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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칼럼] 초라한 사진, 감격의 사진!

사진: 원정하 제공

지난 목요일(20일)에는 늘 그렇듯 빈민가 순회 주일학교 사역을 다녀왔습니다. 벌써 10여 년째니 최소한 1000번은 출동한 것 같습니다.

빈민가에 찾아가서 어린이들과 찬양 두세 곡을 하고, 성경 에니메이션 상영, 설교, 주기도문, 달란트 및 간식 나눔 후 귀가합니다. 집에서는 장비를 철저히 점검하고 충전하며 다음 출동을 대기하지요.

이런 끝없는 반복이 10년째 입니다. 서른살에 시작해서 마흔하나가 되었지요. 제가 뭄바이에 없을 때도 다른 청년들은 사역하고, 또 하루에 각기 다른 두세 곳에서 사역하는 날도 많으니 실제 에니메이션 상영 횟수는 2000회를 훌쩍 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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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원정하 제공

이날은 처음으로 사역에 참여한 형제가 사진을 찍어 공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무경험자가 저가의 폰으로 촬영한 사진들이라 그랬는지, 거칠고 적나라하더군요.

스무 명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 더러운 흙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는 제 모습. 그 사진 속의 제가 무슨 생각 하고 있었는지가 기억 났습니다. ‘밤인데도 너무나 덥다.’, ‘여기는 모기가 1000마리쯤 있나보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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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밋’형제가 정직하게 찍은 가장 귀한 사진. 사진: 원정하 제공

집에 와서 샤워하고, 공유받은 사진들을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정말 10년째 변화가 없는 곳이다 싶었고, 이 사역에 잠시 열심을 내다가 결국은 떠나버린 이들도 진심으로 이해 되었습니다. 제가 아직 20대나 30대 초반일 때 이 슬럼으로 단기 선교를 왔던 청년들이 그립기도 했습니다.

또 내가 인도에 있는 동안 미국 유학을 하거나 국내외에서 세련된 사역을 하는 동문들의 소식, SNS에 올라오는 수준 높은 신학과 시사 관련 포스팅들이 떠오르며, 그에 비해 나는 그 흔한 박사학위 하나 없이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잠시 가져 보았습니다. 그저 50세나 60세까지, 같은 흙바닥에서 기타를 들고 있는 사진으로 ‘공개 사역 일지’를 쓰고 있으려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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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밋’형제가 정직하게 찍은 가장 귀한 사진. 사진: 원정하 제공

그래 놓고도 다음날(21일) 새벽기도 후에는 한 청년이 ‘목사님 어제 갔던 슬럼에서 다음 주부터 한 달 정도는 오지 말라네요. 다들 고향에 갈 시즌이라 어린이가 서너 명만 있을 거래요.’라는 말을 듣고는 ‘그래도 가는 거지. 아니면 평소에 못 가던 다른 슬럼을 가거나!’라고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힘든 중에도, 그런 말이 반자동으로 나오는 제 모습이 참 신기했습니다. 스스로가 멋있거나 미련하기보다는 재미있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거기에 동의하는 청년들도 너무 기특했구요.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을 함께 빈민가를 뛰어다니던 우리 청년들. 그들 덕에, 열 살도 안 되었던 어린이들이 아기 엄마가 될 때까지 같은 빈민가를 수백 번씩 방문할 수 있었고 구글맵에도 안 나오는 깊은 오지까지 가서 복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이 일 하라고 저를 창조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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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밋’형제가 정직하게 찍은 가장 귀한 사진. 사진: 원정하 제공

공군에서 전투기 한 대가 한번 무장하고 출격해서 기지로 돌아오는 것을 ‘1 소티’라고 합니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비위생적이고, 어둡고, 가난하고, 범죄율이 높은 장소들을 1천 소티 씩, 팀으로서는 몇천 소티 씩 뛸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엄청난 축복입니다. 파일럿이 전투기에 무장을 싣고 가서 적진에 쏟아붇고 귀환하듯, 저희는 복음을 가득 싣고 가서 텅텅 비우고 들어옵니다. 이보다 귀한 일이 더 있을까요?

한 동료 선교사가, ‘섭섭 마귀가 가장 무섭다.’라던 게 기억났습니다. 그 초라한 사진들 때문에 잠시 그 마귀에게 틈을 보였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이미 저는 목사안수 받던 그날, 29살의 나이로 죽음을 고백했습니다. 아니,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나의 죄로 인해 죽임당하실 때 나 역시 함께 죽었습니다. 다만 그분은 부활의 첫 열매로 이미 살아계시지만, 나는 아직 부활의 소망을 품고 이 땅에서의 남은 인생을 에피소드처럼 살아갈 뿐입니다.

오래 살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악취나 소음, 먼지, 더위 등에 이전보다 더 예민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곤함도, 서운함도 그냥 받아들이겠습니다. 41세, 이미 인생의 절반 가량을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놀라운 회복과 업그레이드를 주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만일 “지금까지 40년 겪은 아픔만큼, 40년 더 감당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신다면, 충분히 YES SIR! 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이 길의 끝까지, 소명을 지키고, 전우들을 떠나지 않고, 완주할 수 있기를. SO HELP ME GOD!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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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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