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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이아침 칼럼] 말씀 앞에 항복만이 살 길이다!

ⓒ 복음기도신문

모세는 직접 싸우지 않고, 여호수아, 곧 다음 세대에게 싸우게 했습니다. 저도 10년 뒤면 은퇴를 하는데 10년은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구나” 하는 퍼즐이 맞춰지면 하나님의 위로와 책망이 함께 보입니다. 10년 후에는 20대는 30대 되고, 30대는 40대 됩니다. 저는 20대, 30대, 40대를 주목합니다. 여호수아처럼 말씀 그대로 살 이들을 주목합니다.

20대 청년 수십 명이 훈련되어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생각해 보면 새로운 차원입니다. 40대는 실제 집행할 수 있는 그룹입니다. 50대는 완숙하게 리드할 수 있는 그룹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조직하고 연합하여 교육하고 훈련하시는구나! 하나님 약속의 말씀대로! 완고함을 처리하고 있는 과정 가운데! 아말렉을 보내 우리를 흔들어서라도! 믿음의 일꾼들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항복했다는 첫째 의미는 하나님 말씀대로 간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참이고 진리이기에, 그 말씀이 우리를 휘감고 말씀이 역사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음에 다른 것이 깃들 때마다 그럴 수 없다고, 그것에 신경 쓰여서 피곤할 수 없다며, 내 마음은 주님께 가 있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산 꼭대기에 섰습니다. 피곤해서 손을 내리면 전쟁에서 졌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손을 들게 했고 결국 이겼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는 원래 모세의 지팡이입니다. 출애굽기 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그 지팡이를 던져라.’고 말씀하시면 지팡이가 뱀이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는 조건은 단 하나, 약속이 덧입혀졌을 때입니다. 그때 항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제가 목회 수업을 받고 목사 고시를 보고 목사가 됐습니다. 10년 걸려서 목사 됐다고 하나님의 사람, 목사일까요? 설교를 한다고 하나님의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목사 이선세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덧입혀졌을 때만 하나님의 사람 이선세가 됩니다. 이 마음이 실제 제 마음에 있어서 마음에 든든함이 생깁니다. 다윗의 심장이 됩니다. 사회적 신분의 높고 낮음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주눅들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약속이 깃들면 든든해집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약속이 희미해지면 초라해지고 두려워집니다. 모든 것이 두렵습니다. 설교도, 사람 만나는 것도 두렵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덧입혀졌을 때만 든든함이 옵니다. 그 약속이 여러분에게 덧입혀질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안 됩니다. 아론과 훌이 협력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합해야 합니다. 혼자 믿음 생활을 잘하겠다는 사람, 혼자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을 보면, 전부 미끄러지고 잘못되고 낙망하고 깊은 교만에 빠져서 늘 지도만 하고 다니게 됩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랍비 전승을 보면, 갈렙과 미리암이 결혼하는데 그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 훌입니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입니다. 믿음의 가문입니다. 훌은 이 말씀 이후로 말씀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금송아지 사건 때 훌이 순교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자는 백성들의 의견에 반대하다가 순교합니다. 훌의 아들이 우리였고 우리의 아들이 브살렐입니다. 항복했다는 약속의 말씀이 덧입혀져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합력하게 하십니다. 항복할 수 있는 조건은 이미 우리에게 허락되어 있습니다. 그 조건을 취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15:2~3)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사무엘상 15:8~9)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사울 왕이 다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것을 남겼습니다. 왜 남겼습니까? 쓰려고 남겼습니다. 탐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탐하는 마음을 처리하기를 원하십니다. 탐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요? 맞습니다. 그러나 탐하든 탐하지 않든 약속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데 ‘나는 되지 않아요, 하나님!’ 하는 관점이 열리셔야 합니다. 탐심은 곧 아말렉이요,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하셨을 때 다 진멸하는 것이 항복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로새서 3:5)

우리 교회 신학생들에게 재정훈련을 시킵니다. 재정을 잘 관리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월별 재정 계획을 세우고, 헌금과 아웃리치, 생활비와 식비, 오락비 등을 세워보고 수입과 지출을 다음달 초에 보고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감동을 받기 때문에 ‘이렇게 돈을 써야지’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일반적인 지출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에 따른 지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서 막상 지출하려고 하니 5천 원이 아니라 5만 원이 필요해집니다. 돈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재정 훈련을 통해 우리 마음이 어디로 가 있는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추잡한 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절묘한 논리로 하나님의 감동을 소멸하고 오그라지게 만듭니다.

광화문에서 신고 있던 신발을 갑자기 그 신발이 필요한 누구에게 벗어주고 오라고 하고, 다른 신발 사서 신고 오면 안 된다고 과제를 내주면 어떤 반응이 올까요? 지갑에 있는 전 재산 12만 원 옆 사람에게 주고 오라는 과제를 내주면 너무 극단적으로 보일까요? 우리 마음에 탐하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면 이런 훈련을 하는 것은 어림도 없습니다. 변명하기 일쑤일 것입니다. 5만 원의 감동이 5천 원으로 변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우리 실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항상 선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항상 기쁘고 온전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출애굽기 17:14~16)

이것을 기념하게 하고, 대대로 가르치고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제대로 손들기가 안 되는 이유는 우리의 탐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썼기 때문에 피곤한 것입니다. 생각과 신경과 몸을 다른 어디엔가 썼기 때문입니다. 피곤해지는 것 주의해야 합니다. 바쁜 것, 죄입니다. 일 중독은 큰 죄입니다.

제대로 손들기가 안 되는 세 번째 이유는 교육을 그렇게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항복만이 살 길이라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쳐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항복해야 완악함과 완고함이 죽고, 그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책에 기록하고 귀에 들려 외우게 하라고 합니다. 항복만이 살 길이다! 그 유산을 받지 못한 것을 아파하고 애통해 하며 그 최고의 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에필로그]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았다고 합니다. 그 땅에는 거인들이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넘볼 수 없는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고 세력이 점유하고 있는 땅이었는데도 주저함 없이 밟았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약속이 깃들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볼 때는 두려운 곳이었고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었는데 항복하고 보니 주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주저함 없이 발걸음을 내딛은 것입니다. 그 항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그것이 실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한다면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고 죽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결단과 자기 다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이 십자가 지신다면 무슨 선한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님! 그럼 저는 무슨 일을 해야 됩니까?” 하고 묻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들어왔으니 아론, 훌과 함께 손을 들고 항복하는, 손들지 못하고 항복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며 사랑하고 권면하며 항복의 길로 함께 가는 은혜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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