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GTK 칼럼] 사도 베드로 (6): 동정심 많고 용기 있는 지도자

사도 베드로는 초대 교회를 이끌 수 있는 두드러지는 후보가 아니었다. 그는 충동적이고 무모하며 가슴 뛰는 끓는 용암과 소심하게 겁내는 가운데 우왕좌왕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신이 당신의 원하는 행복을 위해서 책임을 지우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3년을 보내시면서 베드로의 자질을 다듬으셨고, 인생을 돌아보는 경험을 겪게 하셨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정한 리더십의 본을 보이셨다. 예수님은 복종, 자기 절제, 겸손, 섬김, 동정심, 그리고 대담함의 본이 되셨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본을 보이시며 가르쳐 주신 리더십이 가지는 특성의 마지막 두 가지를 살펴볼 것이다.

동정심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주님을 부인하게 될 것을 경고하시면서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 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눅 22:31)라고 말씀하셨다. 밀은 채 가운데서 강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위로 던져져서 겨와 분리된다. 겨는 날아가고 알곡은 떨어져 쌓여서 깨끗하게 모인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안심시켜 주시기 위해서 “나는 사탄이 너를 치지 못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자신이 사탄에게 사탄의 요구하는 대로 허락해 주셨다는 것을 베드로에게 알려 주려고 하셨다.

예수님은 마귀가 베드로를 시험하도록 허락하셨다(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말씀 핵심은 “나는 사탄이 너의 삶의 기초를 흔들어 놓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네가 가진 믿음의 실제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너를 바람에 던져 넣도록 사탄에게 허락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도의 믿음이 시련을 견뎌 낼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셨다.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

그때 베드로는 자신이 결코 걸려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오만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밤이 끝나기 전에 그는 예수님을 부인했으며, 그의 세계 전체는 심하게 흔들렸다. 그의 자아는 약해졌고, 그의 자신감은 소멸하였다. 그의 자존심은 크게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기 형제들을 굳게 만들어 주도록 준비시키고 계셨다.

선천적으로 리더십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흔히 동정심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을 위로할 줄 모르며 인내심이 없다. 그러한 리더는 자기들의 목표를 추구해 나가면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려고 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자신의 시련을 통해 동정심을 배워야 했다. 그랬기에 그 시련이 끝났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평생 베드로는 고난 겪는 사람들을 동정했다. 베드로는 사탄에게 체질 당한 후에 다른 사람들의 약점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유혹에 굴복하거나 죄악에 빠진 사람들에게 큰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기에 그는 죄악과 개인적 실패로 인해 상처받은 다른 사람들에게 동정하고, 부드럽고, 상냥하고, 친절하고, 위로하는 것을 배웠다.

베드로전서 5장 8~10 절에서, 그는 근신하고 깨라고 말했다. 여러분의 적, 악마는 포효하는 사자처럼 뛰어다니며 삼킬 사람을 찾는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형제들도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확고하게 사탄에게 대항하라. 잠시 동안 고통을 겪은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으로 당신을 부르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완전하게, 확실히, 강하게 세우실 것이다.

베드로는 인간의 약점을 이해했으며 그것을 잘 이해했다. 그는 맨 밑바닥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약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에 의해 세워지고 강화되고 자리잡았다. 여느 때처럼 그는 자신의 경험을 쓰고 있었다. 이것들은 그가 가르친 이론적인 교훈이 아니었다.

용기

마침내 베드로는 용기를 배워야 했다. 말고에게 칼을 격렬하게 휘두르는 충동적이고 저돌적인 잘못된 “용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성숙하고 안정되고 대담하고 기꺼이 고난을 받아들이는 용기였다.

어둠의 왕국은 빛의 왕국에 대항한다. 거짓은 진실과 반대된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리고 마귀들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목적에 반한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어디를 가든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요 21:19)

말씀을 전파하는 대가로 베드로는 죽음이 될 것이었다. 박해와 압제와 어려움과 고문, 그리고 궁극적으로 순교가 될 것이다. 베드로에게는 이러한 것을 지켜낼 반석같이 단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여러분은 오순절 성령에 의해 그가 충만하게 되고 권능을 받게 되었을 때, 베드로의 용기를 실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그는 변덕스러운 종류의 용기를 보여 주었을 뿐이다. 그 전에는 그는 순식간에 수많은 무장 군인들 앞에서 칼을 뽑는 용기를 보였지만, 불과 몇 시간 후에는 여자 종 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의 용기는 그의 삶의 모든 면이 그랬듯이 불안정했다.

그러나 오순절 후에 우리는 다른 베드로를 보게 된다. 사도행전 4 장은 베드로와 요한이 어떻게 유대의 국회였던 산 헤드린 앞에 불려 나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엄숙하게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행 4:18)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20)고 대답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말씀을 전파하고 설교했다고 다시 산 헤드린 앞에 끌려나갔다. 거기서 그들을 다시 전과 같은 말을 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성령 충만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체험 때문에 베드로는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용기를 얻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에서 어째서 그가 그러한 용기로 가득했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박해 때문에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는 말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3~7)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했다. 그리고 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기신 것을 알았다. 그는 이 땅에서 자신에 닥치는 어떤 시련도 일시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련은 흔히 고통스럽고 언제나 싫은 것이지만, 영원한 영광의 소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참조, 롬 8:18). 그는 자신의 믿음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리스도의 찬양과 영광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참믿음의 진실성은 멸망하는 지상의 부요보다 무한히 더 귀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소망이 바로 베드로에게 그런 용기를 가져다준 것이다.

변화된 지도자 베드로는 이 모든 교훈을 배웠고,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바뀌면서 점차 시몬에서 바위(베드로)로 바뀌었다. 그는 본이 되시는 주님으로부터 복종, 구속, 겸손, 사랑, 동정심, 용기를 배웠다. 그리고 그의 속에 역사하신 성령님께서 그의 마음속에 역사하시므로 그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그가 오순절에 설교했을 때 3000명이 구원을 받았다(행 2 :14~41). 그와 요한은 앉은뱅이를 고쳤다(행 3:1~10). 그의 그림자로 사람들이 치유될 정도로 강력했다(행 5:15~16). 그는 도르가를 죽음에서 일으켰다(행 9:36~42).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행 10장). 그리고 베드로전서와 후서를 썼다. 그는 이 편지들에서 그가 참된 성품에 대해 주님으로부터 배웠던 것과 똑같은 교훈을 써 놓았다.

참으로 베드로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는 완전한 사람이었던가? 아니었다. 갈라디아서 2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베드로가 타협하고 있는 한 사건을 말하고 있다. 베드로는 위선자처럼 행동했다. 거기는 우리는 옛 시몬의 모습을 잠깐 볼 수 있다. 바울은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를 책망했다(갈 2:14).

베드로는 바울의 책망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유대주의자들의 오류가 마침내 예루살렘에서 교회 지도자와 사도들의 전체 회의에서 다루어지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가장 먼저 일어나서 변호했던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다. 사도 베드로는 그날을 장식한 주장을 처음으로 발언했다(행 15:7~14). 그는 사실상 사도 바울의 사역을 변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일화 전체는 시몬 베드로가 여전히 성령의 확신과 시정에 민감하고 겸손하며 교훈을 잘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베드로의 생애는 어떻게 끝났나? 우리는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그가 순교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을 알고 있다(요 21:18~19). 그러나 성경은 베드로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초대 교회 역사의 모든 기록은 베드로가 십자가형을 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고대 교회 사가인 유세비우스(Eusebius)는 클레멘트의 증언을 인용하며, 그는 베드로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자기 아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강제로 보아야 했다고 말했다. 아내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베드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외쳤다고 클레멘트는 말하고 있다. 베드로가 죽을 차례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주님처럼 죽기에 합당하지 않다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달라고 간청했으며, 그는 머리를 밑으로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베드로의 생애는 그의 두 번째 서한의 마지막 말씀에 요약되어 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

그것이 바로 정확히 시몬 베드로가 한 일이며, 그 때문에 그는 초대 교회의 반석으로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복음기도신문]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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