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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양 칼럼] 도올 김용옥, 동서양을 넘나드는 반기독교 독설가

사진: pixabay

눈먼 기독교(22)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조영남이 공식적으로 자신의 최후 멘토라고 치켜세워준 사람이 있는데 바로 학자 겸 방송인 도올(檮杌) 김용옥이다. 화려한 학벌과 거침없는 독설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김용옥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국문학자였던 양주동 선생이 스스로 ‘국보(國寶)’라고 한 것을 빗대어 김용옥은 자신을 ‘우주보(宇宙寶)’라고 내세웠는데 이러한 자신감은 세상을 향한 그의 철학과 사상의 반영이다. 특히 그는 자신이 철학자이며 한때 신학생이었다는 점을 들어 기독교의 전문가인양 내세우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매스컴은 김용옥의 상품성 높은 화술을 담보 삼아 공영 방송에서 기독교를 폄훼(貶毁)하는 그의 말을 여과 없이 내보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01년 KBS에서 시리즈로 방영된 ‘도올의 논어 이야기’ 중 그가 언급한 몇 가지만 살펴보자.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이야기는 역사성이 없는 이야기이며, 성경은 허구요 소설이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은 모두 예수의 제자들이 꾸민 말이다. 
모든 위대한 사람은 힘든 환경에서 태어난다. 예수도 사생아일 것이다. 그래서 위대해진 것이다.
임신 중인 마리아와 요셉이 단순히 호구 조사를 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베들레헴까지 왔을 리가 없다. 이것은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 되려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함으로 예수의 추종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다.

예수의 제자들이 복음서를 거짓으로 기록했다는 주장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슈바이처나 다른 자유주의 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케케묵은 억설(臆說)이다. 그런데, 그 주장이 과연 타당한 주장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는 사실이 나타난다. 예수의 제자들이 만약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그들은 역사상 가장 멍청한 사람들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자기들이 조작한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한 평생 핍박받고, 쫓겨 다니고, 고난당하다가 결국 하나같이 목숨을 잃었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세상의 시각으로 볼 때,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는데, 그 거짓말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 그 누가 과연 그런 바보짓을 하겠는가!

복음서를 조작된 기록이라 주장하는 것도 그렇지만, 특별히 기독교의 핵심 교리 가운데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처녀) 탄생을 부인하고 노골적으로 예수를 사생아라고 공중파 방송에서 떠들어댄 그의 무모함에 기독교인들은 커다란 분노를 느꼈다. 물론 그의 말에 기분 좋아라 박수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미 그 전부터 예수가 사생아라는 주장을 책을 통해 자신 있게 주장한바가 있다.

마리아가 ‘씹’의 행위가 없이[1] 성령이나 하늘에 감하여 애기를 배게 되었다라는 것은 명백한 비생물학적 거짓말이면서도, 이 거짓말이 비단 <신약성서>에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고대 탄생설화에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설화를 꾸밀 수 있는 지능을 가진 고대 지성인들의 음모의 공통성 보편성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2]

처녀 탄생이 고대 세계의 공통적 설화일 뿐이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김용옥에 대해 기독교계가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 때, 뜻밖에도 그에게 유리한 사건이 발생했다.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김용옥의 KBS 강의에 특별 출연한 것이다. 김 추기경은 천주교의 인간관은 천(天, 하늘)을 인정하고 천명(天命, 하늘의 명령)을 따름으로써 군자가 될 수 있다는 공자의 가르침과 상통한다고 말했다. 천주교인은 물론 타종교인과 비종교인까지도 존경해 마지않는 추기경이 우호적으로 자신을 대해주는 모습이 방송을 탔으니 그 일이 김용옥에게 엄청나게 커다란 격려가 됐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용옥은 예수 동정녀 탄생 기사가 마가복음에 나오지 않는 것은 그 사건의 신빙성을 의심케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기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마가복음에서 예수 처녀 탄생 이야기가 다뤄지지 않으니까 그것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은 참으로 어설프다. 그러면 김용옥은 마가복음의 다른 내용은 믿는가? 마가복음에 나오는 예수 십자가 사건과 각종 이적 행하심은 어떠한가? 다 믿는가? 최초의 복음서에 써있으니 믿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김용옥은 믿지 않는다. 전혀 믿지 않는다. 결국은 아무 것도 믿지 않으면서 어설픈 이유를 갖다 붙인다.

마가에게는 예수 탄생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사건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예수 십자가 고난 예고와 성취는 마가의 시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마가는 그 사건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다른 많은 내용은 생략했던 것이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전기(傳記)가 아니다. 예수가 구주되심을 선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록이다. 예수 동정녀 탄생 사건이 비생물학적 사건이라서 김용욕은 믿지 않는다. 예수 동정녀 탄생 사건 같은 이야기가 다른 고대 설화에서도 발견되기에 김용옥은 믿지 않는다. 그가 성경을 판단하는 잣대는 명백하게 과학, 합리성 그리고 자유주의다.

교회는 성황당, 예수는 무당?

사실 김용옥은 예수가 사생아였기에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를 위대하게 봐준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수는 이 세계에서 천국을 실현하고자 한 사회운동가입니다. 그 점에서 예수와 공자는 근원적 차이가 없습니다.” 결국 예수의 위상은 그에게 공자 급(級)이다.[3] 그 정도면 나름 많이 봐준 것이겠지만 그것은 사실 예수를 부인한 것이고 기독교를 부정한 것이다. 어쨌거나 김용옥의 반(모)기독교 사상은 그 이전은 물론 그 후에도 자신의 책들을 통해 수차례 반복해서 드러나고 있다. 예수에 대한 그의 또 다른 인식을 살펴보자.

한국의 교회는 우리 민족문화사적 입장에서 볼 때 성황당의 근대적 변용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나는 본다. (중략) 오늘 한국 기독교의 샤머니즘적 현상을 한국 기독교인의 타락이라고 한국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가 책임을 지고 그 문제를 양심적으로 정직하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불트만이 말한 대로 예수의 자기 이해가 신화적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예수는 무당이다.[4] 

김용옥은 자신의 신학적 토대가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불트만이 누구인가? 성경에 있는 비합리적인 요소를 제거하려는 (일명 비신화화) 작업을 통해 인간 예수의 참 모습을 찾아 내겠다고 난리를 친 신학자 아닌가!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모든 성경 내용을 잘라내어 버리고, 다만 사실이 아닌 것들이라도 그 의미는 중요하다며, 새로운 신학을 창출해낸 사람이 바로 불트만이다. 그에 의하면, 예수의 이적은 진짜가 아니지만, 그것이 기록된 의미가 있다. 예수의 부활은 사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믿으면 그것은 믿는 자에게는 진리가 된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정해야 신앙의 능력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진실은 아니지만, 의미는 있다’는 불트만의 신학 방법이다. 완전히 뺨 때리고 얼러주는 격이다. 불트만의 신학은 온전한 신앙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닌데, 이 불트만이 바로 김용옥의 사상적 토양을 제공해준 인물 가운데 하나다.

김용옥에게 교회는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성황당이고, 예수는 업그레이드된 무당일 뿐이다. 예수는 인간의 고통과 번뇌와 슬픔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서양 무당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수가 무당이기에 기독교는 그냥 샤머니즘일 뿐이다. 물론 김용옥은 기독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가 원초적으로 다 샤머니즘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기독교가 대표적으로 잘 자리 잡은 샤머니즘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선교사 200년을 통해 일관된 가장 거대한 주제는 역시 이 땅의 샤머니즘과의 해후며, 이 해후 속에서 대면하지 않을 수 없는 온갖 마찰과 융합의 문제들이다. (중략) 야소(예수)는 인민대중에게 있어선 센[5] 무당, 센 신령, 그래서 딴 귀신들이 꼼짝 못하는 그러한 센 자라는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6]

모든 종교가 샤머니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김용옥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기독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를 고등한 샤머니즘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샤머니즘적 요소가 ‘있다’는 것과 샤머니즘 ‘이다’는 같은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샤머니즘의 가장 큰 요소는 ‘신(神)을 부리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신은 인간이 부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신은 결코 인간의 의지나 소원대로 컨트롤 되지 않는다. 그것은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어보면 금방 파악되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적 존재이기에 인간이 하나님을 타 종교 신처럼 즉 우상처럼 취급하려다 혼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는가! 그러므로 김용옥이 기독교를 샤머니즘의 고등 형태라고 파악한 것은 기독교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다른 귀신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서 굴복하는 것은 예수가 상대적으로 힘이 ‘센 자’라서가 아니다. 예수는 창조주인 하나님이고 귀신은 타락한 천사 즉 피조물이기에 그렇게 되는 것을 김용옥은 알지 못한다. 동양철학자인 그에게 신이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 종교란 신(神)이 주인공은 아니다. 종교의 주인공을 신으로 보는 한 동양의 종교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7]

김용옥은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자기들만의 주관적 절대성일 뿐이지 모든 종교는 서로 상대적 절대성을 가질 뿐이라고 말한다. 절대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적자(嫡子)답게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절대 신앙은 자기들만의 주장일 뿐이라고 김용옥은 아주 간단히 기독교 신앙을 무시해버린다. 그는 사생아로 태어난 예수가 역사 속 위대한 인물로 자리매김 한 것은 유리겔라 같은 센 마술사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예수를 역사적으로 실존인물이라고 상정할 때에 그 실존인물인 예수, 즉 생물학적 조건이 나와 같은 어떤 사람 예수는 분명 유리겔라보다는[8] 좀 더 센 마술의 인간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9]

김용옥의 예수 인식은 종합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예수는 사생아로 태어나서 마술사적 능력을 발휘하는 아주 센 무당이되어 사회 운동에 앞장선 인물인데, 이는 중국의 공자와 비견 될 수 있다. 이것이 자칭 우주적인 보물이 파악한 예수다.


[1] 지나치게 노골적인 표현이라서 지면에 옮기기가 조심스럽지만, 김용옥은 예수와 기독교에 대해서 이보다 더한 글도 쓴 바가 있기에 이 정도는 양호하다고 할 것이다.

[2]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통나무, 125쪽

[3] 김용옥은 ‘도올의 논어 이야기’에서 예수만 사생아라고 한 것이 아니라 공자 역시 사생아라고 말했다. 이 점에 대해 유생들이 역시 비난을 했다. 혹자는 김용옥이 공자의 출생에 대해 오해를 한 것이라 말한다. 즉, 공자는 적장자(嫡長子)가 아닐 뿐 사생아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자의 부친이 대를 이을 정상아를 낳기 위해 일부러 시골의 젊은 여인을 취한 것이지 어쩌다보니 우연히 실수로 공자를 낳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4] 김용옥, 『절차탁마대기만성』, 통나무, 145쪽

[5] 원문에는 ‘센’이 아니라 ‘쎈’으로 돼있다. 여기서는 표준어인 ‘센’으로 바꾸었지만, 원문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발음을 ‘쎈’으로하는 게 좋겠다.

[6] 김용옥,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통나무, 97-98쪽

[7]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통나무, 78쪽

[8]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마술사

[9] 김용옥,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통나무, 111쪽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Park Sun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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