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준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위로는 아닐 것이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을 덮어 버리는 신학적인 담요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런 근시안적인 접근은 종종 사랑의 더 넓은 의미를 무시해 버리곤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에 정죄함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사랑과 율법주의
많은 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말한다. 영향력 있는 대형 교회들의 인기 있는 슬로건인 이 말은, 고귀한 우선순위들을 손 쉬운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 간단한 문장은 복음을 그릇되게 요약한 것이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오해는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만연해 있는 믿음이었다. 누가복음은 이 문제와 관련된 사건을 상세히 말하고 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눅 10:25-28).
만일 당신이 여기까지만 읽는다면 그리스도께서 지금 천국으로 들어가는 옆문을 여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존 맥아더는 주님이 이 구절에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반대로 율법은 완전하고 완벽한 순종(약 2:10)을 요구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육체적, 영적, 그리고 영원한 죽음을 약속(겔 18:4,20; 롬 6:23)하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의 구원에 대한 율법주의적인 접근을 확신시켜 주기 보다는,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잘못된 경건함과 그 법을 완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하시며 경고하셨다. 그러나 그 서기관은 그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에 그는 어리석게도 자신의 의로움에 빠져서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 10:29). 존 맥아더는 서기관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시점에서 서기관은 누가복음 18장 13절의 세리처럼 그 자신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자비를 간청해야 했다. 그러나 도망갈 곳이 없는 궁지에 몰린 그에게는 비참한 교만과 독선이 이어졌다. 그는 자신을 부인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그는 고백하지 않았지만 분명 마음 속에서 죄에 대한 확신이 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내면의 자각을 경멸하며 겉으로 의롭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적절한 능력을 주장하면서 율법주의와 같은 자기 확신을 자주 반복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경솔하게도 그 슬로건에 익숙해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으라는 성경의 반복적인 권고는 간과해버린다. 율법사가 자기를 정당화하면서 율법의 엄청난 중압감을 느껴야 했던 것처럼 주님의 계명에 대한 정직한 반응은 확신과 죄책감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제자들에게 하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참조, 요 15:12)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를 생각할 때, 그리고 그가 그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하셨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훨씬 더 큰 도전이 된다. 솔직히 말해서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사랑보다도 자기 희생의 본을 보인 순수한 사랑이다. 복음에는 그가 구원하려는 백성들에 대한 그의 놀라운 사랑의 본이 흘러 넘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를 죄책감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께서 그 사랑을 위해 지불한 대가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능력에 얼마나 결함이 많은지 생각해보라. 모든 이기적인 충동, 자기 보호를 위한 노력, 동정심으로 행하는 모든 위로의 방법은 예수님의 사랑과 모순된다. 만일 우리가 정직하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예수님처럼 사랑한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해해갈수록 우리의 죄악 때문에 그분의 본을 따르지 못하는 실패는 더욱 커져갈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도 더 나을 것이 없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초기부터 주님은 그의 백성들의 마음 속에 최상의 것을 요구하셨다. 신명기 6장 5절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자신은 그 말씀을 가장 큰 계명으로 간주했다(마 22:36~38).
그러나 잠시 멈춰 생각해보자.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사랑하는가? 그분의 영광이 우리들의 위대한 소망인가? 그를 경배하는 우리의 예배가 세상의 일들로부터 자유로운가? 우리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하늘에 저장되어 있나? 우리의 애정이 그분에게 고정되어 있는가?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주된 동기인가? 그분께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인가? 우리는 그분에게 예배 드리면서 지내는가? 우리 모든 삶이 그분을 섬기고,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는데 헌신하는가?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의 본질이다. 아담의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단절시켰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는 회복될 수 있으며 영원토록 아버지와 완전하고 사랑스러운 교제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우리의 타락한 육체의 무능력과 부정함 때문에 우리의 죄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말씀이다.
초점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바른 이해는 우리의 영적 성장과 경건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자기 기만적인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는 진정한 영적 상태의 심각성에 대한 깨우침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로 단순화된 복음은 전혀 복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이행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바리새인적인 확신보다 혹은 심지어 가장 단순한 요구조차도, 그들은 육신의 치명적인 결함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죄악의 중압감을 짓밟히듯 경험해야 하고 자기 의를 뒤덮고 있는 교만을 깨뜨려야 한다. 그들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이 묘사한 변화를 겪어야 한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 3:23-24)
쉽게 말하면, 그들은 겸손해져야 하고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부주의한 신자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겸손해져야 한다. 구원은 조잡한 신학이나 외설적인 삶에 대한 변명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삶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그 사랑과 계명을 바르게 알고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부족한가를 인식하는 것이 우리의 성장과 경건의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 닮기 위해 절제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의 사랑의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그것이 그리스도를 향한 더 큰 사랑으로 박차를 가하게 해야 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이 모든 것들은 궁극적으로 사랑의 완전한 표준이시며 사랑의 완전한 표현이신 그분에게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분만이 사랑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이루신 유일한 분이시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진실함과 완전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다음 시간에 살펴볼 주제이다. [복음기도신문]
카메론 부엣(Cameron Buettel)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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