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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터키의 이슬람 세속주의 이해

▲ 터키 이스탄불에서 가장 번화한 탁심(TAKSIM) 거리. 사진: Aram Sabah on Unsplash

밖에서 보는 이슬람(39)

‘터키’라는 나라

2022년부터 나라의 이름을 정식으로 ‘튀르키예’로 바꾸면서 2023년이면 건국 100주년을 기다리는 현 터키 공화국(이후 간단히 ‘터키’로 기술함). 지금 터키는 세계에서 가장 전략적 요충지로 알려진 지역에서 6백여 년의 오스만 터키제국(1299년~1922년)에 이어 그 땅의 주인으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1923년~현재).

대한민국의 8배에 해당하는 면적, 9천만 명에 가까운 인구, 전체 인구의 99%가 넘는 무슬림, 과거 기독교 국가였던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이 있던 땅, 15세기부터 그 땅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이슬람 국가로 바뀌면서 세계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명과 혼합된 유일한 국가.

한편, 인류의 창조가 있던 에덴동산,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의 하란, 세계 이방 선교가 처음 시작된 수리아 안디옥, 계시록의 아시아 일곱교회 등 성경 지리적으로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는 수많은 지역.

교회사적으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삼위일체 교리가 정립된 니케아, 사도신경이 정립된 콘스탄티노플. 또, 선교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복음 전파가 안 된 국가, 사회문화적으로 한 국가 안에서 무슬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데 반해 이슬람적 요소는 가장 낮은 나라. 이것이 지금의 터키를 가리키는 설명 중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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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터키 공화국 지도.

이슬람 세속주의와 세속화의 구별

현대 터키 공화국의 핵심적 특징은 세속주의(Secularism)이다. 터키의 가장 중요하고도 통치 근간이 되는 이념인 이 세속주의는 세속화(Secularization)와는 구별된다. 터키의 세속주의는 공화, 민족, 국민, 정부, 개혁주의와 함께 국가의 설립 이념 가운데 하나이다. 심지어, 다른 다섯 개의 건국 이념이 이 세속주의를 위해 존재할 정도이다.

터키의 세속주의는 단지 정치와 종교의 분리로만 간주하지 않으며, 교육, 문화 및 삶의 전 영역에서 이슬람교와의 완전한 분리를 의미한다. 이는 사상의 자유와 함께 한 집단의 종교적 사고와 영향으로부터 완벽히 분리됨을 천명한다.

그러므로, 현 터키의 초기 수많은 개혁은 바로 이러한 세속주의 정신의 올바른 실현을 위해 나타났거나, 혹은, 이 세속주의 실현의 성공으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터키가 이러한 세속주의를 천명하고 출발했다고 해서 그들의 국민 신앙인 이슬람을 배격했다거나, 혹은, 이슬람 정신에서 이탈된 일방적 서구화 추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터키 세속주의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양면에서 접근해 보아야 한다. 그 하나는 한 국가의 통치 방법으로서 정치와 종교를 완전하게 분리하는 의미에서의 세속주의이다.

다른 하나는 아랍 정통 수니 무슬림들이 주장하는 이슬람법(꾸란)과 이슬람 전통과는 그 성향을 달리하면서도 지역 전통과 문화적 요소 안에 이슬람 요소를 포함한 의미에서의 세속주의이다.

그렇다면, 이 세속주의 이념을 만든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ATATÜRK) 자신은 이 ‘세속’의 의미를 전적으로 이슬람을 배제하고 이슬람 없는 정치와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의지에서 사용했을까?

아니면, 매우 높은 무슬림 구성비를 가진 국가로서 아랍 정통 이슬람이 추구하는 법과 전통을 완전히 따르지는 않지만, 고유의 민속신앙을 합친 터키만의 이슬람을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사용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세속’이라는 의미를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원래 이 말은 고대 그리스어인 ‘라이쿠스(Laikus)’에서 나왔는데, ‘사제가 아닌 사람’이라는 원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세속주의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함과 동시에 믿음에 관한 것들로부터 중립적인 입장에서 국가에 의한 종교적 강요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고, 종교에 대해 국가적인 특권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사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인간 활동이나 정치적 의사결정이 종교에 의해 간섭받기보다는 객관적 증거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세속주의이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ATATÜRK)

터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ATATÜRK)의 연설, 저서, 그리고, 그를 연구한 수많은 학자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그가 세우고자 했던 새로운 터키는 매우 강한 세속주의의 표방이 수반된다.

이런 그의 강한 세속주의 주창에는 그의 강한 실리주의 추구와 현실주의 정신이 뒷받침해주고 있는데, 공화국 건립 직전 지방 상공인들을 향한 그의 연설에서도 이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슬람을 생각하는 각자의 기준이 있습니다. 이 각자의 기준이 이슬람에 합당한 지 그렇지 않은지를 어떻게 쉽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성과 논리를 가지고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은 합당한 일입니다. 또한, 국가의 이익에 합당한 일이라면, 이슬람에도 분명 합당한 일이 될 것입니다. 국민의 이익이 이슬람에도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어느 사람에게도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이슬람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화국의 건국이념으로서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는 아랍 이슬람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가진다. 그는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그것보다 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국가와 국민의 이익과 안녕을 위해 이슬람이 방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과 포용심도 그의 사상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이런 아타튀르크의 실리 추구 정신은 외교적으로도 매우 성공적이어서 새로운 터키 정부를 주변 국가에 인식시키기 위해 당시의 국제정세를 적절하게 활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중에서도 터키가 가진 이슬람적 요소를 활용한 앙카라(Ankara) 정부는 당시 아나톨리아 반도 안에서 펼쳐졌던 독립전쟁에서 서구 압제 아래에서 항거하던 주변 이슬람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아내는 일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실제로 새 앙카라 정부의 이러한 실리 추구 정책으로 아프가니스탄과의 조약체결이라든지, 시리아와 이라크에 남아 있던 서구 국가에 대한 이슬람 항거 세력과의 연합전선 구축 등을 펼쳐나가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서구에 대해 강한 저항 의지를 보이던 새로운 앙카라 정부 주도 하의 독립전쟁(1919~1922)은 당시 전체 이슬람 국가 사이에서 서구 제국에 항거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러므로, 아타튀르크가 추구한 세속주의는 위에서 제기된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함하지만, 후자보다는 전자, 즉, 국익을 위해서는 수단으로써 활용할 이슬람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타튀르크에게 있어서 이슬람은 현대성과 서구세속주의에 비해 지나치게 전통적이고 시대에 뒤진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 의한 터키 이슬람은 불가피하게 하향식 제도적 규정을 통해 공공분야에서 차선으로 배제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 안에는 터키 정부의 교육 부문 독점, 술탄과 칼리프 제도의 폐지, 이슬람 학교(마드리샤)의 폐지, 이슬람 관련 행사 규제, 종무 기관(The Directorate of Religious Affairs)의 설립, 비 성직주의(Laicism)와 여기에 종교와 정치의 완전한 분리와 국가에 의한 종교의 엄격한 규제 등을 포함한다.

이런 그의 탈 이슬람 정책은 터키 내 보수 수니 무슬림들로부터 아타튀르크를 정당하게 이슬람 율법에 따라 처단해도 되는 ‘카피르’로 취급당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혀 이상한 결과가 아니었다.

한편, 오스만제국의 멸망(1922년)과 새로운 터키의 출범(1923년)은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 보면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스만제국에 의한 비잔틴제국의 붕괴(1453년)는 세계사에서 볼 때, 중세를 끝내고 근세로 진입하게 만든 매우 중요하고도 커다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오스만의 황제가 종교적 리더십(칼리프직)과 정치적 리더십(술탄직) 모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직 ‘칼리프’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최근의 이른바 ‘IS’의 아랍 정통 이슬람주의와는 거리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오스만제국 내 어느 한 시기라도 아랍의 정통 이슬람에서 얘기하는 이슬람법(샤리아)에 따른 통치를 펼친 적이 없었다는 사실로부터도 터키 이슬람이 가진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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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의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

세속주의가 터키 이슬람에 끼친 영향

지금까지 아타튀르크가 이끌었던 터키의 세속주의 특성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았으며, 이제는 이 세속주의가 터키 이슬람에 끼친 두 가지 영향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첫째, 터키 세속주의는 터키라는 국가공동체 안에서 인종, 언어 및 종교와 관계없이 국가의 모든 국민이 동등한 객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이념이었다. 터키 세속주의는 총체적 국가사회 실현을 위한 하나의 도구였기에 터키 내 인종, 언어 그리고, 종교를 하나로 묶어주는 그야말로 국민 대통합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공화국의 이념이었다.

둘째, 터키 세속주의는 오스만제국 내 다양한 민족을 통치했던 밀레트(Millet) 제도를 뛰어넘어 터키 법 제도 안에서 다양한 이슬람 종파와 여러 신앙을 가진 자들에 대한 평등과 균등을 보장해 주었다.

물론, 오스만제국의 밀레트 제도를 통해 다양한 종교를 가진 식민지 피지배 민족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었다는 것도 아랍 이슬람에 대한 터키 이슬람이 가진 차이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공화국 시대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오스만의 불완전했던 통치 제도를 벗어나 이슬람의 타 종파와 타 종교 신앙을 가진 모든 자가 평등과 균등의 삶을 법으로 보장받게 되었다는 것도 터키 세속주의가 끼친 커다란 영향이며, 동시에, 터키 세속주의를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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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 장신대 신대원 졸업, 前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現 FOT 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 회장, 저널 ‘전방개척선교(KJFM)’ 편집인, 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 교수. 저서: ‘밖에서 본 이슬람, 무슬림 이해하기’(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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