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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세계 이주민의 날을 기억하며

사진: 픽사베이.

밖에서 보는 이슬람(40)

세계 이주민의 날

매년 12월 18일은 유엔(UN, United Nations)이 정한 세계 이주민의 날(International Migrants Day)이다. 유엔은 총회 결의를 통해서 전 세계 이주노동자를 단순한 노동력으로 간주하지 않고, 내국인과 동등한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기 위하여 지정하였다.

이주민(移住民, emigrant)은 다른 국가로 이민을 선택하면서 더 좋은 일자리 및 교육을 누릴 기회 등 자체적 이유로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 가서 사는 사람. 혹은 다른 지역에 옮겨 와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조건에서 삶을 살기 위해서 스스로 이주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자기 나라에서 발생한 전쟁, 분쟁, 혹은 정부 및 종교의 박해를 피해 본인과 가족의 목숨을 보전(保全)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로 피난을 떠난 난민(難民, refugee)과는 구별되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난민도 자신의 거처를 이동했다는 의미로 보면, 이주(移住)민으로 볼 수도 있다.

2022년 5월 현재, 전 세계 강제 이주민 총수만 1억 명을 넘어섰다.[1] 또한, 한국선교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 인구(78억 명) 중 국제 이주자는 2억 8,100만 명(3.6%)이다. 이중 여성 이주자는 1억 3,500만 명(3.5%)이며, 남성 이주자는 1억 4,600만 명(3.7%)이다. 이중 노동 이주자는 2019년 기준으로 1억 6,900만 명이다.[2]

2020년 기준, 국가별로 이주민이 살아가는 인구가 국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인구수를 알아보면, 1) 미국(5,000만 명, 15%), 2) 독일(1,500만 명, 15%), 3) 사우디아라비아(1,300만 명), 4) 러시아(1,200만 명), 5) 영국(1,000만 명), 6) 아랍에미리트(900만 명, 90%), 7) 프랑스(900만 명), 8) 캐나다(800만 명), 9) 오스트레일리아(800만 명) 10) 스페인(700만 명) 순이다. [3]

우리나라도 이제 250만 외국인 시대를 넘어 조만간 3백만 명 이주민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제 이주와 이주민은 국내외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성경에서의 이주와 이주민

구약성경에 보면, 에덴동산에서의 추방당한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해서 방주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정착한 노아, 고향 갈대아 우르를 믿음으로 떠났던 아브라함, 이집트로 이주한 야곱 집안,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과 가나안 땅 정착, 그 뒤 바빌론 유배와 귀환 등이 이주와 이주민 이야기이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의 탄생과 이집트 피난, 그리고, 공생애에서 보여준 그리스도의 이주의 삶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세상을 떠도는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사도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스스로 이 세상의 이방인으로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이주민이라 생각하였다.

심지어,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도 자기의 고향 메카에서 그를 죽이려는 정적들을 피해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메디나로 피신하여 타향에서 살았던 이주민이었다. 결국,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의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나그네 삶을 살아가는 이주민임을 말씀하신다.

예수님께는 모든 사람이 다 중요

누가복음 8장 40절부터 56절 사이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두 기적이 하나의 이야기 안에 등장한다. 하나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치료받은 기적이고, 다른 하나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이야기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 기적 이야기는 결국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해서 구원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불가능과 절망이 지배하는 곳에서도 미치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한다. 다시 말하면, 당시 의학으로 고칠 수 없고 포기한 불치병인 혈루증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이미 사라져버린 절망으로부터 죽은 자를 다시 살려내시는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이 멋지게 나타나 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이 이야기는 회당장 야이로의 간청에 따라서 그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인데, 저자 누가는 그 가운데 혈루증 여인 이야기를 중간에 끼워 넣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 안에는 두 여성이 비교되며 등장한다. 한 여성은 당시 사회에서 권력과 부를 가진 유력 인사의 12살 된 귀한 딸이고, 다른 여성은 그 사회에서 저주받을 병으로 인해서 온갖 냉대와 따돌림 속에서 버림받아 12년 동안 살아왔던 한 여성이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그러기에 분초를 다투어 부리나케 가도 예수님께서 그녀를 살릴지에 대한 의심과 조바심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바쁜 그 길가에 갑자기 멈추어 서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버림받는 한 혈루증 여인 때문에 지체하는 예수님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혼잡한 인파 가운데 당연히 서로 부딪히면서 옷깃이 스칠 수도 있던 복잡한 상황인데도 누군가가 자기의 옷 가에 손을 대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이야기 가운데 나오는 두 여성 모두는 예수님의 눈에 구원받아야 할, 같은 영혼이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당시 제자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한 사회에서 귀하게 여김을 받은 한 여성이 구원받아야 하는 만큼, 동시에 한 사회에서 천대와 멸시, 그리고 모든 이로부터 저주받았다고 따돌림까지 받던 한 여인의 구원도 예수님께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듯, 하나님의 눈에 덜 중요한 사람은 없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구원이 필요하며, 사랑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주민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삶

현대의 민주주의를 누리고 사는 지금 우리의 자유와 평등의 뿌리는 미국의 독립운동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는 성경의 정신에서 비롯된다. 1776년의 미국 독립선언문(Declaration of Independence) 안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에게서 생명과 자유, 행복의 추구를 포함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주민을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대하는 것,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 모두의 당연한 자세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이겠지만, 하나님을 믿으며 사는 이들의 거룩한 책임이며, 고유의 권리이다. 그것이 거룩한 성탄의 계절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이다.

[미주]

[1] 유엔난민기구의 2022년 글로벌 동향 보고서, https://www.unhcr.or.kr

[2] 한국선교연구원, https://krim.org/pabalma-plus-2022-3-02-03.

[3] https://10layn.com/gocmen-nufusunun-en-cok-oldugu-10-ulke.

[복음기도신문]

kim ji

김종일 | 장신대 신대원 졸업, 前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現 FOT 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 회장, 저널 ‘전방개척선교(KJFM)’ 편집인, 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 교수. 저서: ‘밖에서 본 이슬람, 무슬림 이해하기’(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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