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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예수 vs. 대체 가능 사회

사진: Marissa Grootes on unsplash

본질적으로 대체 가능 사회는 문화적 위기이기 이전에 영적 위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 문장이 삶을 바꾸기도 한다
“한 문장이 우리 마음에 너무 강력하게 박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 때, 바로 그 한 문장이 끼친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 ―존 파이퍼

자본주의의 지금 버전, 곧 광고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가 우리 모두에게 가르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이 세상에 대체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재생산되거나 더 새롭고 개선된 모델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 사실은 코치에도, 교회에도, 그리고 배우자에게까지 적용된다. 우리는 교체 가능(trade-in) 사회에서 살고 있다. 

자기 삶에 혁명을 일으킬 만한 그런 말을 단숨에 알아차릴 때가 있다. 몇 년 전, 앨런 제이콥스(Alan Jacobs)의 에세이가 내게 그랬다. 

“우리는 대체 가능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아마도 내게 성경을 제외하고는 그때까지 읽었던 그 어떤 글보다도 현대 미국 문화의 핵심 특징을 아름답고 강력하게 요약하고 있었다. 핸드폰이든, 체육관이든, 심지어 인간관계를 위한 쇼핑이든, “약정 기간 없음” 또는 “언제라도 취소 가능”이라는 문구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결국 무엇이든 또는 누구든,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는 약속이 우리의 모든 경험, 심지어 영적 삶의 밑바닥까지 침투하고 있는 대체 가능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대체 가능 사회

대체 가능 사회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낙태(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죽임으로 불편과 비용을 방지하려는 선택)는 아마도 그런 사회를 드러내는 서구의 궁극적인 상징일 것이다. 근본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을 제거해도 된다는 법적 관행보다 더 잘 “모든 것이 다 대체가능하다”는 정신을 요약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러나 대체 가능 사회에는 그 외에도 다른 많은 징후가 있다. 무과실 이혼법(no-fault divorce laws)과 “최고의 자아를 실현하라”는 만트라가 판을 치는 대체 가능 사회에서 자녀와 결혼 서약은 뒤로 밀리고 가족은 얼마든지 해체된다. 얼마든지 싼 값에 대체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고용주는 노동자를 학대하고 조종함으로 대체 가능 사회에 일조한다. 

그리고 오늘 수많은 사람이 대체 가능 사회에 맞춰진 기대와 요구를 품고서 교회에 나온다. “내 구미에 맞는” 음악과 설교가 있다면 얼마든지 예배야 참석하겠지만, 시간이 걸리고 거추장스러운 교회 등록과 봉사는 하려고 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지거나 내 삶에 깊이 들어오려는 교회 지도자가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당장 출구를 찾는다. 가까운 곳에 있는 다른 교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빈 우물

대체 가능 사회의 기원에 관해서는 많은 요소를 언급할 수 있다. 산업 혁명, 기계 문명 덕분에 갖게 된 신과 같은 자기 결정권 등을 거론할 수 있다. 현대적 자아와 표현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의 부상과 승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경향들도 진실의 한 측면을 드러내는 게 사실이지만(더 많은 목록이 나열될 수 있다), 본질적으로 대체 가능 사회는 문화적 위기이기 이전에 영적 위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존 파이퍼가 2009년에 한 설교에 주목해야 한다. 파이퍼는 예수님과 우물가 여인의 만남(요 4:1-26)을 통해서 우리의 갈급한 영혼이 어떻게 대체 가능 사회의 공허한 약속에 굴복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예수님이 주시는 우물물을 깊이 마시지 않는다는 증거 중 하나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 일에서 다음 일로 옮겨가는 불안정서입니다. 그건 섹스 파트너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일 수도 있고, 또 직업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 교회 저 교회로, 교회를 통해서조차 그런 공허감을 채우려고 합니다. 또한 이런저런 취미로 공허를 달랠 수도 있습니다. … 헤어스타일, 옷장, 자동차일 수도 있습니다. 이사를 다니면서 채울 수도 있고요. 왜들 그러는 걸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깊이 만족하는 정체성이 당신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 그리하면 만족하는 정체성의 안정을 찾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 많이 움직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갈망하고, 갈망하고, 또 갈망하지만,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대체 가능 사회를 만드는 건 다름 아니라 영적 갈증이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우리는 지금도 인생을 샅샅이 살피면서 언젠가는 내 마음 깊이 벌어진 허무의 동굴을 채워줄 뭔가가 있겠지, 기대한다. 우리의 눈에 주변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은 대체가능하다. 오늘도 우리는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한 가지를 찾기 위해 필사적이다. 그러나 마케팅에서 배운 모든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새로운 것이나 장소도, 또는 내 삶에 찾아오는 어떤 사람도 내가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그것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알고 있다. 

가장 깊은 갈증이 채워지다

그렇다면 대체 가능 사회의 반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가장 깊은 영적 목마름을 그리스도께서 풀어주신 사람과 같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새로움과 교체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구조차도 좀이 슬지 않고 녹이 생기지 않으며, 도둑이나 죽음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분에게 우리의 마음이 묶이는 순간 바로 시들어 버릴 것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 때,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이 앞에 놓여 있더라도 우리는 더 이상 헌신과 결과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롬 8:28). 이런 사실이 삶과 문화의 모든 영역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한번 상상해 보라. 충격과 선택의 문제였던 예상치 못한 임신이 힘들어도 영광스러운 것으로 바뀐다. 절망적이고 생명력이 고갈되었던 결혼 생활이 영원에서부터 보장된 언약을 위한 깊은 희생의 현장이 된다. 

이런 친숙한 사례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자주 생각하지 않는 삶의 장소에서조차도 대체 가능 사회는 새롭게 변화되어야만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직장을 쫓는다는 것이 영원한 뿌리 없음과 쉬지 않고 바뀌는 친구와 교회를 의미한다면, 과연 지속적인 예수님의 공급으로 인해서 우리는 경제적 야망조차도 더 큰 가치 아래에 둘 수 있을 것인가? 

“인터넷 뉴스 과몰입”이라는 현대적 유혹은 또 어떤가? 단순히 “알기 위해서” 우리는 깊이 생각하는 능력 자체를 파괴하면서까지 아무 생각 없이 정보를 소비한다. 이것에서 저것으로의 불안한 전환이 지치고 목마른 마음을 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극적일 필요는 없다. 

마지막 승리를 바라며

대체 가능 사회는 두려움을 미끼로 양심을 유혹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상기시켜 주듯이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요일 4:18). 최후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내쫓는 바로 그 사랑이 대체 가능 사회가 가져다주는 두려움도 물리칠 수 있다. 그런 사랑이 우리의 발판이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 두신 사람과 장소에 감사하게 하며, 우리가 나 중심에서 벗어나서 이웃을 위해 희생하도록 한다. 

복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은 과거를 향한 사랑일 뿐 아니라, 미래를 향한 사랑이기도 하다. 제이콥스의 에세이에 나오는 첫 번째 예를 사용하자면, 프로 스포츠팀은 승리에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 코치를 해고하거나 선수를 자른다. 하지만 시즌 전에 현재 보유하고 있는 선수단과 코칭스태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에 우승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그 팀이 이 예언을 정말로 믿는다면, 시즌 중에 만나는 그 어떤 어려움도 코치나 선수를 팀에서 쫓아낼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필사적으로 쫓으려는 유혹을 물리칠 힘은 오직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에서만 나온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이룰 최후 승리에 대한 절대적이고 실패할 수 없는 확신을 보장받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체 가능 사회에 저항할 수 있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에 일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할 때 우리는 결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는 분이 우리의 눈물을 모두 닦아 주시고, 우리의 모든 은밀한 바램까지도 채우시는 더 좋은 사회의 증인이 될 수 있다. [복음기도신문]

새로운 것을 필사적으로 쫓으려는 유혹을 물리칠 힘은 오직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에서만 나온다 

사무엘 제임스(Samuel James) | 크로스웨이 출판사 편집자이며, Insights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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