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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칼럼]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스트 예수(I)

사진: Levi Meir Clancy on Unsplash

<역사적 예수 논구 시리즈>

율법 전통을 깨뜨리면서 그 정신을 구현한 분

예수는 유대교의 율법 전통을 깨뜨리면서도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분이다. 그는 율법 종교의 틀에 넣을 수 없다. 율법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는 자유스러운 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율법 자체를 부정하지 아니하셨다. 예수는 전통 율법 종교를 비판했고,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는 점에서 예수는 그 시대의 진정한 포스트모더니스트(true postmodernist)라고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말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긍정적 측면은 다양성과 개방성을 지지한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전통 자체를 부정하거나 규범을 부정하는 해체주의자는 아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정적 측면은 전통부정과 진리와 가치의 해체를 주장한다는 점이다. 예수는 유대교의 본질을 지키신 자였다. 예수는 유대교 율법의 정신인 의와 인과 신을 계승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랑의 새 계명(new commandment of love)을 제창하신 자기 정체성을 지닌 자였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개방적인 자였다. 그는 자기 헌신적인 존재였다. 그는 이웃을 위한 존재, 타자를 위하여 산 자였다. 그리고 그는 탁월하신 분(an excellent being)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이러한 모습이 오늘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타당성이 있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중의 한 분인 하워드 스나이드(Howard Snyder)는 역사적 예수에 관하여 다음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심을 구현하신, 궁극적인 포스트모더니스트이실 것이다. 그러나 가장 분명한 것은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평을 초월하고, 그 꼭대기에 서 계시다는 사실이다.”

I. 율법 종교의 비판가 예수

복음서 저자 마가는 율법 종교를 비판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다음같이 증언한다: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고”(막 7:1-2). 이들은 예수께 질책성의 질문을 하였다. 마가는 이러한 장면에 대하여 보다 자세한 배경 설명을 해준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막 7:3-4). 복음서 저자 마태도 비슷한 설명을 한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마 15:2).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마 15:3). 예수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마 15:4-5).

예수는 이 말씀을 통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럴듯한 종교적 근거를 들어서 부모공경을 소홀히 하는 당시의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신 것이다: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 15:6).

마가는 예수의 말씀을 보다 자세히 전해 준다: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 7:9-13).

우리는 마태와 마가가 기록해서 전해주고 있는 예수의 말씀에서 당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성전 제사를 빙자하여 하나님께 제사지낸다고 부모 공경의 일을 왜곡하고 등한시한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다. 이처럼 바리새인들의 율법 종교는 율법의 정신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보다는 자신들의 종교적인 편의에 따라서 하나님의 계명을 소홀히 하거나 왜곡했던 것이다.

율법 종교의 규례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병을 고쳐서는 안 되며, 가축이 구덩이에 빠졌더라도 끌어 내어서는 안 된다. 안식을 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어느 근본주의 교파에서는 주일 날에 한국에 도착한 외국 선교사를 마중하러 나간 목사가 주일을 범하였다고 하여 징계를 받은 일이 있다. 전혀 생소한 미지의 땅에 도착한 하나님의 사람을 모시고 오는 일, 병든 자의 고통을 드는 것, 생명의 위험에 처한 가축을 구출하는 것은 단순히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율법의 계명보다는 율법이 가르치는 정신, “공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충실한 것(눅 11:42)이 되는 것이다.

예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눅 6:10).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 12:11-12). 예수는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신다: “네 손을 내밀라.” 예수의 말씀에 따라 손 마른 자가 손을 내밀매 그 손이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었다(눅 6:10).

예수는 바리새인의 위선과 사리사욕 추구를 나무라신다. 군중 수만명이 모인 처소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外飾)을 주의하라(눅 12:1)고 경계하셨다. 그러나 예수는 전통과 율법 자체를 거부하거나 해체시키는 해체주의자는 아니었다.

II. 불을 던지러 오신 분

예수는 사랑의 계명을 주신 분이면서도 동시에 이 세상에 불을 던지심으로써 율법과 제도에 안주하려는 사회 구성원에 긴장과 갈등을 일으키러 오신 분이다. 예수는 말씀하신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 불이란 구약성경의 그림언어에서 종말 시에 하나님 백성을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는 수단이다. 오순절 날 성령이 강한 바람 같이 임하고 불의 혀 같이 보였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행 2:3). 불이란 하나님 말씀의 심판하시는 힘에 대한 상징으로도 기능한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설교에서 말씀은 불처럼 타오른다. 불은 인간의 불의와 오만을 심판하며 정결케 하는 것이다. 구약 예레미아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의 부스러 뜨리는 능력에 관하여 증언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렘 23:29). 이 구절은 말씀으로 천지를 조성하신 하나님 말씀의 창조적 능력과 권능만이 아니라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수술하여 새롭게 하시는 능력을 지시해주고 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화평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키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눅 12:51). 여기서 분쟁이란 적대적 분쟁이나 증오의 분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분쟁이요, 하나님의 뜻을 세우기 위한 거룩한 분쟁이다. 이것은 아비와 아들, 어미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의를 위한 거룩한 갈등이요, 불순종이다. 이것은 아비와 어미, 시어머니와 며느리, 장인과 사위 사이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때 야기하는 거룩한 분쟁이나 불순종을 말한다. 이 분쟁은 정치적, 사회적 함축성을 갖는다. 이러한 거룩한 분쟁은 영국의 식민정책에 불복종한 인도의 간디(Mahatma Gandhi)의 비폭력 항거운동이며,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마르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가 주도한 인종차별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요, 일제의 압제에 대하여 일어난 3.1 구국선조들의 비폭력만세운동이며, 아프리카 남아연방 백인정권의 인종차별 정책에 비폭력적으로 저항한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함축한다.

III. 자기 정체성을 지니신 분

예수는 “나는… 이다”(Έγώ έίμι ego eimi)(나는 길이요, 진리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산 떡이다. 등)라는 독특한 어법을 사용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설교하신다. 그리고 예수는 말씀하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 어법은 모세에게서 찾아 볼 수 없고 역사적 예수에게서만 찾아 볼 수 있는 독특한 어법이다.

심지어 예수는 결정적인 선언을 하신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 예수를 불신하는 유대인들은 이 선언을 신성모독으로 여겨서,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고까지 한다. 이들의 눈에 나사렛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신성모독자요 당시 유대의 율법과 유전을 거슬리는 탈법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정황에서 유대인들은 자칭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를 신성모독자로 보았던 것이다: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요 10:33).

예수는 어느 종교 창시자 스타일과도 부합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의 삶과 사상은 1세기나 그 이후로 현재까지 어떤 사람의 판에 박힌 삶과 사상과도 들어맞지 않으셨다. 예수는 당시의 바리새인, 사두개인, 에세네파(제3철학파), 열심당(제4철학파), 헤롯파, 언약적 율법주의파 등의 고정적인 종파에 자신을 동일시하지 아니하였다. 예수는 바리새인의 사랑과 신뢰 없는 율법 준수를 거부했으며, 내세를 믿지 않고 현세에 영합한 사두개인의 세속주의를 거부했으며, 주어진 세상의 삶의 질서를 거부하고 광야로 도피한 에세네파의 도피주의를 거부했으며, 무력 투쟁을 통하여 로마 제국주의로부터 유다를 해방하고자 했던 열심당원의 무장 봉기를 반대했으며, 메시아의 도래를 막고 세속 권력 유지에만 전력한 헤롯파의 현세주의를 거부하였다. 또한 예수는 율법을 의와 구원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Not getting in”),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언약에 의해 주어진 언약백성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But Staying in”)으로 간주하고 언약 백성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 자들에게 속죄의 제사를 통해 언약백성의 신분을 계속 유지하고자 한 언약적 율법주의파도 거부하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교의 정통규례인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는 신성모독자로서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 5:18). 예수는 자신만의 독특한 유일한 정체성을 가지시고 그 시대의 모든 종교적 파당을 추월(追越)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신 메시야였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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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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