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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하늘의 관점에서 본 십자가(4): 속죄

사진: Kelly Sikkema on Unsplash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10의 “화목 제물”은 특이한 단어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종종 듣는 단어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공부할 때에 이 단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단어는 실질적으로 속죄를 의미하는 단어이고 예수님의 죽음을 말할 때 반복해서 사용되었다. 요한일서 2:2은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라고 했다. 로마서 3:25는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서 2:17은 주님의 구속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속죄했다.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에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제물로 드려졌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것과 같이, 그리스도는 나와 여러분과 같은 죄인들을 위한 완벽한 제물이었다. 그는 우리의 대속자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혹독함에 순복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들과는 달리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께서 드린 제사에 만족하셨는지 알 수 있는가? 히브리서 1:3은 말한다.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시고 그의 우편의 영광의 자리에 앉히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진노를 충족시킨 것을 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예수님이 완전히 그의 영광을 되찾으신 후에 끝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만족하게 되었나 하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십자가 사건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그리스도께서 진노하신 하나님을 달래려고 애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삼위 하나님 사이에는 이러한 불협화음이 있을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절대 서로 반대하시지도 않았을 뿐 만이 아니라 서로 독립적이지도 않으셨다. 아니다! 십자가 사건은 사랑의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린 이야기이다.

우리가 다음번에 더 자세하게 말하겠지만, 구원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인가? 일반적으로 우리들의 죄로부터 구원받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진실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죄의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만족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이시고,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심판에 따르는 모든 진노를 완전히 담당할 대속 제물로 자신을 내놓음으로써 죄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랑으로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보내셨다. 고난 중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만족시키는데 필요한 모든 값을 완전히 치르셨다. 그리고 그것이 시편 103편에 우리의 죄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옮겨질 수 있으며 다시 기억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다. 그것이 바울이 로마서 8:1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예수님이 희생으로 바쳐진 화목 제물에 하나님의 진노가 다 쏟아 부어졌으며, 예수님이 희생으로 바쳐진 화목 제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만족되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서 죽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만족시키시기 위해서 보내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원문: Heaven’s Perspective on the Cross: Satisfaction

존 맥아더 |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 담임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GTK 칼럼] 하늘의 관점에서 본 십자가(1): 제사
[GTK 칼럼] 하늘의 관점에서 본 십자가(2): 완전한 순종
[GTK 칼럼] 하늘의 관점에서 본 십자가(3): 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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