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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그리스도인의 상투적인 말(8):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관계이다

사진: Unsplash의 Kevin Gent

종교란 단어는 강대상에서 너무 많은 설교자들에 의해서 경멸의 뜻으로 변질되어 왔다. 오늘날 그 말은 다시 신자들 쪽에서 퍼지고 있다. 선의의 복음 전도자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종교를, 법칙과 규정의 구속복으로 묘사하기 위해 오랫동안 참 열심히 노력해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길은 종교의 사악함에 대한 신선한 대안책으로써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종교의 정확한 묘사보다는,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지우기 위함이다.

이것은 흔히 사용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상투 어구인,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그것은 관계이다.”라는 말에서 가장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종교를 발견하는 일

당신은 “종교적으로” 보이는 넥타이를 매는 동안에는, 문을 노크하거나, 머리를 깎아 밀고, 육류를 피하며, 혹은 산악 자전거를 탈 필요가 없다. 특별한 형태의 믿음과 행위를 고수하는 어떤 그룹의 사람들을 ‘종교’라고 칭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종교적이다. 무신론자들은, 만물은 아무 것도 창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불신에 대하여 이성적인 것보다 훨씬 더 종교적이다. 스포츠광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선수들을 우상화하고, 모든 경기에 참석한다. 영웅적인 기타리스트들은 그들의 팬들에 의하여 록 음악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날마다 “반종교적인” 많은 그룹의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그들의 전자기기에 전념하고 있다. 속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비록 당신이 종교적이라는 사실을 종교적으로 부정할지라도 당신은 종교적이다. 중요한 질문은 당신이 고수하고 있는 종교가 참된 것인지 혹은 거짓인가 하는 사실이다.

당신의 종교는 하나님을 공경하는가 혹은 화나게 하는가? 성경은 순수한 종교를 정의하고 또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반영하므로써 이 문제에 관하여 밝히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이러한 것이니: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27).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존 맥아더는 성경적인 종교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설명하였다:

경건한 종교, 다시 말하면, 성경적인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룩한 순종의 문제이다—이것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자신에게 정직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타적이며, 세상을 향해 타협하지 않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태도를 통해 나타난다.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야고보의 설명처럼,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가운데서 그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나타나는, 사람다운 마음이 넘쳐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상투어구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관계이다”의 후반부인 “관계이다”의 증거가 된다.

어떤 종류의 관계인가?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제시하는 복음전도자들은 시간적으로 너무 늦었다. 많은 현대의 복음주의자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핵심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러한 관계가, 좋은 것인가 혹은 나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신약성경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두 가지 중요한 범주 아래 —그의 원수가 된 사람들과 그리고 그에게 화목케 된 사람들—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회심은 그러한 두 가지의 상태 사이에서 이동하는 것이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로마서 5:10-11)

그리스도인은 구원받기 전 우리의 악함에 대하여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마치 영적으로 어떻게 해서든 중립적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반역하였고, 그 반역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의 성격을 정해 놓는 것이다. 우리의 타락은 하나님의 성품의 거룩함과 결부되어 은혜를 참으로 놀랍게 만든다. 우리가 범했던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는 것과 그분이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시는 것,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는 것은 건너기가 불가능한 장애물이다(골로새서 2:14). 그러나 우리가 구원에 있어서 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막연한 “관계”로의 초대로 요약하게 되면, 그 구원은 잃어버리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결코 우리 창조주와의 관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관계가 적대적이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모든 불신자들에게는 그 관계가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그것이 바울이 복음 전도를, 관계의 사역이 아닌 “화목의 사역”으로 설명하는 이유이며(고린도후서 5:18)—우리는 죄인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역을 통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부르고 있다(고린도후서 5:21).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관계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적으로 거짓된 이분법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와 관계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부추긴다. 대신에, 그러한 분열은 참되거나 혹은 거짓된 종교 사이에서 생길 수 있으며, 화목하게 되거나 멀어지게 된 관계에서 일어날 수가 있다. 당신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는가, 만약 그렇다면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행함으로써 그러한 화목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삶을 사는가?

상투어구: 그것의 발견과 반응

그리스도인의 상투어구에 대한 연속 강의에 있어서, 우리는 당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을 알기를 바란다. 올바른 것처럼 들리는 것과 실제로 올바른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우리는 깊이 있는 성경적인 기초와 예리한 성경적 분별력이 필요하다. 상투어구는, 마치 정치적인 약속들이 믿을만 하게 들리고 또한 연하장이 진실하게 보이는 것처럼 종종 그럴듯하게 들리므로— 우리는 그들을 믿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상투어구는, 다른 모든 진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언제나 성경의 다림줄에 의하여 판단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분명한, 성경적인 용어로 생각하고, 또한 단지 성경적으로 들리는 것만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복음기도신문]

원문: https://www.gty.org/library/blog/B160208

김상우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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