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제력, 겸손 그리고 섬기는 것은 기업 세계에서 리더십의 명백한 자질이 아니다. 또한 성장과 비전에 초점을 둔 현대 교회들이 주장하는 특징도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교회를 인도한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면서 이 세 가지 특성을 중시하셨다. 특히 베드로에게 그러하셨다.
자제력
천부적으로 리더십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참지 못한다. 자기를 통제하고 자제하며, 절제하는 일은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일반적인 특성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지도자들의 문제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과 열정을 잘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최고 경영자와 고위직 사람들에게 분노 조절을 위한 세미나가 유행한다. 분노는 이처럼 고위직의 지도 계층의 사람들에게 흔한 것은 분명히 심각한 문제이다.
베드로도 비슷한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성급한 성격은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만들어낸 활동적이고, 결단력 있고, 주도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들에게 천부적으로 따르는 문제이다.
그런 사람은 비전이 부족하거나 업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보면 쉽게 짜증을 낸다. 성공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을 쉽게 귀찮게 여길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리더가 되려면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님은 베드로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 자신을 억제하는 법을 가르치셨다. 베드로가 너무 급하게 말하거나 너무 서둘러 행동했을 때 자주 심한 책망을 받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베드로가 자제하도록 가르치셨다.
베드로가 말고를 베려고 칼을 휘둘렀던 겟세마네 동산의 장면이 바로 천성적으로 자제하지 못하고 억제하지 못하는 베드로의 성품을 보여 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완전무장하고 있는 수백 명의 로마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베드로는 아무 생각 없이 그의 칼을 뽑아 휘두르고 그들 가운데 뛰어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말고는 귀가 잘렸고, 예수님이 즉시 그 귀를 치료해 주신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이미 살펴 보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엄히 꾸짖으셨다.
그 꾸지람은 수많은 적 앞에서 이루어진 일이기에 베드로에게 특히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날 밤 목격한 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래서 그는 훗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이 말은 칼을 들고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치려고 뛰어 들어가던 청년이 했던 행동과 얼마나 다른 말인가? 베드로는 자제하고 억제하는 일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겸손
베드로는 겸손을 배워야 했다. 인도자는 종종 교만한 죄에 빠지는 유혹을 받는다. 실제로, 인도자의 가장 끔찍한 죄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경향일 것이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칭찬하며, 올려다보며, 흠모하며 인도하는 대로 따라오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교만해진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를 버릴 것이라고 예언하셨을 때도 그러했다(마 26:31).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말했다. 또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눅 22:33)라고 말했다.
물론 언제나 베드로는 틀렸고 예수님은 옳았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부인했다. 너무나도 심하게 그리스도의 명예를 더럽힌 일로 인한 베드로의 부끄러움과 수치심은 그가 그런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단언했던 사실 때문에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일을 사용하셔서 베드로를 겸손하게 만드셨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베드로는 특히 교회 리더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3) 겸손은 베드로의 삶과 그가 전하는 메시지와 리더십 스타일을 특징 짓는 덕목 중 하나가 되었다.
섬김
모든 제자들은 진정한 영적 지도자는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진정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지시하며 시중들기를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섬기는 사람이다.
이것은 천성적으로 리더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 배우기 힘든 덕목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리더는 일반적으로 사람 중심이 아닌 해야 할 일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사용하거나 사람들을 부려 먹는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지도력이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지속해서 제자들을 사랑의 섬김으로 리더십의 본을 보이셨다. 그리고 이 본은 예수님께서 배신을 당하고 잡히시던 밤 다락방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예수와 제자들은 예루살렘의 유월절을 축하하기 위해서 방을 빌렸다. 유월절 축하 행사는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지속하는 예식이었다. 그 당시의 문화는 사람들이 보통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지 않고 낮은 테이블에 비스듬히 서로 기대고 누운 자세로 앉았다.
한 사람의 머리가 다른 사람의 발 옆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모든 길은 진흙 투성이거나 먼지가 많았기 때문에 발은 계속 더러워졌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관습은 식사를 위해 집에 들어갔을 때 대개 손님의 발을 씻는 일을 하는 종(실제로는 모든 일에서 가장 낮고 가장 천한 종)이 있었다.
이 바쁜 유월절 밤에, 그들이 빌린 방에는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손님의 발을 씻어 주는 종이 없었기에 제자들은 그 비천한 일을 하겠다고 자원하기보다 예의를 어기고 발을 씻지 않고 식사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처럼 테이블 주위에 모였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바로 주님이라고 부르신 분이 가장 낮은 종의 역할을 맡고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 주셨다. 누가에 따르면 이 일이 일어날 때 제자들은 그들 중 누가 가장 큰 자인지 서로 논쟁하고 있었다(눅 22:24). 그들은 낮게 처하지 않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데 관심이 있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섬기는 리더에 대한 교훈을 주셨다.
대부분의 인도자에게 자기 아래에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밑에 앉아서 그들의 발을 씻기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께서 본을 보여 주신 리더십이며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본을 따르기를 강력하게 권하셨다. 사실, 그분은 그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서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참 제자의 표라고 말씀하셨다(요 13:34~35).
베드로는 사랑을 배웠는가? 그는 확실히 배웠다. 사랑은 그의 가르침의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베드로전서 4:8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으로 사랑하라고 촉구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느낌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할 만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실패와 약점을 덮어 주고 이를 메워 주는 사랑이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과 죄를 덮는다.” 이것은 형제의 더러운 발을 씻어주는 것과 같은 사랑이다. 베드로 자신도 본을 보여주신 그리스도께 이 교훈을 배웠다. [복음기도신문]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