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사역단체 전능자의그늘미니스트리(대표 김정화 선교사)가 지난 2013년부터 섬겨온 성도 최숙분님이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소천했다. 세상에서는 치매 노인으로 어느 누구의 보살핌도 받을 수 없는 이 한 분을 섬겨온 박혜인 선교사가 고인의 죽음을 조사로 기렸다.<편집자>
2022년 12월 24일 오전 7시 30분경 크리스마스 이브, 최숙분 어르신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를 기뻐하는 가장 아름다운 날에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셨습니다. 성탄 예배를 위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예배처로 출발하던 아침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차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아무런 준비도 제대로된 인사도 드리지 못한 것 같은데 짧은 시간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슬픈 마음을 추스리며 하루를 지나는 동안, 이 땅에서 주님이 할머니에게 주신 귀한 사명을 다 마치셨구나. 가장 아름다운 날 사랑하는 주님 품에 안기셨구나. 이렇게 복된 날 주님 나라에 입성하신 우리 할머니가 누구보다 복이 많으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려요 할머니, 그리고 너무나 고마워요.
얼마나 고생스러웠을까요. 1937년 일제 시대에 한국 땅에 태어나 꿈 한번 제대로 펼칠 수 없던 그 시절, 어여쁨, 귀히 여김, 따스한 손길 한번 받지 못했을 그 시간들. 전쟁 속 굶주림, 배고픔, 가난과 추위, 꽁꽁언 손으로 동생들을 거두고 부모를 도우며 수고롭게 지났을 그 소녀의 시간이었겠지요. 내가 누구인지, 왜 이 땅에 태어나 고생스럽게 살아가는지도 모른채 지독히도 가난하고 무지하며 소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그 척박한 한국 땅에서. 그저 주어진 삶 속에 허락된 시간들을 억척스럽게 꾸려가셨던 어르신의 삶을 막연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감히 다 헤아릴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근현대사의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오신 그 모든 것들을 무엇으로 다 담아낼 수 있을까요.
언젠가 할머니 동생분들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병상에 누워계신 할머니의 모습을 꽤나 낯설어 하셨습니다. 언제나 대쪽같고 강인하셨으며 누구보다 억척스럽게 참 많은 것들 감당해 오셨던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을 품으시고 거두셨고 키워내신 아량과 베풂이 그분들의 삶과 고백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치매로 기억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끝내 자기 이름조차 잊어버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끝까지 기억하고 있던 이름이 있었습니다. 내 딸 김정화. 할머니가 일생을 통해 가장 자랑스럽게 키워내신 딸 김정화 선교사님. 할머니의 마지막 10년의 시간 동안 얼마나 귀하게 섬기고 성실하게 감당하셨는지요. 옆에서 뵐 때마다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에게 받은 긍휼과 사랑의 섬김을 이제는 주님이 허락하신 10명의 아이들 거두어 섬기는 길에 모든 삶을 다해 헌신하며 살아가고 계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실로 다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10년의 시간을 선물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고 친히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할머니는 고통스럽지만 누워서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쁜 우리 열 명의 천사들을 예수님 품에 자라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잘 참아내셨는지. 잘 견뎌주셨던지요. 숨한번 내 쉬고 뱉는 것, 음식물을 삼키고 소화하는 것, 변 한번 시원하게 볼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얼마나 힘겹게 하루하루 감당해 주셨던지요. 참 고마워요. 할머니. 너무 고생많으셨지요.
그 모든 시간 속에 가장 힘들 것들을 묵묵히 감당하며 7년을 섬긴 강지혜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런 말을 하더군요. 자신의 몸에 일부였던, 살과 같던 삶의 일부가 잘라져 나가는 것 같다고… 새벽에 할머니 기저귀를 갈려고 깼는데 할머니가 없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매일 반복되던 일상 속에 할머니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며 기저귀를 갈던 쳇바퀴가 멈추고 한동안 멍하니 분주하던 손을 붙들어매야 하겠지요. 주님이 그 손길을 가장 복되게 하시겠지요. 삶에서 아무런 찬사도 박수도 보상도 받을 수 없겠지만 주님은 하늘의 상급으로 반드시 갚아주시겠지요. 하늘의 소망과 위로로 우리를 다시 기쁨으로 달려가게 하시는 영원한 소망되신 주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함께 힘을 다해 수고한 혜영 선교사님. 그리고 선아, 혜원, 숙정, 솔 선교사님. 너무 고맙습니다.
10년 전 와상으로 누우시기 전 유난히 정신이 또렸하셨던 어느 날.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찬송가 606장을 분명하게 부르셨던 날이 있었습니다. 교회 다니신 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어디서 그 찬송가를 배우셨을까. 정화 선교사님이 붙들고 앉혀 묻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똑바로 말해봐요. 교회 다닌 적 있지요? 그 찬송가 어디서 배웠어요? 제대로 기억해봐요!”
할머니는 어린 시절 동네 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닌 적이 있노라 대답하시고 그날 예수를 구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셨습니다. 지금쯤 천국에서 예수님 품에 가장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편안히 계시겠지요. 함께 만나 영원히 주님을 예배할 그 날이 소망됩니다.
우리가 할머니를 섬긴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전 생애 모든 삶을 다한 수고와 인내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정화 선교사님도, 우리도, 지금 우리 아이들도 없었을 것입니다. 불신앙과 무지, 회심과 구원의 시간을 지나는 이 한국 땅의 한 귀퉁이에서 허락된 구원의 역사, 백여년의 지난 시간 가운데 할머니와 저희가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 속에 지금 우리가 살았습니다.
제가 할머니와 함께 했던 3년 반의 시간은 제 인생 어떤 시간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복된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때로 너무 힘들어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돌아보며 너무나 짧고 소중했던 찰나의 시간이었습니다. 더욱 마음 다해 섬기지 못해 죄송하고 잘못한 일만 떠올라 부끄럽지만 너무 부족하고 못된 저에게 그런 복된 시간을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할머니와 함께 하며 배운 그 사랑 우리 아이들과 열방의 영혼들 다음세대에게 베풀며 살다가 주님을 만나야 겠지요. 주님 앞에 가는 날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을 날이 우리에게도 올까요. 주님 품에 먼저 안기신 할머니가 오늘 많이 부럽고 또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우리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것 아니라 은혜였습니다.
은혜의 삶을 사신 할머니, 우리와 함께 해주시고 삶으로 그 사랑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그 나라에서 만나면 못다한 교제를 마음껏 할 수 있겠지요. 저희도 곧 따라갈게요. 그곳에서 예수님과 함께 저희를 맞이해 주실거죠? 저희도 끝까지 이 걸음 걷다가 모든 사명 다한 뒤에 온전한 승리를 얻도록 기도해주실거죠? 보고 싶어요 할머니 사랑합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할머니의 생애를 기억하며 한 편의 시로 어르신의 삶을 추모합니다.
들꽃
들풀처럼 나서 짓밟혀 잊혀졌을 한 사람
가만히 들여다 눈여겨 보시고
시간 시간 굽이 굽이 인도하셨네
한사람의 마음에 와닿게 자세히 말씀하실 때까지
오래도록 기다려 가만히 가만히 두드리시네
조용히 토닥토닥 가슴에 닿도록
가만히 가만히 두드리셨네
누구도 기억못할 외로운 인생을
불행히 으스러져 숨졌을 생명을
고이고이 그 품에 안으시고
아름다운 생명 낳게 하셨네
꺼져가는 불씨에 숨을 불어 넣으시고
온 세상 밝힐 빛 되게 하셨네
죄와 슬픔 가운데 저주로 끝날 생명을
온 땅에 열매 맺을 밀알로 삼으셨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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