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두 대표(사단법인 올피플)
274호 / 나눔&나눔
전북 군산 앞바다 개야도. 화백 김종두 대표가 나고 자란 곳이다. 어느 날 연평도에서 조기잡이를 하고 있던 소년 김종두의 아버지가 북한 경비정에 끌려갔다. 그때 소년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남편의 납북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바다에 뛰어들었다. 마침 옆에 있던 누나의 외침 소리를 듣고 동네사람들이 간신히 물에서 건져냈다. 1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내려온 간첩으로 몰려 자백을 강요받았다. 고문까지 서슴지 않던 경찰은 글씨를 못 쓰는 아버지에게 한글을 가르쳐 볼펜 한 다스가 닳도록 자백서를 쓰게 했다. 1년여 뒤 아버지는 풀려났지만 이미 폐인이 돼있었고 고통스럽게 사시다 돌아가셨다. 그때 소년의 나이는 9살이었다.
– 너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셨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장남인 형이 있었는데, 중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가 가구공장에 다녔어요. 열악한 환경으로 분진 때문에 폐결핵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누님들은 형님을 살리려고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남의 집 가정부로 들어갔어요. 그러나 형은 24살에 공주결핵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어요. 어머니는 충격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셨고, 저는 섬에서 누나를 그리워하며 하루 종일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았어요. 그러다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저녁이 되면 친구들은 밥 먹으라고 부르는 가족이 있었지만, 저는 아무도 없었어요. 해가 지기까지 모래사장에 혼자 남아 그림을 그렸어요. 매일 바닷가에 나가 그림을 그리면서 집안의 어두운 분위기와 외로움을 이겨냈던 것 같아요.”
어렵고 힘든 유년시절
– 학교를 다니는 것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학창시절을 보내셨는지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군산으로 이사를 왔어요. 누나들이 전세금을 마련해 어머니와 저를 불렀는데, 그 돈을 사기당해 충남 서천의 도로변 빈집에서 살게 됐어요. 그런데 저를 전학시켜줄 사람이 없어서 충청도에서 전라도까지 배를 타고 통학을 했죠. 매일 왕복 40km를 자전거 타고 배를 타고 걸어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왜 이렇게 인생을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늘 의문이었어요. 당시 저는 아버지 사건을 몰랐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자전거를 많이 타서 튼튼해진 제 다리를 보면서 육군사관학교에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육사 가겠다.”고 누나들에게 이야기하면 “너는 안된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제가 연좌제에 걸려 있었더군요. 지금은 아버지의 간첩 혐의가 무혐의 처리됐지만 당시에는 더 이상 아무 희망도 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 멍하니 있다가 돌아왔어요. 어느 날부터는 책 귀퉁이에 낙서를 시작했고 책에 빈자리가 없어질 정도였어요.”
– 낙서를 했던 시간들이 어쩌면 지금의 김 대표님을 만드는 한 조각의 시간이었을지 모르겠네요. 그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에 갈 형편이 안되니 인문계는 포기하고 상고에 입학했어요. 하루는 2학년 때 미술 교생으로 오신 선생님이 집에 가려는 저를 불러 세웠어요. 제 낙서를 유심히 보시더니 좋은 소질을 가지고 있다고 크게 칭찬해 주셨어요.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관심과 사랑이었어요. 선생님은 저를 미술실로 불러 데생을 가르쳐주셨어요. 방학 때는 서울로 불러 미술학원에서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게 해주셨어요. 선생님은 어느 날 미술대학에 들어가라고 하시면서 제게 꿈을 심어주셨어요. 그러고는 3년 동안 미술 학원비와 숙식비용까지 감당해주셨어요. 감사하게도 대학에 들어가게 됐고, 대학에서 십자가의 은혜도 깊이 경험하게 됐어요.”
– 은혜의 연속이네요. 대학에서 하나님을 만나신 건가요?
“아니요. 1987년 대학 입학을 앞두고 군산의 한 화실에서 생활하고 있었어요. 날씨가 너무 추운 어느 날, 화실 쪽방의 연탄불도 꺼졌어요. 어떻게 밤을 보내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선배가 가까운 교회에 가서 몸을 녹이자고 하더군요. 밤 11시경에 교회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어요. 선배는 강단으로 가서 엎드려 기도했고, 저는 멀찌감치 뒤에 앉아 있다가 강단 벽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았어요. 제 인생 처음으로 바라본 십자가가 마치 저에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십자가 앞에서 지나온 제 인생이 영화처럼 지나가더니 눈물이 흐르고 통곡이 터져 나왔어요. 한참 울고 있을 때 누군가가 저를 포근하게 안아 주었어요. 성령님이 찾아오신 것이었죠. 그 이후부터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군산 지역에서 열리는 부흥회를 다 찾아다녔어요. 주님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차에 대학에서 한 선교단체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용서의 십자가를 확신하게 됐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저의 죄를 용서하실뿐 아니라 나를 위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면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간직하게 됐어요. 복음을 깊이 알게 되고 복음만이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 복음을 전하는 데 내 인생을 드려야겠다고 결단했어요. 그때가 대학 2학년이었어요.”
선배 손에 이끌려 간 교회에서 주님 만나
– 그러면 기독만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한 선교대회에 참석했을 때, 그곳에서 세계기도정보 책을 보면서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보만 모아놨기 때문에 재미는 없는 거죠. 모든 사람이 이 책으로 기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화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과정 끝에 조이출판사와 연결이 돼서 만화 기도정보를 만들게 됐어요. 이 책은 선교단체 간사를 하면서 만들었기 때문에, 전도하러 다니다가 시간 날 때 틈틈이 열람실에 가서 그리면서 만든 책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 영혼이 선교를 위해 불타고 있었던 거 같아요. 세계 모든 나라의 정보를 그리다 보니 각 나라 상황을 다 알게 됐어요. 그때는 지도만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꿈틀거릴 정도였어요. 시간이 흘러 나라들의 정보가 변하게 돼, 기도24·365본부에서 새로 나온 기도정보를 만화로 만들어 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그때 기도24·365본부와 순회선교단을 만나게 됐네요. 이 책을 만들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로 부르셨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직접 선교지에 나간 건 아니지만, 만화로 성도들에게 기도하게 하고, 선교지를 위해 기도하는 사역에 나를 다시 부르시는 것을 보면서 문화선교사로서의 부르심을 확증하게 됐어요. 당시는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여서 선교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어 있을 때였는데, 이때 기도정보책을 만들면서 열정이 다시 회복되는 시간이었어요.”
– 선교사로 헌신하신 꿈을 갖고 계속 순종의 걸음을 걸으셨군요.
“대학을 졸업하고는 중국으로 선교를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유학생 비자도 있으니 최연소 선교사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안기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 일 때문에 출국할 수 없다는 거에요. 나는 이제 선교사로도 갈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좌절하고 있었는데, 저를 안쓰럽게 여긴 선배가 신문사에서 시사만화를 그리는 일을 추천해줬어요. 만화를 할 생각도 없었는데, 하다 보니 적성에 맞았어요. 그러다 ‘먼 나라 이웃 나라’라는 만화를 보면서 기독교 지식도 이렇게 만화로 풀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1994년에 ‘만화로 보는 세계선교발달사’를 만들게 됐어요.”
– 칼빈의 기독교강요도 만화로 쓰셨던데요? 그렇게 어려운 책을 어떻게 만화로 만들게 되셨나요?
“제가 원불교 교단이 세운 대학에서 선교단체 간사로 섬길 때였어요. 어느 날 한 목사님이 원불교 법회에 와서 설교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나. 기독교는 유일한 진리인데, 어떻게 목사님이 원불교 법회에서 설교를 하는가? 그걸 보면서 제가 기독교를 제대로 공부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은 책이 기독교 강요였어요. 이 책을 읽다가 제 영혼에 큰 각성을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크신 세계를 발견하게 됐죠. 그러면서 이 책을 만화로 만들어서 한국 교인들이 읽을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5년간 목숨 걸고 이 책을 만들었어요. 책을 만들다가 대상포진이 와서 잠시 작업을 쉬기도 했는데, 그 때 하나님이 제 열심이 너무 앞선다며, 기도하면서 그림을 그린다면 이 책은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책이 될 거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렇게 기도하면서 책이 나오게 됐고, 이 책을 계기로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후로 10년간 40권 넘는 기독만화를 출간하게 됐습니다.”
해외 선교길이 막히자 만화로 선교하다
– 1년에 적어도 4권을 만드셨다는 말인데, 엄청나네요.
“10년 정도 하니까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지금까지 해온 것에 만족하면서 여기서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님께서 다시 저를 부르셨어요.”
–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스티브잡스가 세상에 스마트폰을 내놨을 때,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만화책으로 전도하는 게 한계가 있다는 생각과 함께 전도서 11장 1절 말씀이 떠올랐어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인터넷의 바다에 제 만화를 무료로 나누어 주어라! 훗날 내가 채워 주겠다!’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렸어요. 인터넷 시대에 만화와 웹툰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부르심이었는데, 그때 당장은 순종하지 못했어요. 당시 예상치 못하게 출판사 전속작가를 그만두게 되면서 부천에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비즈니스 센터에 입주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만화 콘텐츠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후 만화로 전도를 해야겠다는 도전을 받고 복음만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식’을 만들었어요. 또 한국기독실업인회 멤버들을 주축으로 만화로 복음을 전하는 ‘사단법인 올피플’을 만들었어요. 전국의 군부대, 교도소, 소년원, 청소년집회, 외국인 마을을 다니며 만화로 복음을 전했어요. 골방에서 만화만 그리던 사람이 거리로 나가 외국인들에게 만화로 전도했어요.”
– 초점을 집중하면서 복음만화로 모아졌군요.
“좋은 소식은 성경의 내용을 압축해 놨어요. 복음만화를 조금만 충실하게 읽어도 창조에서 계시록, 교회 생활까지 다 알 수 있어요. 만화는 누구나 보니까 선교지에서도 이런 만화는 서로 갖고 싶어해요. 감사하게도 24개 언어로 번역 작업도 마쳤어요. 그러나 이런 만화도 나눠줄 수 없는 곳들이 있어요. 그런 곳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전해야 해요. 최근에는 만화를 영상으로 만들었어요. 그게 무빙툰이에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이슬람권 사람들에게 아프간 언어로 번역된 무빙툰을 전달하면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연락이 와요.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나오고, 가서 세례도 주고, 줌(ZOOM)으로 신학교까지 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있어요. 지금은 콘텐츠가 선교사에요. 기술과 콘텐츠를 이용해서 새로운 전도사역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렇게 물 위에 떡을 던지라는 말씀을 이루어 주신 것 같아요.”
–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전도만화를 1억 부 정도 발행해서 지구촌을 만화로 덮고 싶어요. 지금은 50만 부가 배포됐어요. 코로나 터지고 모든 것이 중단됐을 때는 오히려 인도는 인도적 지원의 문이 열리면서 음식과 함께 복음만화를 배포하게 됐어요. 한 인도 거지 할아버지는 만화를 읽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였고 수많은 인도인들이 예수님을 더 알고자 연락을 하고 있어요. 또한 10대들을 위한 디지털 선교를 진행 중에 있어요. 성경을 읽다가 사도행전 16장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말씀이 ‘메타버스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마음으로 받아지면서 메타버스의 한 가상 공간인 제페토에 ‘바이블 랜드’를 건설했어요. 거기에 성막을 만들고 성막을 구경할 수 있게 했어요. 앞으로는 시내산이나, 홍해, 성경의 장면들을 재현해서 성경을 소개하고, 관심 있는 다음세대들과 채팅으로 이야기하는 전도를 위한 메타버스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어요.”
메타버스에 바이블 랜드 건설해 10대와 만나
– 또 다른 것들도 있나요?
“사도바울이나 다니엘, 요셉과 친구를 맺고 대화하는 바이블톡챗봇을 개발하고 있고, 밤하늘에 드론으로 만화를 그리며 복음을 전하는 꿈도 갖고 있어요. 지난해 줌으로 웹툰스쿨을 진행했어요. ‘병맛 천로역정’이라는 애니메이션도 제작하고 있고, 웹툰 신인 작가들을 양성하기 위해 전국 규모의 웹툰 공모전, 시상식을 했어요. 또 미션아트라고 해서 캄보디아에 있는 가난한 화가들의 그림을 우리나라에서 전시하고, 우리나라의 유명 작가들이 그 마을에서 그림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함께 전시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화가들의 믿음의 삶을 돕는 일을 계획 중에 있어요. 내년에 캄보디아에 ‘올피플 아트스쿨’이 세워질 예정이에요”
– 너무 많은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게 되셨나요?
“어느 날 열왕기하 4장 말씀이 다가왔어요. 엘리사의 한 제자의 아내가 남편이 죽고 빚 때문에 어려운 일 당하는 것을 토로하자 엘리사가 이웃들에게 빈 그릇을 빌려오라고 하고 빌려온 그릇 만큼 기름을 채워주는 내용이에요. 저는 빈 그릇을 빌려온 것뿐이고,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해요. 채워주시려고 하나님이 빌려오게 하셨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빈 그릇 사진들을 붙여놓고 거기에 기도제목을 써놨어요. 그런데 주님이 정말 전문가들을 붙여주시고, 사람들을 보내주시면서 하나씩 이루어주셨어요. 아직 이뤄지지 않은 빈 그릇들도 많아요.”
– 끝으로 기도제목 말씀해 주세요.
“3가지에요. 복음만화를 1억 부를 만들어 지구촌에 전달하는 것이고, 저와 같은 후학을 양성하는 것을 두고 기도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준비해 둔 빈 그릇들이 실제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데, 이런 일들을 통해 제가 살아있을 때 한국교회가 부흥을 경험해서 10대들이 변화되고 교회의 주역이 되고, 또 자신의 인생을 드려서 선교하는 일들을 보고 싶어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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