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래트클리프(Roy Ratcliff)는 악명 높은 연쇄 살인범 제프리 다머(Jeffrey Dahmer)에게 세례를 준 목사이다.
다머가 15건의 살인 혐의로 중복 종신형을 선고받은 후 래트클리프는 그를 방문해서 복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래트클리프에 따르면 다머는 하나님 은혜의 깊이를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머와 같이 극악무도한 짓을 한 사람에게 은혜는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1994년 스톤 필립스(Stone Phillips)와의 인터뷰에서 다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천국에 가서 확인하기 전까지야 그의 진심을 알 수 없겠지만, 우리 인생에서 가장 뒤틀린 연쇄 살인범 한 명이 은혜를 향해서 “주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당신은 다머를 천국에서 만나고 싶은가?
래트클리프는 다머와 함께 보낸 시간을 책으로 냈다. 아마존에서 책 설명을 훑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은혜라는 게 항상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는 않는 게 분명하다. 한 독자가 이렇게 리뷰를 썼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리뷰를 쓴 사람의 감정을 공유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글은 우리가 은혜를 생각할 때 가질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킨다. 우리는 하나님이 덕 다이너스티(Duck Dynasty)에 나온 족장 필 로버트슨과 같은 사람을 과거의 섹스, 마약, 로큰롤로부터 구원하신다는 사실에는 기뻐하지만, 피해자를 강간하고 죽이고 인육을 먹기까지 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는 똑같이 기뻐하지 않는다. 천국에서 브래드 피트(Brad Pitt)는 만나고 싶어 하지만, 행여라도 히틀러가 죽기 직전에 개종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게 우리 마음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 소소한 우상숭배는 다 용서하시길 바라지만, 소아성애자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는 치를 떤다.
구원 여부가 인간의 결정에 달린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달렸다는 사실을 찬양한다. 나는 자비로움에 있어서 인색하기 짝이 없지만,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그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롬 10:13).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우리는 언젠가 제프리 다머 바로 옆에 서서 “거룩, 거룩, 거룩”하고, 그와 함께 찬양할지도 모른다. 이 사실은 다음 세 가지 이유로 나를 흥분시킨다.
1. 내게 소망이 있다는 의미이다.
므낫세 왕에 대해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아들들을 산 채로 불태웠고, 마법사와 마녀(해리 포터에 나오는 종류가 아님)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바알 숭배를 위한 “신당 재건”이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두손 두발이 꽁꽁 결박당할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대하 33:10). 그러나 “므낫세는 고통을 당하여 주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그는 조상의 하나님 앞에서 아주 겸손해졌다. 그가 주님께 기도하니, 주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그 간구하는 것을 들어 주셔서, 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왕이 되어 다스리게 하셨다. 그제서야 므낫세는 주님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다”(대하 33:12-13).
므낫세 왕과 제프리 다머 같은 사람에게도 소망이 있다면, 여러분과 나에게도 소망이 있다.
나는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얼마나 끔찍한 죄를 저질렀기에, 다머 같은 사람이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갔다는 말에 ‘안도’하는 걸까?”라고 아마존에 리뷰를 쓴 사람의 질문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얼마나 끔찍한 죄냐고? 너무 많다. 나는 거룩하지 못했다. 나는 참지 못했다. 나는 내가 받은 자비를 확장하지 못했다. 나는 나의 창조주를 완벽하게 실망시켰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은혜가 연쇄 살인범과 악한 왕에게까지 미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은혜에 대한 오해이다. 그것은 죄를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선하심을 과소평가하는 교만이다.
2. 다른 사람에게 소망이 있다는 의미이다.
내게는 목록이 하나 있다. 종이가 아닌 마음에 담아둔 것이다. 거기에는 내가 사랑하는,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가득하다.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영아를 죽였다는 므낫세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내 죄가 생각난다. 그리고 나는 목록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매달리지 않는 한, 영원한 형벌을 짊어질 것임을 나는 안다. 그들이 므낫세와 같이 하나님께 복종하고 스스로 겸비하여 그의 얼굴을 구하지 아니하면 은혜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도 은혜가 있음을 기뻐한다.
나는 그들이 그리스도께 매달림으로써 하나님께 굴복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인해 기뻐한다. 그들은 용서받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있다. 히브리서 7장에서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으로 묘사된다. 그의 죽음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는 매일 치러야 하는 희생이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만큼 그의 제사가 완벽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모든 희생이 이루지 못한 것, 즉 죄에 대한 속죄가 영구적이고 단번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완전하게”(To the uttermost)를 어떤 번역자는 “온전히”(completely) 또는 “영원히”(forever)라고 표현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주의 사항이 없다. 살인. 동성애. 유아 살해. 우상숭배. 그 어떤 죄를 저질러도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는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 나와 당신이 전도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이 다 자비의 후보자이다.
하나님께서 므낫세나 다머 같은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신다면, 우리에게뿐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소망이 없다.
3. 하나님이 모든 영광을 받으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담긴 넘치는 풍요함은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낸다. 우리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이 사실에 불편함을, 심지어 굴욕감을 느끼는 교만한 사람도 있다. 죄를 물리치는 일에 관해서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승리하신다.
선물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감사한 미소 대신에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라고 말한다. 자비가 축복이 아니라 빚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지독한 교만이다. 어느 목사가 최근 설교에서 이렇게 상기시켰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는 그 어떤 꼼수나 속임수가 없다. 당신은 오로지 선물로 받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예수님의 족보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사람들로 채울지가 궁금하다. 확실히 라합(마 1:5), 다윗의 가장 치욕적인 죄(마 1:6) 또는 므낫세 왕(마 1:10)과 같은 부류의 인간은 결코 넣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가장 좋아하는 성자를 선택해서, 그런 성자들로 족보를 채울 생각에 흐뭇해할 것이다. 그러나 은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은혜의 경로와 길이와 깊이를 표시하신다. 마가복음 2:7에서 율법학자들은 제대로 된 질문을 던졌다.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아무도 사할 수 없다. 그리고 기억하라. 하나님은 당신이 아는 최악의 사람에게조차도 용서를 베푼다.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의 기도는 특별하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행 7:60, cf. 눅 23:34).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사울의 반응이다.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행 8:1). 바울로 더 잘 알려진 사울의 회심과 그 이후의 사역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은혜에 대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사례의 하나이다.
무자비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사랑할 줄 모르는 자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나와 같은 반역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복음기도신문]
레이첼 조이 웰처(Rachel Joy Welcher) | Fathom Magazine의 에디터이자 시인이다. 지은 책으로는 Talking Back to Purity Culture: Rediscovering Faithful Christian Sexuality가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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