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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들어가야 한다

사진: pixabay

보좌 앞의 그리스도인과 십자가 (1)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주님의 보좌는 은혜입니다. 죄 사함이나 의롭다하심과 마찬가지로, 보좌 앞의 삶은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보좌 앞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과도 관련이 있으며, 은혜로 내딛는 첫걸음과도 관련이 있지만, 사람의 편에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거저 주시는 구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구원의 삶은 성령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영광의 삶이 수고함으로 얻어진다면, 우리는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게 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영광의 삶은 언제나 오직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십니다.(고전 1:30)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거저 받았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거저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은 보좌까지 우리에게 주십니다. 갈라디아서는 ‘예수님 더하기’라는 이단을 영원히 종식시킵니다. 그럼에도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아무 대가도 치를 것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 자신을 드리면 됩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입구에 서 있습니다. 십자가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보좌 앞의 삶의 입구에도 서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동일한 십자가이며, 새롭거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죄 씻음을 받았을 때, 십자가는 우리의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와 구주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특권과 영광을 더 온전히 누리게 됩니다.

보좌 앞의 삶은 거룩한 삶 이상입니다. 보좌 앞의 삶은 구속의 정점입니다. 보좌 앞의 삶은 당연히 몇 가지 단계를 전제로 합니다. 그 전제는 굴복, 헌신, 성령 충만, 이기는 삶입니다. 보좌 앞의 삶에는 이 모든 것이 들어있고, 이 모든 것을 전제로 합니다.

반복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의 입구에 십자가가 서 있듯이, 보좌 앞의 삶의 입구에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더 명확히 하자면 십자가는 보좌 앞의 삶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구주는 십자가의 길을 지나 보좌에 오르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8~9)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하나님의 길에서 누리는 영광은 오직 십자가의 길로 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음에 내려가면 갈수록,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더 높이 올라갑니다.

보좌 앞의 삶이 십자가가 아닌 다른 것으로 말미암는다면,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보았던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사탄의 전략은 ‘자력으로’ 위대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이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사탄은 십자가 없는 보좌 앞의 삶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저주받아 마땅한 속임수입니다.

십자가 없는 보좌 앞의 삶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 땅에서도 저 세상도, 바로 지옥입니다. 그와 같은 마귀의 속임수는 물리쳐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보좌 앞의 삶과 십자가 없는 왕좌의 삶은 극과 극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차이이며, 갈보리와 가야바의 차이입니다.

시험이 오는 어둠의 시간이 닥치고 십자가가 힘겨울 때, 나의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 참으로 보좌 앞의 삶은 오직 십자가로만 지켜지며, 다른 것을 배격합니다. 로마인의 채찍을 온전히 감내한 자만이 보좌 앞의 삶에 들어갑니다.

“우리 옛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것은 엄중한 판결입니다. 하지만 이 판결은 이미 시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우리와 상의하지 않으셨습니다.

과연 ‘옛사람’이 그런 형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문제인가에 대해, 하나님은 우리의 동의나 생각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흠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십자가형을 내린 것은 결국 사람의 성정이었습니다. 다른 많은 질병의 결국이 그러하듯이, 옛사람이라는 끔찍한 문둥병이 마침내 파국을 만들었습니다.

죄의 본성과 실체는 결국 본체를 드러냅니다. 죄는 본체를 드러내고,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의 평결을 선포합니다. 옛사람이 사형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골고다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이 심판이 마음에 드냐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지 않으십니다. 심판은 내려졌고, 형은 집행되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F. J. Huegel – 룻선교회 제공>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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