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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이란의 베일, 여성들의 선택인가 정부의 강요인가 ‘선택의 기로’

사진: 이정순 제공

이란 시위로 본 무슬림 여성과 베일(2)                                     
  3. 시위의 실제 배경 ‘경제 문제’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이란 정부는 모든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베일과 헐렁한 옷으로 온몸을 가리도록 하는 복장 규정을 의무화했다. 잠복 활동하는 도덕 경찰은 약 7천 명 정도이며, 주요 임무는 여성의 복장 단속과 적절한 의복을 착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보이는지, 바지와 겉옷이 너무 짧거나 꽉 끼는지, 화장이 너무 짙은지 등을 검사할 수 있다. 베일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은 식당 출입이 금지되며 만약 이를 위반하면 당사자는 물론 식당 주인도 이를 방조했다는 이유로 영업정지 등 문책을 받는다.

2022년 9월 이후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국적인 시위는 그동안 이란 내에서 벌어졌던 시위와 양상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미니의 죽음에서 시작된 시위는 자유와 인권에 대한 요구로 바뀌어져, 이슬람주의를 강조해 온 이란 정부를 반대하는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베일을 벗은 여성들이 시위대 한가운데서 춤을 추는 등 젊은 층은 매우 대담한 행동을 표출하고 있다. 

이 시위에는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남성과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고 기성세대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이는 이란의 내부적 문제들이 동시에 터지면서 분출된 탓이다. 거리의 시위대는 대부분 청년들로 좌절감을 호소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지난 40년 동안 이란 정치인들의 조직적인 부패와 수십 년간의 높은 인플레이션, 50% 넘는 물가 상승률, 빈곤층의 증가, 제로에 가까운 경제 성장, 높은 실업률, 후진적 행정 시스템, 사회 및 정치적 자유 결핍 등 수많은 요인들 때문에 이란의 젊은 세대가 미래에 대한 소망을 상실하고 있다. 국민 약 60%가 35세 이하인 이란 청년들의 30%가 실업자이며, 이들은 인터넷 등으로 다른 나라의 청년들의 자유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란 국민들은 오랜 경제적 위기로 피로감이 높아지면서 경제적 위기의 책임도 함께 묻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위에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처음으로 서로 다른 경제적 배경을 지닌 사회 계층이 테헤란의 중산층부터 멀리 낙후된 지역의 노동자 계층까지 함께 항의에 나섰다. 

사진: 이정순 제공

특히 이번 시위는 2021년 대선에서 당선된 강경 보수파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의 성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여성들의 베일 착용 규정을 강화하는 등 보수적 색채가 더욱 강했다. 도덕 경찰이 강경하게 단속하는 이유는 ‘안면인식 기술로 베일 미착용 여성 식별 계획’을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라이시 대통령은 2022년 9월 22일 미국에서 CNN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여기자에게 머리 스카프 착용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기도 했다.

4. 베일의 혁명적 상징성
이란은 여성의 인권이 억제된 나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팔레비 왕조 시대에는 남녀 분리 정책이 없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는 서구의 영향으로 1960~1970년대 이란 테헤란은 서구적이며 중동의 파리(Paris)라고 불릴 정도로 큰 나이트클럽이나 오락을 즐길 곳이 있었으며 자유롭게 교제할 수도 있었다. 길거리에는 선글라스를 쓴 여성들이 반팔 블라우스나 민소매 원피스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서구식 옷차림에 베일을 착용하지 않은 이란 여성들이 모든 여성의 생활을 전반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구식 의복이나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의복이나 자신들이 선호하는 복장 스타일을 선택하며 착용할 수 있었다. 검정 베일이나 차도르(chador)를 착용한 여성도 있지만 의무가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이었다. 여성은 반드시 머리카락을 가리고 정숙한 이슬람식 복장을 착용해야하는 정부의 강요에 의한 법적 규제가 없었다.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에서 베일은 공공장소를 들어갈 때 오히려 벗어야 할 것으로 인식됐다.

반면, 무함마드 레자 샤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을 뿐만 아니라 이란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렀으며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해 점점 더 억압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항의하였다. 결국 1977년 봄과 1979년 2월 사이에 전개된 이슬람 혁명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당시 혁명에는 수많은 여성이 참가하여 1979년 팔라비 왕조를 몰락시킨 이슬람 혁명의 일부였다. 중산층 및 하층 여성들은 이슬람 혁명으로 자신들의 경제 및 사회적 지위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과 자신들의 법적 지위가 향상되길 바라며 혁명의 대열에 수많은 여성이 참가했다. 혁명에 참여한 여성들은 팔레비 왕조에 반대하기 위해 베일을 착용했다. 당시 여성의 베일 착용은 여성의 인권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팔레비 왕조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호메이니 정부의 반서구 가치는 ‘이슬람 정신을 되살리겠다’며 여성이 공식적으로 집 밖으로 외출 시에는 의무적으로 베일 착용을 강요했다. 외국인이라도 이를 지켜야 한다. 여성들이 베일을 착용하지 않고 외출하면 경찰에 체포될 수 있으며, 2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25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보수적인 여성들은 전신을 보이지 않게 감싸고 다니며 차도르를 통해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한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베일로 머리 전체를 가리거나, 얼굴을 가리는 여성은 많지 않다. 젊은 여성들이 베일의 일종인 ‘루싸리(rousari, 페르시아어로 ‘머리에 쓰는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목과 머리의 일부를 가리며 팔과 다리를 노출하지 않는 긴 팔 상의와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붉은색 립스틱을 바르고 눈 화장을 하며 미국 팝 음악을 좋아한다. 여성이 운전할 수 있으며, 교육이나 사회활동에도 제한이 거의 없다. 여성의 참정권도 일부 인정되며, 젊은 여성의 고등교육의 수준이 높아져서 문화적, 경제적 활동과 정치적 참여도가 증가하여 민주주의의 구축능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가족 이외의 남성과 어울리는 것은 불법이며 남녀공학은 금지되어 있다. 식당과 버스에서는 남녀 좌석이 분리돼 있다. 여성은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맨 앞과 맨 뒤 칸만 이용할 수 있다. 

과거 이란에서 서구식 옷차림에 베일 착용을 하지 않은 여성들의 모습이 혁명 이전 여성의 삶을 전반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는 오늘날에 비해 훨씬 더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나이에 관계없이 많은 여성들이 베일을 착용했고 더 보수적인 옷차림을 선택했다. 베일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이란 여성들은 전신을 가리는 차도르부터 화려한 스카프까지 자유롭게 자신의 취향에 따라 베일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란 여성의 베일 착용에 관하여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과 이후의 큰 차이는 여성들 스스로의 선택이냐 아니면 정부의 강요에 의한 것이냐이다.  

▲ 쿠웨이트 거리에서 만난 여성들의 모습. 사진: 이정순 제공

III. 베일의 기원과 상징성

1. 베일의 기원

  베일 문화의 기원은 이슬람 발생 이전으로 소급된다. 여성들이 베일로 얼굴을 가리는 풍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고대와 현대의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머리 착용 베일과 긴 가운의 옷은 이슬람에서 고안하거나 새롭게 소개된 것이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입던 옷이다. 고대 셈족부터 사용된 베일은 이슬람교 발생 전부터 존재한 중동 지역의 옷차림이다. 중동과 지중해 연안 사산왕조(Sassanian 226~641)와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일반적이었다.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상류층 여인들이 베일을 착용했으나 노예들에게는 금지되었다. 그리스. 로마 제국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던 아라비아 여자들은 무함마드의 부인들이 외적인 영예의 표시로서 베일을 두르라는 지시를 받기 전까지는 베일을 착용하지 않았다. 사막 지대에서 뜨거운 햇볕과 강한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한 토착 의상이 이슬람 사회로 그대로 전승되었다. 베일이 이슬람에서 채택된 제도는 아랍인들이 정복으로 접촉케 된 비잔틴(동로마제국)과 페르시아 관습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 사회로 그대로 전승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약 천년동안 무시되고 있던 베일의 존재를 체제화 시키고 고정된 것으로 만들었다. 그 후에 베일은 이슬람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무슬림 여성의 베일은 사회, 문화, 관습과 종교에 따라 상황화 된 옷의 한 부분이며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베일 착용 관습은 예속이 아닌 여성을 사회에서 보호하는 것과 밀접한 상관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전통주의자들은 ‘베일’은 남성들로부터의 보호이자 방패이며,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의 유혹을 차단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베일(히잡, Hijab)은 히브(hib)에 뿌리를 두며, 동사는 하자바(hajaba)이다. 이 동사의 뜻은, 베일을 쓰기 위하여(to veil), 격리하기 위하여(to seclude), 감추기 위하여(to conceal)등으로 어떤 것 자체를 시야로부터 감추거나 분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베일 착용에 대하여 꾸란에서 ‘베일(veil, 히잡 Hijab)’은 일곱(꾸란 구절 7:46 33:53 38:32 41:5 42:51 17:45 19:17)번 언급되지만, 여성의 옷에 관계되어 베일을 언급한 구절은 오직 한 구절(꾸란 33:53 믿는 자들이여…너희는 선지자의 부인으로부터 무엇을 요구할 때 가림새(veil)를 사이에 두고 하라…)뿐이다. 샤리아에서 남자와 여자 신체의 개인적인 부분은 베일로 가리도록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히잡이 스카프(scarf)라는 영어단어로 종종 번역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꾸란이나 하디스의 의미를 완전하게 전달하지 못하며 한 단어의 아랍어로 표현하기는 단순하지 않다. 아랍 국가 외에 무슬림들이 착용하는 대표적인 베일의 명칭은 이란에서는 차도르(chador), 파키스탄에서는 두파타(dupatta), 튀르키예에서는 챠르샤프(çarşaf) 또는 바소르투(basortu), 위구르족은 야글릭,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졸로꾸라고 부른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정순 박사 | 한국 OM국제선교회 초대 부대표. 백석대학교 선교학 교수 역임. 순회선교사역 및 자역연구차 전 세계 6대주 94개국 방문(1980~2019). 현재 한국OM국제선교회 자문위원, 선교타임즈 편집위원과 아신대학교 중동연구원 수석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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