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믿음의 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동참함

사진 : Tima Miroshnichenko on Pexels

성도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동참하는 것은 참으로 요원한 일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측량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으려면, 성령님께서 로마서 6장에서 설명하시는 것을 온전히 빈틈없이 알아야 합니다. 이 진리가 우리의 온전한 실상이 되려면, 이 진리를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동참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중요성을 알려드리기 위해 이제 놀라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성도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당연히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미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더욱 놀라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도의 삶을 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애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도록 그리스도를 모셔 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둘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이제 우리는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도록 모셔 들였습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했지만, 이제는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연합하십니다.

이제 로마서 6장을 살펴보며,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연합하시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전한 복음을 대적하는 것을 이렇게 꾸짖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우리가 선행이 아니라 온전히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죄를 더하면 은혜가 더하여진다는 말인가?)”(롬 6:1).

바울 사도는 이 질문에 대해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아직 그런 영적 사투의 문턱을 넘어선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이 이렇게 우리의 무지를 꾸짖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 6:3).

모릅니다. 우리가 우리 몸의 출생에 대해 모르듯이, 우리는 이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영적으로 태어날 때, 당신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말씀해주십니다.

즉, 우리가 아니라 주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이므로 주님의 죽으심은 곧 우리의 죽음이라 하십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요?

성령 세례를 통해 가능합니다. 성령님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에 우리의 자리를 확보하십니다. 가지를 접붙일 때, 포도나무에 가지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고전 12:13).

우리는 보통 신앙생활의 시작에 대해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시간과 장소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모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갈보리 언덕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이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의 죽음으로 간주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단번에 처리하고 우리에게 이김을 주신 곳은 갈보리 언덕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와 하나라는 것이 소급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하나이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겪는 것을 우리도 동일하게 겪습니다. 우리 개개인이 겪지 않아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겪으신 것은 우리가 겪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은 어떤 일을 겪으셨나요?

그것은 바로 죽으심과 부활하심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셨습니다(롬 6:11).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에 동참한 자를 모두 죽음과 부활에 들어간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의 더 깊은 의미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통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합니다. 전자는 구원이며, 후자는 거룩함 곧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혼자 죽도록 하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믿는 자들이 모두 아들과 함께 죽도록 하셨습니다. 곧, 죄에 대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이 무덤에서 혼자 일어나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과 함께 아들을 믿는 자들을 모두 일으켜, 하나님께 대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십자가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종결적으로, 효과적으로 처리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죄를 이기는 이김은 우리의 것인 양 우리에게 넘어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이 이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출발입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신앙생활에 마구 던져 넣으시고, 아무 도움도 받지 않고 헤쳐 나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 아버지를 비유로 들어봅시다.

아들이 성인이 되어, “아버지 이제 일을 좀 해야겠어요.”라고 하면, 아버지는 기뻐하며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들아, 들어봐라, 네가 태어났을 때, 이때가 오리라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네가 사업을 하도록 너를 위해 은행에 일만 달러를 예치해 두었다. 그것을 가져가거라. 네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리스도인으로 첫 출발을 할 때, 네가 필요할 때를 대비하여 너를 위해 예비한 것이 있다. 그것은 죄와 사망을 이기는 내 아들의 이김이다. 그것을 가져가거라. 네 것이다.”

참으로 죄와 사망을 이기는 예수님의 이김은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비축한 것을 우리의 것으로 여기면, 모두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에 대하여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여긴다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하나님의 자녀가 ‘이와 같이 여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유업입니까? 결코 패하지 않는 이김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이 있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는 죽음과 삶에서 예수님과 하나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삽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김의 삶의 단단한 기초를 만져보았습니다. 이 기초는 흠이 없고, 제한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것과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애쓰는 것은 분명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거룩한 삶은 온전히 주님을 의지함에 달려있습니다. <Norman B. Harrison – 룻선교회 제공> [복음기도신문]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기사

Joshua-Hoehne on Unsplash
거듭난 사람, 동료 신자를 더욱 사랑
05051
[특별기고] 차세대 선교 리더 “일어나라 언약의 세대”
Andrik-langfield on Unsplash
[GTK 칼럼] 성경이 말하는 결혼: 8. 부부의 대화(1)
299_6_1 Gospel(1068)
모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복음!

최신기사

거듭난 사람, 동료 신자를 더욱 사랑
[특별기고] 차세대 선교 리더 “일어나라 언약의 세대”
[GTK 칼럼] 성경이 말하는 결혼: 8. 부부의 대화(1)
어린이날에 생각하는 가정과 교회공동체의 역할
모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 복음!
[최요나 칼럼] 꼼수 종교인을 주의하라!
미 대학의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탈진실 시대의 산물… 분열의 시대 진리와 도덕은?
Se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