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호 형제(모로뷰)
277호 / 사람풍경
꿈이 있는 사람은 그 꿈을 이루는 것이 삶의 이유가 된다. 이번호 사람풍경은 청소년 시절에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순종해온 한 청년을 만났다. 다양한 순종 끝에 현재 아프리카 기니비사우에 3만 권의 성경책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장재호 형제(모로뷰)를 이러한 꿈을 갖기까지 어떤 여정을 걸었는지 그의 꿈 이야기를 경기도 군포에 있는 모로뷰의 사무실에서 들어본다.
– 모로뷰 카페는 직접 운영하시는 카페시죠? 카페와 선교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모로뷰라는 공동체를 섬기고 있어요. 모로뷰는 영어로 ‘more of You’로, ‘당신을 더’라는 뜻이에요. ‘하나님을 더’ 알고 알리고 싶다는 의미로 쓰고 있어요. 주님으로 더하기 위한 걸음, 공동체라는 의미로,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고 선교를 하고 있어요. 이 일을 위해 공방이나, 카페를 운영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있어요.”
–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나눠주세요.
“저는 7살 때,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전 세계를 모험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인디아나 존스처럼 멋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중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장래 희망란에 ‘전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쓰곤 했어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을 선교사라고 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어요. 그렇게 7살부터 선교를 꿈꾸며 살았어요. 14살 때 처음 필리핀으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후, 언어공부도 하고 선교사 훈련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필리핀에서 진행되는 선교사 훈련 과정에 참여했어요.”
어린 시절 세계를 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꿈 꿔
– 10대에 선교사 훈련에 참여한 것이군요.
“영어와 필리핀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필리핀 현지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려고 노력했어요. 주말에는 빈민촌으로 봉사를 나갔어요.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부어 주시면서 그 사랑을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언젠간 이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로 나가게 될 꿈을 꿨어요. 하나님은 마음 속에 빛나는 세계지도를 보여주셨고 전 세계를 다니며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프리카를 소망하게 됐죠.”
– 기도하면서 구체적인 선교에 대한 비전을 받으신 거군요.
“그 기도를 하고 이틀 뒤, 중국으로 전도 여행을 갔는데, 현지 마켓 앞에서 한국인과 중국인들 여러 명에게 폭행을 당했어요. 많이 다쳤어요. 마음으로는 예수님이나 스데반이 했던 것처럼 이들을 용서하겠다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용서는커녕 이들을 죽이는 상상을 하게 됐어요. 하나님께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반복적으로 하게 됐어요. 당시 팀원들이 걱정하실까봐 넘어져서 다쳤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다 알게 됐어요. 많이 힘들었냐는 위로를 기대했는데, 그러는 사람은 없더군요. 많이 외로웠어요. 필리핀으로 돌아와 다시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하고 봉사를 해보지만,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아요”
– 아직 고등학생인데, 어려운 일을 겪으셨군요.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 예수전도단이 주관하는 6개월간의 제자훈련을 받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은 대학을 가거나 성인으로서 인생을 시작하는 시점이었지만, 저는 ‘하나님만 제대로 알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훈련을 받기로 했어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이미 나를 완벽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가 잘해서 더 사랑하거나, 못해서 덜 사랑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동안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든요. 집단 폭행을 당했을 때 하나님도 아파하셨고, 위로하고 싶으셨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걸 제가 거부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말씀을 읽기 시작하고 성경 연구를 하면서 말씀 앞에서 회복되고 말씀 앞에 엎드려지는 시간을 경험하게 됐어요.”
– 말씀을 통해 이렇게 회복이 되신 거군요. 이제 본격적인 선교의 준비가 됐을 것 같은데요?
“하나님께 ‘제가 선교사인데, 무엇을 준비하기 원하시냐?’고 물었어요. 그때,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는 걸 연습하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갈 마음을 주셨어요. 저는 바세코라는 빈민촌에서 사역하는 걸 좋아했는데, 갈 때마다 그곳 아이들과 교제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어요. 내가 꿈꾼 선교는 친구가 되어주는 건데, 이걸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2개월 동안 빈민촌에서 지냈어요. 아이들과 뛰어다니면서 계속 놀았어요. 어느 날 현지 사역자 친구가 처음으로 교제라는 걸 해본다고 하더군요. 7살짜리 아이도 뛰어다니다 제 품에 안겨서는 제가 진짜 친구라고 말을 했어요. 그때, 내가 살아야 할 방향은 이거구나 깨달았어요. 이후 매년 2번씩 바세코 아이들을 찾아갔어요. 벌써 10년이 됐네요.”
현지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어요
– 친구가 되어주는 선교사라는 게 참 감동이 되네요. 그 이후는 어떻게 됐나요?
“23살에 군대에 입대했어요.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어깨를 다쳤어요. 그때, 간부와 선임들에게 쓸모가 없다는 말을 거의 매일 같이 들었던 것 같아요. 왜 아픈지도 모르고 7개월 정도가 지난 뒤 검사를 해보니 연골이 찢어졌고, 혹이 자라고 있더군요. 이제는 진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이죠. 할 수 있는 게 없어 계속 성경을 봤어요. 어느 날, 제 고개를 들어주겠다는 시편 말씀을 보게 됐어요. 그 말씀을 붙들고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했어요. 주로 쓰레기를 줍다보니 별명이 쓰레기가 됐어요. 그런데 저를 쓰레기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전출을 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오면서, 일을 찾아 다니고 있는 저를 보시더니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주셨어요. 군 생활 절반이 지날 때였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게 감사했어요. 전역할 때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기도하면서 휴가를 보내고 부대로 복귀했는데, 그때 북한의 포격 도발이 발생했어요. 2015년이었어요.”
– 네 그런 시간이 있었죠. 저도 생각납니다.
“어떤 절차 없이 전쟁을 준비 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전쟁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고 전쟁을 대비하라는 무전이 오고 있었어요. 주님께서 주신 꿈이 있었는데 ‘이렇게 죽게 되는 건가?’ 생각했어요. 주님의 뜻을 쫓아 온 인생이었기 때문에, 주님의 뜻이라면 여기서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보니 전쟁이 나면 이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어요. 동료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주고 싶다. 같이 믿자.’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저는 전역이 얼마 안남았다고 집에 돌아가도 된다는 무전이 왔어요.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어요. 어머니에게도 전쟁이 날 것 같으니 여기서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감당하겠다고 말했어요.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고 돌아오자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됐냐.’고 묻더군요.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고, 이곳에는 군 목사님도 없다. 어깨가 다친 내가 할 일은 없겠지만, 기도하고 할 수 있는 만큼 무엇이든 하겠다.’고 이야기했죠. 다행히 전쟁은 나지 않았는데, 사단의 영웅이라며 표창을 받았어요. 하나님이 고개를 들어주시겠다던 말씀이 이거였구나 생각하게 됐죠.”
– 군에서도 선교사로 섬기셨군요.
“전역 이후 노르웨이에서 ‘공동체 학교’라는 훈련을 받게 됐어요. 카페를 빌려서 그곳에서 예수님 이야기를 하고, 찬양하고, 선한 일을 도모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들을 했어요. 서로가 함께 먹으며 함께 움직이는 예수님과 한 몸 된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면서 이곳에서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준비를 위해 2016년에 한국에 왔는데, 아버지에게 일이 생기면서 노르웨이를 못가게 됐어요.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이 제게 사명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길 원하기 때문이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러면서 한국에서 공동체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셔서, 한 걸음씩 순종하기로 했어요. 그러다 2016년 12월, 홍대의 한 카페로 친구들을 불렀어요. 각자 소개를 하고 요즘 만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물으며 이야기를 이어갔어요. 그렇게 한 주 순종한 것이 6년 간 400번 이상 모이게 됐어요.”
– 그 모임이 공동체 사역이 된 건가요?
“모임이 9개월쯤 됐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고 싶어 하실까? 질문하게 됐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자훈련을 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몇 개월 기도하다가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계약했어요. 그곳에서 모임도 하면서 선한 일을 도모하게 됐어요. 기부받은 에코백에 그림을 그려서 그것을 필리핀의 빈민촌 아이들에게 주기로 하고, 함께 필리핀에 가게 됐어요. 같이 가는 사람이 생기니 사진이 남게되고, 그 사진으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면서 공방이 만들어지고, 어머니께서 에코백 만드는 법을 배우셔서 계속 물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또 제빵기술이 있는 친구들은 빵을 만들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영상을 만드는 친구가 있어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기도 하면서 주님으로 더하기 위한 일들을 시도해왔어요.”
– 다양한 순종을 해오셨군요.
“공방 물품이 많아져 그곳에서 모임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공간이 필요해 카페를 열게 됐어요. 카페와 공방에서 나온 수익들로 선교 사역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수익이 많지 않아서 저는 한동안 영어 학원에서 일하면서 재정을 도왔고, 공동체 맴버들이 서로 각자의 재정을 함께 나누면서 선교를 위해 달려가고 있어요.”
– 그런데 기니비사우에 성경이 없다는 영상을 찍으셨던데, 어떤 사연이 있나요?
“서른 살이 되기 전,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알고 지내던 선교사님의 여름 사역을 도와드리기로 하고 2019년에 기니비사우로 가게 됐어요. 주님이 땅끝까지 증인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에 순종해서 도전한 걸음이었어요. 그곳에서 영어캠프를 섬기면서 기니비사우에 선교사가 너무 적다는 걸 보게 됐어요. 5년 거주 비자를 그냥 주고, 언어도 쉬운데 왜 선교사가 없을까 생각이 들어, 한국에 돌아가서 이 나라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돌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다시 아프리카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던 터에 코로나 사태로 모든 일정이 멈춰서게 됐어요.”
– 그러면 그때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저는 그런 성격이 아닌데, 하나님이 저의 지경을 넓히셨던 것 같아요. 오디오 소셜미디어(SNS)인 클럽하우스를 사용해서 세계 곳곳의 친구들을 만나게 됐어요. 싱가포르, 캐나다, 미국 친구들을 온라인에서 알게 되면서 이들과 제자훈련을 시작하게 됐어요. 30명 정도를 6개 조로 나눠서 줌으로 온라인 모임을 매일 했어요. 이들과 선교에 대한 비전을 나누고 꿈꾸다가 5명이 아프리카에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2021년에 함께 가게 됐어요.”
– 어떤 비전을 나눴는지 궁금합니다.
“기니비사우는 대부분 무슬림이에요. 그곳 선교사님이 9년 사역하는 동안 1명의 개종자가 있었어요. 그곳에서 영어캠프를 섬기면서 아이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도를 해줬어요. 캠프가 끝날 즈음에 아이들이 찾아와서 예수님이 이렇게 궁금한 건 처음이라고 말했어요. 이곳에는 이 대답을 해줄 사람이 없는데, 내가 여기에 다시 오는 건 분명했죠. 이것을 제자훈련을 하면서 나눴고, 그렇게 5명이 모아져서 캠프를 섬기게 됐어요.”
–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제자훈련을 한 것도 놀라운데, 선교사역으로까지 이어졌네요.
“캠프를 시작한지 6년 지나서, 마지막으로 진행된 캠프에서 회화 수업을 일대일 대화로 하면서 무슬림이지만 예수님 이야기를 했어요. 요한복음을 읽으며 생각나는 것을 적게하고, ‘너희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너희 인생이 변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 그리고 잘 때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기도해줬어요. 아이들이 예수님이 진짜라는 것을 알겠다고 고백하더군요. 그런데 아버지에게 들키면 죽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이렇게 예수님이 진리라는 걸 알겠다고 고백하는 아이들이 성경을 붙잡고 이 길을 걷겠다고 했죠. 너무 감격스러웠어요. 9년 동안 1명이었던 개종자가 몇 명 더 늘어나게 된 것이죠.”
– 아이들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게 참 놀라운 감격입니다. 그 아이들이 계속 신앙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이 나라는 책이 귀해요. 아이들이 갖게 된 책이 있다면, 그건 캠프를 할 때 사준 영어 성경책이었어요. 영어공부 하겠다고 책을 펴는 게 성경이에요. 본문 하나를 정해주고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생각나는 대로 다이어리를 적으라고 했어요.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치다가 한 아이가 ‘나는 예수님을 믿어야겠다.’고 적은 것을 봤어요. 그 아이는 요한일서 1장을 읽을 때 예수님이 믿어졌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너는 이제 멸시를 받을 거야. 그런 걸 경험해도 괜찮니?’라고 물었는데 ‘이제야 알게 된 게 슬플 뿐’이라고 대답하더군요. ‘네가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데,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겠니?’라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Why not?(안 될 거 없잖아요.)’라고 답을 했어요. 마지막 날, 무슬림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밥을 먹고, 묵상을 하면서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게 됐다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저도 울고 선교사님도 많이 우셨어요.”
– 부흥을 경험하셨군요.
“이 아이들과 집집마다 다니며 복음을 전했어요. 그런데 성경책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책을 줄 수 없었어요. 그 나라는 6개월째 성경책이 없는 상태였어요.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너를 변화시킬 거라고 아이들이 말을 하면서도, 정작 전해줄 성경이 없다는 것이 답답했어요. 그러다 마침 이 일에 도움을 주실 수 있는 기니비사우 기독교협회장님과 연락이 닿아 판권 문제가 해결되는 걸 보면서 하나님이 어차피 하실 일에 우리를 초대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과정에 성경을 3만권 인쇄하기로 이야기가 됐어요. 주님이 분명히 하실 일이니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한국에 돌아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 사실을 알렸어요. 펀딩 사이트보다는 이 멋진 일을 증인이 된 우리의 입으로 알리기로 했어요. 그렇게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게 됐어요.”
– 그런 과정이 있었던 거군요. 진행은 어떻게 됐나요?
“이 일을 계획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너무 많이 경험했어요. 그러다 컨테이너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을 만나게 됐어요. 노하우가 많은 분이셨어요. 목사님은 중국에 성경을 가져갈 때, 돈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직접 들고 간다고 하더군요. 컨테이너로 들어가면 관세가 많이 나올 경우,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다면서요. 3만 권을 나눠서 배달해보는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팀을 꾸려서 가면 한번에 5000권에서 1만권 정도는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겠더군요.”
–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놀랍네요.
“이런 와중에 제가 올해 3월에 결혼을 하기로 했어요. 함께 제자훈련도 하고 아프리카에도 같이 갔다 온 자매에요. 잔치를 베풀어도 갚을 것 없는 이들에게 베풀라는 말씀을 따라 바세코 아이들과, 아프리카에서 파티를 열고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 축하드립니다. 선교 사역의 제 2막이 열리겠군요. 끝으로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하나님의 꿈을 더욱 꾸게 하시는 것 같아요. 기니비사우 아이들에게 책을 몇 권 읽어봤냐고 물으면 1권, 2권, 7권 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그건 선교사님이 주신 팜플릿을 말하는 것이죠. 이 나라에는 책이 귀해요. 성경을 계속 인쇄해서 보낼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이 나라에서 만들어야 돼요.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그림책도 만들어서 가져가고 싶어요. 이런 꿈을 꾸고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 일에 모로뷰라는 공동체가 그 이름 그대로, 하나님으로 더하기 위해서 흔들림 없이 함께 갔으면 좋겠어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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