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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그리스도인의 상투적인 말(5): 타락자의 회복

사진: Aaron Burden on Unsplash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처음 수개월은 축제와도 같은 기쁜 교제의 시간들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형제 자매들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내가 아는 모든 신자들은 매우 성화되었고 주님과 친밀하였다. 나는 나의 죄로 몸부림 치고 있는데 비해, 그들은 다른 수준의 의로움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서 그들의 삶을 볼 때마다 나는 두려움마저 느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서 나는 그리스도인 동료들이 “타락자”라고 부르는 하위 문화를 발견하게 되었다.

믿음을 포기한 사람과 직접 대면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제까지 경험한 그 무엇보다 큰 충격에 빠졌다. 또한 예배 중에 들어 올렸던 그들의 팔이 지금은 극도로 사악한 일들에 사용되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느끼는 비통함은 어디에도 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잠깐 동안의 사악한 기쁨을 위하여 왜 영원한 상급을 포기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아르미니언(칼빈의 예정론을 부인하는 교파) 목사는 이런 타락에 관하여 그 가능성을 나에게 확신시킨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우리의 할 일이 “이러한 타락자들을 설득하여 교회로 돌아오게 하고, 잃어버렸던 그들의 구원을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타락자들을 되찾는 일에 매우 효과적으로 일했지만, 나는 수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다가 잃어버리고 또 다시 구원을 찾았다가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을 봐 왔다. 우리 교회는 이 도시에서 정기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들을 위한 영적인 통관 휴게소와 같았다. 나는 이 문제가 무엇인지 낌새를 알아차렸지만 정확한 원인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성경은 그에 대한 설명이 있는가? ‘타락’은 예언서에서 사용된 구약성경의 용어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해 부정을 행했을 때 사용된 단어이다. 존 맥아더는 그것을 “선지자들이 배교한 불신자들에게 사용했던 말”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둔감이나 불순종의 단계로 퇴보한다”는 의미에서만 타락할 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는 항상 하나님의 징계(히 12:6-11)와 회개를 초래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대부분의 칼빈주의자들이 “타락자”라는 말을 사용할 때의 의미이다. 영적인 타락에 대하여, 혹은 보다 더 극단적으로 가기 전에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가에 관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러나 먼저 알아야 할 중요한 원칙은, ‘신자의 타락’은 언제나 일시적이고 항상 하나님의 징계와 그에 따르는 회개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결코 그들이 구원을 일시적으로 잃었다는 뜻이 아니다.(이 주제에 관하여 더 알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존 맥아더의 글을 소개한다: 크리스천은 얼마나 죄를 지을 수 있는가?)

존의 주장에 따르면, “타락”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도 “의도적인 반역이나 부도덕한 냉담함을 지속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타락한 신자들이 아니라, 우선 그리스도에게 결코 영접받지 못한 오히려 거짓 크리스천들이다(마 7:21-23; 요일 3:4-10).

내가 배웠던 타락 교리는 사실상 회개를 요구하지 않는 거짓 복음을 전파하는 거짓 목사로부터 나온 것이다. 거짓 회심자에게 구원에 대한 거짓 선포를 제공함으로써, 그 결과로 그들은 교회 문을 열고 나와 그들이 아직도 그리스도보다 사랑하는 세상의 품에 행복해하며 안기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확정하였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레이 컴퍼터가 요약한 것처럼; 그들은 우리가, 변절한 사람들이며 타락자(뒤로 미끄러진 자)라고 잘못 생각한 사람들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무엇보다도 결코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타락은 교리적으로 비극적인 크리스천의 진부한 용어가 되어 버렸다—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그것은 죄인을 갱생시키시며(겔 36:25-27), 죄악에서 죽었던 그들을 다시 살리시며(엡 2:1),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고 살아 있는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는(고후 5:17)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을 사실상 부인하는 것이다. 크리스천이 타락할 수 있고 그의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 또한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그의 백성들을 영원토록 지키신다는 그의 약속을 비난하는 것과 같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7-29)

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백성들을 지키시는 그 구원의 보장에 대하여, 존 맥아더의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주장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만약에 내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다면 나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구원이 나 자신의 노력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은, 나의 어떤 행동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터무니가 없다.

요즘 “타락자”에게는 그가 결코 들어가지 못했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확신시킬 수가 없다. 그는 전도를 받고 회개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모든 신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회개한다면, 그것은 그의 구원에 대한 재헌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내면적인 역사에 대한 외면적인 표시로 이해해야만 한다.

원문: https://www.gty.org/library/blog/B160127

Cameron Buettel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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