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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칼럼] 사모님과 함께 있는데

사진: UnsplashDanis Lou

몇 년간 바이러스로 묶여 있었던 삶의 많은 것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핑크빛 사쿠라 꽃잎이 어느 새인가 푸릇푸릇하게 바뀐 잎사귀들로 녹음이 된지 한참이다. 초록이 짙은 계절이 다시 왔다. 교회에서도 주일 예배를 마치고 바베큐를 하기로 했다.

교회 청년들과 함께 바베큐 준비로 쇼핑몰에 갔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점심으로 푸드코너에서 각자 좋아하는 것을 먹기로 했다. 나는 나가사키 짬뽕을 먹었다. 앞에 앉은 사에코가 마파두부를 먹고 있었다. 사에코는 예배팀 기타싱어로 4학년 여대생이다. 며칠 전부터 매운 것이 먹고 싶어서 시켰는데 전혀 맵지가 않다고 말한다. 조금 맛보았더니 간장 베이스에 단짠단짠한 맛이었다. 한국음식 코너에 한참을 서 있었단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사모님과 함께 있는데 한국음식을 사서 먹는 것은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 먹고 싶은 마음을 그만두었다고 말한다. 일본어로 듣노라니 그 언어가 솔직하면서도 담백하게 내 마음에 훅~ 그만 ‘심쿵’했다. 내가 만들어 주는 음식에 대한 고마움을 전해 받아서일까. 나에게 성실한 그 마음이 너무도 이쁘고 깨끗했다. 마음이 마음에 닿으면 울림이 되어 남아있다. 이 마음 한동안 갈 것 같다.

아무것도 없어 조금은 적적하던 집 근처에 커다란 몰이 생겼다. 걸어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라서 편히 다녀오곤 한다. 몰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동 카페가 매주 수요일이 되면 서 있다. 그윽한 커피향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세련된 커피머신이 아닌 사람이 정성을 들인다. 커피를 주문하면 원두를 갈기 시작한다. 커피의 향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천천히 떨어지는 커피를 기다린다. 이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커피 한 잔에 담겨져 있는 성실함이 좋다.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도 성실함으로 그윽해지길 기도한다.

요즘 내 마음에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이 있다. 자격은 없으나 언약 안으로 성큼성큼 침노하며 뛰어 들어온 여인이다. 이스라엘도 들어오기 어려웠던 그 날개 아래로 강력한 믿음을 고백하며 들어온 이방여인이다. 모압 땅을 떠나 시어머니와 함께 하는 베들레헴의 고단한 삶의 여정 가운데에서도 성실함으로 마음을 지켜낸 여인이다.

룻의 성실함이 심겨지고, 자라나고, 꽃이 피어, 소망의 열매를 맺고, 회복의 열매를 맺는 구속과 축복의 여정을 보라. 나의 삶에도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여정이고 싶어라.

나도 내게 허락하신 이 길을 성실히 걸어야지. 마음을 잘 지켜야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엡 3:17)

마음이라는 것은 보기 어렵고 소리도 없으면서 참으로 미묘하다. 좋아하는 곳에는 어디에든 내려앉으려 한다. 그러기에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우리의 마음을 지키라고 한다. 잘 지켜진 마음은 믿음이요, 소망이요, 사랑 터를 이룬다.

보아스는 룻의 성실함과 정결함, 그 열정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리라. 보아스는 몰래 다가온 룻의 사랑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몸을 드려 전부를 준 룻의 마음을 받았다.

‘네가 말하는 모든 것을 내가 너를 위하여 할 것이다’ (룻 3:11)

얼마나 좋으면 기뻤으면 이럴까? 신부 룻이 말하는 모든 것을 해 준다는 것이라.

우리는 주님의 신부이다. 내가 말하면 신랑 되신 주님은 나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일하신단다. 내 입술의 모든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께 닿아진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신부는 신랑의 날개 아래로 의지해 들어가 정결함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참으로 나는 삶의 여정가운데 주님을 성실함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마음을 잘 지키고 있는가.

사모님과 함께 있는데… 사에코의 마음이 울림이 되어 전해온다.

주님과 함께 있는데…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빔밥을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내 안에 함께 계신 주님을 위하여 오늘도 나는 사역에 마음을 두지 않는 법을 애쓰고 있다.

주님,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게 하소서. 실로 내 영혼이 당신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소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14)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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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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