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20일)에는 늘 그렇듯 빈민가 순회 주일학교 사역을 다녀왔습니다. 벌써 10여 년째니 최소한 1000번은 출동한 것 같습니다.
빈민가에 찾아가서 어린이들과 찬양 두세 곡을 하고, 성경 에니메이션 상영, 설교, 주기도문, 달란트 및 간식 나눔 후 귀가합니다. 집에서는 장비를 철저히 점검하고 충전하며 다음 출동을 대기하지요.
이런 끝없는 반복이 10년째 입니다. 서른살에 시작해서 마흔하나가 되었지요. 제가 뭄바이에 없을 때도 다른 청년들은 사역하고, 또 하루에 각기 다른 두세 곳에서 사역하는 날도 많으니 실제 에니메이션 상영 횟수는 2000회를 훌쩍 넘었을 것입니다.
이날은 처음으로 사역에 참여한 형제가 사진을 찍어 공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무경험자가 저가의 폰으로 촬영한 사진들이라 그랬는지, 거칠고 적나라하더군요.
스무 명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 더러운 흙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는 제 모습. 그 사진 속의 제가 무슨 생각 하고 있었는지가 기억 났습니다. ‘밤인데도 너무나 덥다.’, ‘여기는 모기가 1000마리쯤 있나보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집에 와서 샤워하고, 공유받은 사진들을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정말 10년째 변화가 없는 곳이다 싶었고, 이 사역에 잠시 열심을 내다가 결국은 떠나버린 이들도 진심으로 이해 되었습니다. 제가 아직 20대나 30대 초반일 때 이 슬럼으로 단기 선교를 왔던 청년들이 그립기도 했습니다.
또 내가 인도에 있는 동안 미국 유학을 하거나 국내외에서 세련된 사역을 하는 동문들의 소식, SNS에 올라오는 수준 높은 신학과 시사 관련 포스팅들이 떠오르며, 그에 비해 나는 그 흔한 박사학위 하나 없이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잠시 가져 보았습니다. 그저 50세나 60세까지, 같은 흙바닥에서 기타를 들고 있는 사진으로 ‘공개 사역 일지’를 쓰고 있으려나 싶었습니다.
그래 놓고도 다음날(21일) 새벽기도 후에는 한 청년이 ‘목사님 어제 갔던 슬럼에서 다음 주부터 한 달 정도는 오지 말라네요. 다들 고향에 갈 시즌이라 어린이가 서너 명만 있을 거래요.’라는 말을 듣고는 ‘그래도 가는 거지. 아니면 평소에 못 가던 다른 슬럼을 가거나!’라고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힘든 중에도, 그런 말이 반자동으로 나오는 제 모습이 참 신기했습니다. 스스로가 멋있거나 미련하기보다는 재미있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거기에 동의하는 청년들도 너무 기특했구요.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을 함께 빈민가를 뛰어다니던 우리 청년들. 그들 덕에, 열 살도 안 되었던 어린이들이 아기 엄마가 될 때까지 같은 빈민가를 수백 번씩 방문할 수 있었고 구글맵에도 안 나오는 깊은 오지까지 가서 복음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이 일 하라고 저를 창조하신 것 같습니다.
공군에서 전투기 한 대가 한번 무장하고 출격해서 기지로 돌아오는 것을 ‘1 소티’라고 합니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비위생적이고, 어둡고, 가난하고, 범죄율이 높은 장소들을 1천 소티 씩, 팀으로서는 몇천 소티 씩 뛸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엄청난 축복입니다. 파일럿이 전투기에 무장을 싣고 가서 적진에 쏟아붇고 귀환하듯, 저희는 복음을 가득 싣고 가서 텅텅 비우고 들어옵니다. 이보다 귀한 일이 더 있을까요?
한 동료 선교사가, ‘섭섭 마귀가 가장 무섭다.’라던 게 기억났습니다. 그 초라한 사진들 때문에 잠시 그 마귀에게 틈을 보였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이미 저는 목사안수 받던 그날, 29살의 나이로 죽음을 고백했습니다. 아니,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나의 죄로 인해 죽임당하실 때 나 역시 함께 죽었습니다. 다만 그분은 부활의 첫 열매로 이미 살아계시지만, 나는 아직 부활의 소망을 품고 이 땅에서의 남은 인생을 에피소드처럼 살아갈 뿐입니다.
오래 살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악취나 소음, 먼지, 더위 등에 이전보다 더 예민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곤함도, 서운함도 그냥 받아들이겠습니다. 41세, 이미 인생의 절반 가량을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놀라운 회복과 업그레이드를 주실 수도 있으시겠지만, 만일 “지금까지 40년 겪은 아픔만큼, 40년 더 감당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신다면, 충분히 YES SIR! 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이 길의 끝까지, 소명을 지키고, 전우들을 떠나지 않고, 완주할 수 있기를. SO HELP ME GOD! [복음기도신문]
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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