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믿음의 글] 성령 충만을 위한 믿음

사진: Rod Long on Unsplash

“내 삶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드렸는데도 나는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육신의 영향권 속에 있으면, 풍성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 온전히 굴복하며 살고 있는데, 과연 성령 충만을 못 누릴 수 있나요? 채워지지 않으면 채워야 하고, 믿음으로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S.D. 고든이 들려준 한 어린 소녀의 기도를 봅시다. 소녀는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예수님, 주님이 내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것이 들립니다. 예수님, 들어오셔요,” 그러더니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요.”

우리는 주님께 자신을 드리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립니다. 내 몸을 산제사로 드립니다.”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십니다. 내게 사는 것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굴복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믿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습니다.” 굴복은 마음문을 엽니다.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셔서, 충만케 하시고, 거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모시면서도, 주님을 나의 생명으로 모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무리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을 택하여” 성령의 사람은 믿음이 충만합니다.

믿음은 은혜를 온전케 합니다.

온전한 무지개를 본 적이 있습니까? 한번은 바다를 내다 보는데, 무지개의 양 끝이 바다에서 올라오더니 완벽한 활모양을 이루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한 말씀을 새로운 이야기처럼 풀어주셨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활은 은혜와 믿음으로 충만합니다. 구원의 활은 하나님 편에서 은혜 충만이며, 사람의 편에서 믿음 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온전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은 뚜렷하고 명백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믿음은 온전치 못합니다.

은혜는 우리가 항상 신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공급합니다. 하지만 신령한 삶을 실제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반드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믿음은 은혜를 온전케 합니다.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롬 4:16)

믿는 이가 누리는 것은 모두 선물입니다. 은혜는 주고, 믿음은 받습니다. “사람이 할 일은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손을 뻗어,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내려주신 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은혜는 공급하고, 믿음은 소유합니다.

이 진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너무도 명백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축복에 더하여 가나안 땅을 온전한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본 적도 없지만, 그 땅은 수많은 세월 동안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이 이스라엘 백성의 땅이라고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제 땅에 발을 딛지 않으면, 땅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믿음은 약속으로 이미 주신 선물을 들어가서 소유하는 것입니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수 1:2~3)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 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수 1:11)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은 사십 년 전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고 실과가 넘치는 땅, 비옥하고 결실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땅을 주시려고 그 땅의 경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음이 없어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사십 년 동안 고단한 방랑의 길에서 시달리다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오직 믿음의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만 유업을 이어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7~19)

사랑하는 여러분! 최고 수준의 삶을 사는 데에 필요한 것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고 성령님은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님의 주된 임무는 우리를 신령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삶은 이미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축복을 모두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지만 온갖 축복으로 채워진 최고 수준의 삶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은혜로 주신 것을 삶의 실상으로 누려야 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께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 1:3)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며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마 9:28~30)

여러분들은 배고픔과 목마름이나,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약속이나, 광야의 거칠음을 인하여 절박한 마음으로 약속의 땅 경계에 몇 번 다가왔을 것입니다.

어쩌면 케즈윅 집회나 이기는 삶 집회에 오는 것도,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과연 약속의 삶이 맞는지, 약속대로 되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 굴복하고 믿음 충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놀랍게도 맺고 있는 성령의 열매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아들이 되었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6).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9).

우리는 믿음으로 죄사함과 거룩하게 하심을 입었습니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행 26:18).

우리는 믿음으로 정결함을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행 15:9).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십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 3:17).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 3:2).

우리는 믿음으로 약속을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2).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이김을 얻었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우리는 믿음으로 악한 자를 이기는 이김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엡 6:16).

우리는 믿음으로 환경과 어려움을 이기는 이김을 얻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킬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히 11:33~34).

우리는 믿음으로 보호를 받습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 21:21~22).

우리는 믿음으로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 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마 17:19~20).

하나님과 화목하며 지내려면 두 가지가 절대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두 가지에 대한 근본적인 확신이 없으면, 구원도 축복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 11:6).

그리스도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가장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일하심을 보고도, 제자들이 믿음을 갖지 못하자, 주 예수님은 크게 근심하셨습니다. 거센 폭풍과 파도가 몰아치고 예수님이 주무신다 해도, 주님이 계시는데 제자들은 왜 두려워해야 할까요? 두려움과 믿음은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마 8:26).

풍랑이 요동치고 베드로가 빠질 것 같았지만, 바다 위에 서신 예수님은 ‘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명하시면, 주님은 능히 지키십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가 의심해야 할까요? 의심과 믿음은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마 14:31).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에 대해 경고하시자,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마음에는 주 예수님께 대한 오해가 훨씬 더 깊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호수 건너편으로 갈 때, 빵을 가져오기를 잊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다음 식사를 어디서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를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에 대해 말씀하시자,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빵이 없어서 걱정하는 것을 아시는구나.” 오! 빵을 가져오기를 잊으면 어떻습니까? 떡 다섯과 물고기 둘로, 여자와 아이를 제하고도 오천 명을 먹이신 주님이 함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떡 일곱과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이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은 것을 방금 보지 않았습니까? 필요하시다면, 주님께서 열두 제자의 저녁을 어찌 마련하지 못하시겠습니까? 걱정과 믿음은 함께 거하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나(마 16:8~10).

우리는 악의 삼 종 세트인 두려움과 의심과 염려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으로 병약함, 경제적 손실, 방종한 아이들, 과도한 짐, 몰아치는 곤란과 역경, 격정적인 감정에 시달리고, 밖으로 핍박에 시달리느라, 주님의 임재를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주님의 일하심을 잊습니다.

한 번은 젊은 여자 분이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내게 왔습니다. 그녀는 영과 몸이 피폐하여, 완전히 기진한 상태였습니다. 얼굴은 말할 수 없이 지치고 초췌해 보였습니다. 걱정과 근심 때문에 이마에는 깊은 골이 패여 있었습니다. 삶의 짐과 염려와 걱정과 일로 인해, 더 이상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녀의 심령에는 거센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파도가 삶의 배를 덮치는데,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고통 중에 부르짖는 그녀의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라고 하시며, 주님은 근심의 파도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주님은 고요한 평강을 그녀의 영혼에 들이시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림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장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주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칭찬하셨습니다.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기의 하인을 고쳐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가시겠다고 즉시 약속하십니다.

그러자 믿음이 응답합니다. “주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니이다.” 오! 이 믿음이 주님의 마음을 얼마나 기쁘시게 하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사람의 삶을 보아도 믿음과 신뢰에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으로 응답하지 않으신 때가 없습니다. 참된 믿음에 즉시 응답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일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이며, 하나님의 일하심은 은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와서, “주께서 원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예수님께 들어가는 자는 은혜라는 공기가 있는 새로운 영역에서 삽니다. 은혜의 공기는 생명을 주고, 생명을 유지시킵니다. 은혜의 공기는 오직 믿음의 허파를 사용해야 마실 수 있습니다. 갓난아기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새로운 영역의 삶을 시작합니다. 공기는 거저 주는 선물입니다. 아기는 계속 공기를 호흡하며, 살고 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새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계속 예수님을 붙들고, 그리스도 안에서 범사에 예수님께 이르도록 자라갑니다. 믿음, 오직 믿음만이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라는 선물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서고, 믿음으로 걷고, 믿음으로 삽니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후 1:24).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0:38).

아마도 그와 같은 믿음을 계속 온전히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겁도 나고 전혀 그렇게 못 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믿음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입니다. 믿음이 너무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며, 말씀을 따라 주님을 취하는 것입니다. 믿음 자체는 구원의 능력이나 보호의 능력이 없습니다. 구원과 보호의 능력은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이어줄 뿐입니다. 확실하게 주시는 방법은 은혜이며, 확실히 받는 방법은 믿음입니다.

<Ruth Paxon – 룻선교회 제공> [복음기도신문]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japan-bus-241120-unsplash
[고정희 칼럼] 복음이 실제 된다는 것
20241115_Ji
[지소영 칼럼] 무거워지는 아들과 천로역정
IMG_8810re
[지소영 칼럼] “어쩌다가 당신을 만나”
308_5_3_Power of Gospel(1068)
슬픔을 압도하는 기쁨

최신기사

[GTK 칼럼] 그리스도인과 직장 I
“차별금지법 독소조항 담은 제주평화인권헌장 폐지하라”
[고정희 칼럼] 복음이 실제 된다는 것
韓 청년들, “생명 지키는 데 전념하겠다”… ‘제2회 라이프워커 등산대회’ 개최
美 버지니아 부동산 중개인, 결혼 관련 성경 구절 SNS 게시해 면허 박탈 위기
극동방송, ‘나라를 지킨 영웅들’ 위한 ‘2024 가을 음악회’ 성료
파키스탄 북서부, 이슬람 계파 갈등 지역에서 복음 전하다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20241121_Workplace
[GTK 칼럼] 그리스도인과 직장 I
20241121_Jeju
“차별금지법 독소조항 담은 제주평화인권헌장 폐지하라”
japan-bus-241120-unsplash
[고정희 칼럼] 복음이 실제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