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식 선교사(하나되는 교회)
273호 / 나눔&나눔
김창식 선교사는 최근 대한시문화협회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연약한 자신의 인생을 시로 담은 ‘모지리 토마토’ 시집에는 그의 인생이 담겨있다. 굴곡진 인생의 순간들을 시 한 편, 한 편으로 담아 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시는 언제부터 쓰셨나요?
“저는 시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따로 문학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아니에요. 다만 성경 중에 다윗의 시편을 좋아했어요. 다윗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감정들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아뢰더군요. 저도 살다 보면 억울한 일,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내 마음을 토로하면 마음이 편해졌어요. 내 마음을 주님께 토로하듯 조금씩 시를 써봤어요. 주님이 주신 은혜가 있으니 여러 지인들이 함께 있는 소셜미디어(SNS) 그룹 채팅방에 시를 올렸는데, 사람들이 많이 공감을 하더군요. 그래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주님께 토로하듯 기록한 글이 시가 되다
– 선교사님의 살아온 이야기를 소개해주세요.
“살아온 이야기를 하라면 긴데, 시집 속에 다 들어있어요.”
김 선교사는 ‘거라사 광인의 찬양’이라는 시를 읽었다.
<거라사 광인의 찬양>
아침에 눈 뜨면
조용히 밀려오는
행복의 물결들이
내 영혼에 넘친다.
한때는 하루가 시작된다는 고통에
눈뜨기조차 싫었다.
죄악의 사슬에 매여
귀신에게 사로잡혀
난 밤낮 울부짖는
짐승보다 못한 존재였다.
가족들도 다 떠나고
의식마저 희미해져
난 절망의 바다에 허우적거리는
인생이었다.
그러나 주님 내게 찾아와 주셨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나를 찾아와 주셨다.
그 사랑으로 날 안아주시고
하늘의 권세로
악한 귀신들 쫒아내 주셨다.
나를 불쌍히 여기셨다.
큰 은혜 베푸셨다.
나 살아가는 동안
주님 찬양하리라!
내게 행하신 크고 놀라운 일
전하리라!
내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
전하리라!
“이 시는 제가 예수님을 믿기 전 영적상태였어요. 굉장히 힘든 상태였죠. 실패와 어려움이 많았어요. 사업 실패도 하고, 가정도 한 번 깨지면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죠.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어요. 예수님을 만난 이후 거라사 광인이 새로워진 것처럼 저의 삶도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변하게 됐어요.”
– 언제 주님을 만나셨나요?
“부모님이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특히 어머니는 늘 기도하시고 신앙이 좋은 분이셨어요. 저는 젊었을 때 험하게 살았기 때문에 늘 어머니의 기도제목이었어요. 인생의 어려움을 당하고 30살 때 우연한 기회에 전도를 받으면서 회심하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됐어요.”
30살에 전도받아 회심하고 변화된 삶 시작
– 선교사로 헌신하기까지의 시간들이 궁금합니다.
“제 고향이 여수에요. 2007년도 여수에는 선원으로 와 있는 중국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분들을 보면서 부담감이 생겼어요. 이 사람들은 한번 출항하고 나면 보름씩 있다가 돌아오는데, 이 배들을 찾아다니면서 중국어 성경과 전도지를 나눠줬어요. 그러다 보니 중국인 교회가 생기고, 외국인 센터가 생기게 되면서 70명 정도 예배를 드리게 됐어요. 사역이 활발해지다 보니 저를 도와주시던 한 장로님께서 이 길을 계속 가기 원한다면 신학을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렇게 그 사역을 마무리하고 광주로 와서 신학교에 다니게 됐어요. 학교에 다니면서도 주간에는 이주민 사역을 하고 야간에는 신대원에 다니면서 사역을 이어갔어요.”
– 지역을 옮겨서 사역을 계속 하셨군요.
“이주민 사역을 하다 보니 이주민들을 먹이고 센터 운영비도 마련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자립이 안 돼서 막노동을 하면서 사역을 했어요. 그러다 주변 교회들에게 협조를 요청해서 이주민 대상으로 하는 물품 나눔 센터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물품들이 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필요 이상으로 들어오다 보니 나누는 것도 한계가 있고,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기도하면서 찾아보다가 외국에서는 한국 재활용품들이 인기가 좋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 물품들을 수출을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신대원 1학년 때 회사를 설립하게 됐어요. 재정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마침 정부에서 실패한 기업인들에게 재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어요. 이러한 도움을 받아 기독교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어요. 물품을 모으고 수출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일자리도 창출하게 되고, 물품을 선교지로 보내 나누기도 하고 팔기도 하면서 재정 자립을 목표로 회사가 만들어졌어요. 회사 이름을 ‘두루도라’라고 지었어요. 도라는 그리스어로 선물이라는 뜻인데, 두루두루 선물을 전하는 회사가 되자는 의미죠.”
– 사모님이 외국인이신데, 결혼을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한국에 와 계신 인도 목사님을 어느 날 우연히 만나게 됐어요. 그분과 교제하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좋은 처자 있으면 소개시켜달라고 했는데, 그 목사님이 정말 사진을 보내오셨더군요. 그래서 인도로 가서 자매님과 선을 보게 됐어요. 그런데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결혼을 해도 고생을 할 상황이어서 솔직하게 제 상황을 이야기하고, 그래도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나는 집도 없고, 정해진 급여도 없고 결혼을 해도 고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래도 결혼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게 됐어요. 그게 2010년이네요.”
– 두루도라와 선교사님의 비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회사를 창업하면 무조건 잘 될 줄 알았어요. 3년 넘게 어려움이 매우 많았어요. 사기도 당하고 수해가 나면서 컨테이너 두 개가 침수 돼 물건들을 모두 버려야 했어요. 빈 컨테이너에 가게를 오픈할 수 있는 컨테이너샵 프로젝트를 필리핀에서 하려고 준비하다가 상황들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포기하기도 하고 여러 고비들이 있었어요. 그래도 주님의 은혜로 이런 어려움들을 잘 넘기게 해주셨어요.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면 한국과 선교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저는 지금 이주민 사역과 목회를 겸해서 하고 있어요. 이주민 교회를 3년 전에 개척했는데,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목회와 더불어 이주민 사역에 집중해서 제자양육을 하는 꿈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동안 실패도 많이 하고,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믿음도 있고 재정도 있다면 좋겠지만, 믿음이 있다면 믿음으로 살자고 생각하면서 한걸음씩 나가고 있어요.”
신앙 간증 담은 시집 모지리 토마토, 신인문학상 받아
– 최근에 출간한 ‘모지리 토마토’ 시집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그 책에는 저의 영적인 변화, 회심, 성화되는 과정, 사람들을 보는 시각의 변화들, 삶의 자세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많이 눈물 흘렸던 시간들이 담겨있어요. 광주에는 영산강이 있는데, 제가 영산강 벤치에 앉아 많이 울었어요. 앞이 막막할 때 거기에서 울면서 기도하고 나면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죠. 이런 내용들이 시로 고백이 돼 있어요. 시는 투박해요. 전라도 사투리도 들어가 있어요. 어떤 분들은 ‘이게 시냐?’ 할 수도 있는데, 저의 고백이니까요.”
– 모지리 토마토는 무슨 뜻인가요?
“모지리는 전라도 사투리에요. 말과 행동이 똑바르지 못하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나 물건들을 볼 때 모지리라고 해요. 제 인생이 모지리 같았기 때문에 토마토에 빗대어 표현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공감을 해주더군요. 남들이 봤을 때는 똑똑하고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인데도, 본인이 느끼기에는 모지리 같은 부분이 있어서 많이들 좋아하고 공감해주는 것 같아요.”
김 선교사는 모지리 토마토를 바로 낭독했다.
<모지리 토마토>
우리 동네 노점에
과일 파는 할머니가 있다.
그릇그릇 바구니에 각종 과일
담겨있다.
그중 가득 담긴
과일 바구니 앞에
쓰인 글자
모리지 토마토
겁나게 많이 담아 3천 원
나는 모지리 같다.
못생기고 볼품없는
모지리 토마토 같다.
난 돈도 없다.
공부도 못한다.
내세울 게 하나 없다.
시장에서 한바구니
가득 담아 3천 원에 판매하는
모지리 토마토다.
그래도 모지리 토마토를
찾는 사람 있다.
모지리 토마토로
맛있는 요리를 하며
행복한 저녁 만찬을 즐기는
가정이 있다.
모지리 같아도
쓰임 받으면 행복하다.
– ‘모지리 토마토’ 시집 중에 대표시를 소개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번에 대한시문학협회에서 상 받은 것 중 하나가 ‘섬진강에서’라는 시에요. 이주민 사역자의 자세를 시로 표현한 것이죠. 강물과 바다가 만나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처럼, 인간의 문화와 또다른 문화가 만나서 서로가 서로를 포용하는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시에요.”
<섬진강에서>
섬진강이 바다로 흐른다
굽이굽이 먼길 험한
길 목적지에 다다른
강물을 남해바다는
기꺼이 반갑게 맞이한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은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새로운 생물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간다
우리 인생도 새로운 문화와
문화가 만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간다
나도 너처럼
남해바다처럼 서로가 서로를 반기며
포용하는 인생이고 싶다
– 마지막으로 기도제목 말씀해주세요.
“다른 단체와 교회 공간을 함께 사용하다 우리가 그곳에서 나왔어요. 당분간 천막을 치고 사역을 해야 합니다. 더욱 기도에 전념하며 이주민 사역을 위한 좋은 장소로 이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시집 ‘모지리 토마토’ 북 콘서트를 모교인 호남 신학대학교에서 11월 5일에 하게 되었어요. 시집을 통해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감동을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특별히 시집도 많이 판매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마지막으로 기독교 사회적 기업인 ‘두루도라’가 정상화되어 다시 이주민 선교의 재정 지원과 섬김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인도로 수출이 재개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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