리를 짜낸다.
“조선반도 해방(1945. 8. 15) 단 5년 만에 조선반도 전체를 완전 공산화로 통일시킨다. 굳이 머뭇거리거나 질질 끌 이유가 없다. 출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민주주의 체제 도입으로 시끌벅적 혼란한 중에 있을 때 남조선을 쳐야 한다. 군사적 방어태세가 전혀 안 돼 있는 남조선을 제압하는 데는 단 50일이면 충분하다. 그러므로 조선반도 해방 5년 되는 해 1950년 8월 15일에 조선반도 전체를 완전 공산화로 통일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전쟁 개시일은 1950년 6월 25일로 정한다.”
의심의 여지없는 남침이다. 저들은 너무나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여 해방 5주년 되는 1950년 8월 15일에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로 완전 통일하기로 목표 설정하고 50일을 역산하여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에 38도선 전역에 걸쳐 남침을 전개했다.
북한 공산군이 남침을 준비하고 있을 때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38도선에 위치한 옹진반도, 개성 그리고 철원 등지의 국군 전방부대들은 북한군의 ‘수상한 움직임’들을 포착하여 군지휘부로 보고를 올렸으나 대부분 무시당했다. 북한군사력을 철저히 과소평가한 것이다. 심지어 1950년 6월 24일(토) 서울 용산 육군본부에서는 장교회관 낙성식과 함께 축하다과회를 열었으며 육군 최고 지휘관은 6.25전쟁 발발 보고를 받고서도 “우리 장군께서는 영국에서 지휘관 장교 교육을 받았으므로 영국신사도에 익숙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공휴일 이른 새벽에 깨울 수 없다.”라고 비서가 중간에서 차단했다.
수많은 장병들은 한 여름 6월의 농촌 모심기를 돕느라고 특별휴가를 받아 농촌으로 귀향했다. 그리고 정부와 공무원, 언론, 사회, 문화, 학계, 심지어 종교계까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다. 특히 언론, 결사, 사상, 정치적 자유는 무한정 보장돼야 진정한 민주주의다.”라고 다들 목소리를 높이면서 지나치게 방심하고 방종, 허세를 떨었으니…
북은 전쟁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데 반하여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1950년 6. 25전쟁 발발 때까지 우리 대한민국은 시위(데모), 파업, 정치적 충돌과 암살, 지리산의 빨치산(파르티잔; 분파, 당파, 투쟁부대) 준동 등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런 혼란과 취약점을 간파한 북의 공산당 입장에서는 1950년 6월 25일에 남침하여 해방 5주년이 되는 1950년 8월 15일까지 대한민국을 점령하고서 한반도 전체를 적화(化) 공산통일하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73년 전 그 때 우리나라는 그토록 무감각, 무방비, 무기력,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우리가 미련하고 불성실하기 그지 없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긍휼히 여겨주셨다. 1949년 11월에 미군이 전면 철수를 완료하였으며, 미국 정계와 군부 마저 6.25전쟁 발발 소식을 접했을 때 크게 안타까워하거나 한국을 도와 공산 침략을 격퇴할 의지가 거의 없었다. 마지막 결단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달려 있었다. 절대 다수의 참모들과 워싱턴 정재계 인사들이 코리아 전쟁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 기류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트루먼 대통령이 6월 25일 당일 밤 엄청난 고뇌와 기도를 거듭하고 또 거듭한 끝에 6월 26(월) 아침 <긴급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평화를 파괴하는 세력을 종식시키기 위해 아낌없는 원조를 다할 것입니다. 한국 국민을 향한 우리의 동정과 원조는 병력파견과 함께 이루어질 것입니다. 침략자들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것에 대해 미국 정부가 얼마나 심각하게 주시하는지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평화를 깨는 세력을 결코 묵인할 수 없습니다.”
그가 이렇게 결단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임팩트)을 준 두 개의 비사(秘)가 있다.
하나는 미국을 향해 줄기차게 설득해온 이승만 박사의 외교력이다. “한국이 공산화되면 그 다음 차례는 일본, 대만, 필리핀, 그리고 동남아시아다. 코리아를 지켜내야 도미노 현상을 막을 수 있다.” 또 하나는 빌리 그래함 목사가 트루먼 대통령을 참으로 간곡히 설득했다. “각하, 사우스코리아가 공산화되면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반드시 대한민국을 구해야 합니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겨우 5년, 서구 여러 나라들은 저 먼 곳 극동의 코리아가 공산주의의 침략을 받아 크나큰 위기에 처했다는 전쟁소식을 접하자 반사적으로 눈과 귀를 막고 싶어했다. 2차대전으로 말미암아 국력을 다 소진한 상태에서 또 다시 전쟁에 개입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어떻게 16개국에서 군대를 파견해주고, 다른 6개국에서 의료, 군수품을 보내올 수 있었을까? 이들 22개국은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 문명권에 속한 나라들이었다. 실로 하나님이 간섭해주신 ‘기적’이 아니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 기적에 대한 놀라움과 감동 그리고 감사를 제대로 실감하고 싶다면, 부산 대연동에 자리 잡고 있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를 꼭 한 번 찾아가 보시라. 가족, 교회, 교회 소 그룹 단위로 함께 그곳을 찾아가보면 오늘의 우리나라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틀림없이 각자 답을 얻을 수 있다.
A. 토인비는 말했다. 「역사에서 배우는 민족은 살아남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민족은 도태되었다.」
여러분, 2023년 6월, 70년 전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휴전(정전) 중이다. [복음기도신문]
김철봉| 사직동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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