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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GTK 칼럼] 모태신앙(母胎信仰)

“저는 모태신앙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 말의 뜻은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혹은 어머니의 배 속에 있었을 때부터 자신이 교회와 교회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있는 배경 속에서 자랐다는 말이고, 그 속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말입니다. 주일학교부터 청년회까지 교회에 꾸준히 다니면서 들려지는 매 주일 말씀을 듣고 소그룹에서 나누는 교제에도 함께했으며 침례를 받거나 만찬에 참여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모태신앙인은 디모데입니다. 그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의 배경 속에서 자랐습니다(딤후 1:5).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딤후 3:15). 그는 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로(고전 4:17) 사도의 소명을 이어받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울 것을 명받았습니다(딤후 4:1-8).

또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던 사무엘도 모태신앙인입니다(삼상 1:27-28; 2:18-21).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여호와께 드려졌고 여호와 앞에 자랐습니다. 왕이 없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이스라엘의 암흑기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을 세우는 중대한 일을 했습니다. 사무엘의 마지막 설교를 들으면 그가 얼마나 충성스러운 신앙인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삼상 12장).

하지만, 모태신앙인이라고 무조건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에 대한 수많은 예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과 함께 대제사장 엘리의 영향 아래 자라났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자녀들로 자랐고 결국 엘리 집안을 멸망시켰습니다(삼상 2:27-36). 아이러니하게도 훌륭한 모태신앙인이라고 여겨지는 사무엘의 아들들 역시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킬 만큼 엉망이었습니다(삼상 8:3).

오늘날에도 우리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란 흉악한 범죄자들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반대로 암울한 배경 속에서 대를 이어가는 죄악된 삶의 사슬을 끊고 경건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세운 신앙인의 간증을 접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모태신앙”이 곧 참 신앙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좋은 신앙의 배경이 좋은 신앙인으로 자라게 하는 좋은 토양이 될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무 자체가 좋은 나무인가? 나쁜 나무인가?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8)

기독교의 가르침과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랐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좋은 배경 속에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물론 교회에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고 순종했다는 것을 전제로 말입니다). 그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이가 있다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친히 선택하시고 그들과 일방적인 언약을 맺으심으로 그들에 대한 신실한 사랑을 보이셨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 제사제도를 알려주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을 배우게 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은 끝내 율법을 완성시킬 수 없기에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대신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죽을 희생제물로 삼으셨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권세를 얻었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기업을 함께 이어 받을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진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결론 내린 것처럼 ‘이 사실을 어려서부터 들어서 안다’는 것이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와 동의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배운 그 사실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는가’에 있습니다. ‘내가 정말 하나님의 진리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가 되었는가’가 중요하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좋은 배경 속에서 자랐다는 의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치 어려서부터 탁구장을 운영하는 집에서 태어나 많은 사람들이 탁구 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고 해서 무조건 탁구를 잘 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직접 배우고 연마하여 좋은 실력을 갖추는 것이지 좋은 배경 속에 있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실력을 갖추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3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나님의 언약 아래 있었고, 율법과 계명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자녀들에게도 그들이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하였습니다(신 6). 그들의 정치 지도자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법으로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 국가 전체가 이방인과 구별된 모태신앙 집단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공동체 국가였고 교육과정은 하나님의 계명이었습니다. 이보다 더 모태신앙의 배경을 갖춘 자들이 있을까요?

바울은 그들 역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죄인이었다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들에 비해 너무나 빈약한 신앙의 배경을 가졌던 이방인과 동일하게 그들은 죄인으로서의 한계를 갖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배경이 그들로 하여금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잘 믿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이 그들로 하여금 신앙심을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유익이 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9-18)

개와 같은 이방인들에 비해 월등한 모태신앙을 가졌다고 자부했던 유대인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고 외쳤던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그들이 가졌던 자부심과 교만을 완전히 뿌리 뽑고 바울이 외쳤던 그들의 진짜 영적 현실을 그들이 처절하게 바라보기 원하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7-2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모태신앙인으로서 저는 이렇게 말하기 원합니다. 모태신앙의 배경을 가졌다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교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곧 나의 신앙을 말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모태신앙이 곧 나의 영적 상태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대한 나의 겸손한 순종과 믿음이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강력한 주권과 능력이 나를 거듭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이 나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태신앙입니다.”라는 말이 “그러니 저는 당연히 그리스도인입니다”가 될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베드로와 같은 고백이 필요합니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혹은 주께서 크다고 칭찬하신 한 이방인 여인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여,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습니다.” 세리와 같은 겸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모태신앙’은 감사의 제목이지 자랑거리는 아닙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라는 말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당신이 언제 그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말해주십시오. 언제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죄인이었음을 알게 되었는지 말해주십시오. 언제 하나님께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부르짖었는지 말해주십시오. 어떻게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당신의 불의 가운데 드러나게 되었는지, 당신의 온전한 자랑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는지 말해주십시오. 그것이 모든 신자가 해야 할 믿음의 고백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위대한’ 모태신앙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복음기도신문]

조정의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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