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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칼럼] 예수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III)

사진: Pxhere

<역사적 예수 논구 시리즈>

III. 외면종교와 내면종교: 성전과 율법 부정

  1. 외면종교: 성전과 율법

구약의 율법은 신성한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이 지켜야 할 법규를 제시해준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등은 모든 시대에 있어서 모든 인간이 지켜야할 규범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유대인들은 이 법규를 외면적으로만 지키기에 열중하고 그 내면성을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사람 내면에는 살인하는 생각이 있고, 음란한 생각이 가득하고, 거짓말하는 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적으로 그것을 나타내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율법적으로는 흠이 없는 자로 간주되었다. 그 내면은 아주 부패했음도 불구하고 외면적으로는 깨끗한 것처럼 간주되는 것이다. 여기서 나사렛 예수는 외식과 불법으로 가득찬 율법 종교의 모순을 지적하신 것이다. 외면 종교는 가식적인 면이 강한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율법 종교의 외면성을 드러내는 두 가지가 의식화된 성전과 화석화된 율법이었다. 성전과 율법은 유대종교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였는데 예수는 이 두 가지를 부정하였다. 유대종교의 두 가지 축을 부정하는 것은 당시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이단적인 것이었고 신성모독으로 처형될 수 밖에 없는 인물로서 낙인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의로운 제사와 헌신이 있고 기도가 있는 성전 자체를 긍정하셨고, 율법을 폐기하지 않고 율법의 완성을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는 회개의 뉘우침과 의로운 삶이 없는 외면화된 성전을 부정하였다. 예수는 영성이 결여된 조문에 얽매인 의문화(儀文化)된 율법을 부정하였다. 유대종교라는 제도적 종교의 두 축인 성전과 율법을 부정하는 것은 유대인 됨의 기본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는 유대교 제도 자체와 그 율법을 모독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밖에 없었다. 예수라는 인물은 유대교 지도자의 측면에서 보면 그 사회에서 처형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당시 거짓을 가르치던 사람들은 대개 추방되곤 했다. 예수도 유대교에서 추방될 수 있었으나 그의 성전 파괴 발언과 모세 율법의 부정이라는 단호한 태도는 예수를 십자가형이라는 심한 처벌로 귀결시켰다. 이에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가 작용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유대교의 성전이나 율법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성전이 지닌 내면적 의미와 율법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유대교의 내면화였다. 이는 이미 구약의 예언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통하여 예언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아를 통하여 마음에 기록된 율법을 약속하신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렘 32:40).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마음속에 새겨지는 법을 영원한 언약으로 주실 것이다. 이것은 옛 율법의 부정이 아니라 옛 율법의 정신이 내면적으로 실현된 은혜의 약속이다. 에스겔도 이러한 내면의 종교를 예언하고 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4-27). 하나님은 그이 백성에게 새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을 주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행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율법을 이행할 수 있게 하는 새 영은 하나님이 예수의 십자가 대속으로 성도들에게 주실 성령을 약속하신 것이다.

  1. 내면종교: 내적 율법과 영의 자유

예수는 이러한 구약 예언자가 예언한 새 마음과 새 영의 종교에 대하여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으나 이 전통을 그의 복음 선포에서 구현하셨다. 이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나타난다. 예수께서 밤에 자신을 찾아온 유대 관원인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도리를 가르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예수는 사마리아 수가성의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영으로 드리는 예배를 가르치신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예수는 1세기 유대 성전과 율법이 중심이 된 외면종교의 가식성에 대하여 경건의 내면성을 주장하신다. 율법은 그 나타난 결과를 중요시했으나 예수는 그 내면과 동기를 보신다. 그리하여 내면종교에서는 이미 동기가 잘못되어 있으면 율법을 범한 것으로 간주되고 율법주의자의 경건과 외식(外飾)은 허물어지는 것이다. 저자에 관점에 의하면 바울신학의 새관점 학파들(샌더스, 던, 라이트 등)이 말하는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rmism)도 이러한 율법의 외면적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본다. 언약적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 언약에 머문다고 생각했으나 예수께서 지적하신대로 율법의 외면적 규정을 지키는 것에 머물렸고 그 내면적 정신을 지키는 것에 역부족이었다. 그러므로 외면적으로는 경건했으나 내면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충족하는 데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유대주의 연구가 뉴스너(Jacobs Neusner)가 지적하는 바 같이 샌더스의 새 관점은 구약성경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예수는 율법 자체는 신성하다고 보았다. 이런 면에서는 예수는 율법폐기주의자(antinominian)도 아니었고, 전통을 무시하고 폐기하고자 하는 오늘날의 해체주의자(deconstructivist)도 아니었다. 예수는 율법의 내면성을 중요시한 점에서 율법을 오히려 그 정신에 있어서 살리신 것이다.

예수의 이러한 지적은 거짓 금식과 참 금식을 구분하는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거짓 금식을 지적한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사 58:3-5). 이스라엘 백성은 형식적으로는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고 마음을 괴롭게 하는 외형적 금식을 하면서도 실제로는 오락을 구하며, 종들에게 일들을 시키며, 논쟁하며 다투며 주먹질하며 싸우고 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금식을 기뻐하시지 않고 열납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참 금식에 관해 말씀하신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하나님이 받으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다. 그리고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보살피는 것이다. 하나님은 제사나 종교적 의식보다는 인자와 자비, 하나님의 의를 행하시는 것을 기쁘하신다.

예언자의 이러한 전통을 이어 받으면서 예수는 금식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내적 관계성을 강조하신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6-18).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은 금식할 때에 얼굴을 흉하게 하고 슬픈 기색을 보이기 때문에 이미 사람들로부터 금식했다는 사실을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금식한다고 보여주는 외식(外飾)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진정한 금식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금식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깨끗이 하여 사람들에게는 전혀 드러나지 않으나 은밀한 중에 계시며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열납함을 받는다.

예수는 성령을 보내시어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 속에 쓰시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도록 약속하셨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5-26). 사람의 내면성을 새롭게 하시는 이러한 약속은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시는 에스겔의 예언(겔 36:25-26)에 이미 나타나 있다. 오늘도 예수는 그 약속하신대로 보혜사 성령을 신자들 마음 속에 보내어 주셔서 우리 속에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고,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규례를 행하게 하신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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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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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김영한 칼럼] 예수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I)
[김영한 칼럼] 예수와 바리새인들과의 논쟁(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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