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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터키-쿠르드 분쟁에 대한 이해

사진: Levi Meir Clancy on Unsplash

밖에서 보는 이슬람(24)

터키공화국[i] 안에서는 이미 오래된 분쟁이어서 새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이다. 특별히, 2007년에 터키 전투기와 무장 헬기들이 터키·이라크 국경 지대 쿠르드 반군을 공격했다. 그리고, 곧이어 터키 정부는 북이라크로 숨어들어 간 쿠르드 반군들을 터키 측으로 인계하지 않으면 북이라크 쿠르드 지역에 대한 공습도 불사하겠다고 반(半) 선전포고했다. 이에 북이라크의 쿠르드 지역 지도자인 바르자니(Mesut Barzani)는 그들의 옷 단추 하나라도 터키 측으로 넘겨주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강하게 맞서고 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국의 북이라크 내 쿠르드 민족에게 약속한 자치지역인정에 대해서 터키 정부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주변 아랍 민족과 이란의 입장도 전혀 달갑지 않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줄곧 터키 동부를 중심으로 계속되어 온 쿠르드 반군 활동과 이를 저지하려는 터키군의 끊임없는 노력은 지금의 터키 경제와 정치를 극심한 어려움으로 몰아넣었던 것이 사실이다.

혹자는 터키 측으로서는 터키 땅도 아닌 북이라크 지역에 쿠르드 자치정부를 인정하는 것이 차라리 그동안 터키에서의 모든 쿠르드 분쟁을 종식하는 유일한 길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당시 터키 정부는 쌍수를 들고 반대하며 미국을 압박했다. 지금 중동은 터키의 대 쿠르드 강경책과 미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먹구름이 번져가고 있으며,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또 다른 사태의 위험이 언제든지 발발할 수 있다.

kurdmap
▲ 쿠르드인들이 주로 사는 지역

제2의 팔레스타인 사태

현재 터키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동지역에서의 쿠르드 문제는 제2의 팔레스타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국가 없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남의 나라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랍인으로서 커다란 민족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고, 아랍국가로부터 지원받고 있다는 점에서 쿠르드인들은 아무도 없는 외톨이 민족이다.

쿠르드족은 무슬림들이면서도 민족 간 이질감 때문에 중동의 단 하나의 국가로부터도 보호나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쿠르드족은 스스로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국가에 동화되기보다 분리 독립을 추구하면서 조직적 무장 폭동과 테러에 나서고 있어서 해당 국가의 외면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쿠르드족은 국경을 넘어 외부 지원 세력과 거점을 가지고 있어 국제화의 가능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쿠르드 문제는 중동지역 정세의 최대 불안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 쿠르드 분쟁은 대규모의 인명 피해와 난민 발생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쿠르드 그들은 누구인가?

쿠르드 사람들에게는 ‘산 외에 친구가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20세기 내내 영국, 미국, 이란, 이라크, 터키 등에 이용당하며 살아온 쿠르드인들에게 이것은 그들이 죽음을 피해 산속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처참함 속에서 생긴 말이다.

쿠르드족이 사는 넓은 고원과 산악 지역은 오늘날의 터키 동부를 비롯한 이란 북서부, 이라크 북부 및 시리아 북부와 아르메니아 공화국 일부가 포함된다. 쿠르드족은 성경(창세기 10:2)에 의하면 노아의 아들, 야벳에서 유래되며 그리스사람들이 처음으로 쿠르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쿠르드인들은 인종적으로 이란계 백인이고, 언어적으로는 페르시아에 가장 근접한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며, 그들에게는 하나의 체계화된 문자와 말이 없이 다수가 현 터키공화국에서 살면서 그들의 언어인 쿠르드 만디어를 사용하고 있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메대 바사 왕국 중에서 메대 후손으로 고대 유럽 민족으로서 B.C. 7세기에 페르시아에 흡수되었으며, 10~13세기에는 한때 황제와 국왕에 예속된 군주가 통치하는 공국(公國)들을 만들어 살기도 했으나 19세기 중반에 오스만제국과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다시 흩어졌다.

여러 가지 사회적, 지리적, 정치적인 이유로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란 어렵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약 3천만 명 정도의 쿠르드인들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중 약 천오백만 명 이상이 터키공화국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 외에도 이란, 이라크, 시리아, 쿠웨이트, 레바논, 유럽 전역과 구소련 등에 흩어져 살면서 국가의 형태를 가지지 못한 세계 유일한 종족 공동체로 알려져 왔다.

반복되는 배반의 역사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으로 독립 국가 창설이란 오랜 꿈을 간직해온 쿠르드족에 대한 배반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유엔을 비롯한 세계열강의 쿠르드 결의안들에 대해 쿠르드인들 스스로 강력하게 반발하는 배경에는 강대국들의 농간에 독립 국가 창설이라는 민족적 염원이 중요 순간마다 매번 무산된 ‘배반의 역사’속에서 나라 없는 소수민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픔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쿠르드인들은 1880년대 쿠르드 족장 ‘셰이크 우베이둘라’가 이란을 침공한 대가로 이란 영내 쿠르디스탄에 잠시 민족국가를 설립했지만, 세계 1차 대전 이후에는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소련 등 5개국에 편입되어 통치되었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오스만제국이 무너지면서 독립 국가를 건설할 절호의 기회가 있었으며, 당시 오스만제국 분할을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으로 1920년 세브르 조약에 의해 자치권을 보장받지만, 1923년 로잔 조약에서 터키의 강한 반발과 영국의 이권 쟁취 야욕에 또다시 독립 국가 창설의 꿈이 좌절되었다.

뒤이어, 이라크 내 쿠르드족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 편에 섰다가 화학무기를 동원한 이라크 사담 후세인에 의한 ‘안팔(Anfal)’ 지역 작전으로 수천 명이 숨지는 아픔을 겪었고, 그 뒤 1990년에 일어난 걸프전에서는 미국을 지원했지만 전쟁 이후 당시 미국 정부는 쿠르드족의 공로를 외면했다.

여러 차례의 쓰라린 배신을 당하면서도 쿠르드족은 지난해 이라크 내 독립 국가 실현을 위해 연합군으로 가세했고, 종전 이후 헌법 제정과정에서 자치권 확보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주권 이양을 앞두고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서 이 부분의 명시적 언급이 빠지면서 또다시 배반당하는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터키쿠르드 분쟁의 핵심 원인

첫째, 터키 안에서 강력한 반쿠르드 감정이 생긴 이유는 쿠르드 민족주의 부활 염원에 따른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일련의 폭력적 활동이라고 봐야 한다. 19세기에 들어 서구의 본격적인 침탈에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자 하는 오스만제국의 정책에 대항해 기득권과 민족적 권리를 수호하려는 쿠르드 공국들의 집요하고 조직적인 반란이 계속되었다. 특히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크게 고무되어 쿠르드 민족문제에 대한 국제적 여론과 독립 국가를 위한 외교적 접촉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독립 노력은 세계 1차 대전으로 오스만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와해하면서 더욱 구체화하였다. 결국 1920년 세브르 조약에 의해 아르메니아와 이라크 지역 사이에 있는 산악 지역에 쿠르드 민족국가(쿠르디스탄)를 건설한다는 약속이 있었으나 당시 터키의 영웅 무스타파 케말에 의한 독립전쟁으로 세브르 조약은 시행되지 못한 채 사문화되었다.

1920년 4월 23일 앙카라에서 소집된 ‘터키 대국민의회’는 터키의 합법적인 통치기구인 정부를 구성하고 오스만 정부가 외국 강대국과 체결한 불공정한 조약들의 무효를 선언하였다. 이어서 공화국으로서의 터키의 국제적 지위가 인정된 1923년 로잔 조약에서는 쿠르드인의 권익보장은 고사하고 터키의 강력한 반발로 쿠르드 문제가 언급조차 되지 못했다.

쿠르드인들의 자치적 존재가 무시된 당시의 터키의 공화국 선포와 공화국이 지향하는 비종교적 세속주의는 오랫동안 잠재해 왔던 쿠르드 민족주의라는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즉, 쿠르드족은 1925년에 칼리프제를 폐지한 터키에 대해 더 이상 충성을 바칠 의무를 갖지 않게 되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고유성과 정통성을 회복하려는 민족 분리주의 운동을 통해 민족정체성을 기르기 시작했다.

둘째, 터키공화국의 강력한 국가주의 표방으로 다른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하나의 분쟁 원인으로 꼽아야 한다. 터키 정부가 가지고 있는 쿠르드인들에 대한 기본정책은 ‘쿠르드 정체성의 부정과 터키화’라고 볼 수 있다. 터키의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는 문화적 동화정책으로 자국 내의 모든 인종이 터키어를 사용하도록 하여 쿠르드어 사용을 금지하였다(1991년 걸프 전쟁 이후 쿠르드어 사용이 다시 허용됨).

또한, 터키 내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쿠르드 무장 세력들은 터키의 법질서를 파괴하거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자에게 중형을 명시한다는 형법 제141조, 제142조에 의해 가혹한 처벌을 받아 왔다. 한편 쿠르드 출신 국회의원들이 의회에서 쿠르드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언급함으로써 헌법에 보장된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박탈당하고 국가통합을 저해한 분리주의자로 기소당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당시 터키공화국에서 두 차례나 수상을 역임한 ‘에제빗’은 “터키에는 쿠르드 문제라는 것은 결코 없으며, 오직 터키 동부 문제만 있을 뿐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듯이 소수의 민족주의 문제를 공식화시키지 않겠다는 터키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사실 현재 거의 대다수 쿠르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터키 동부의 문제는 바로 쿠르드 문제이며, 이들은 아직도 공식어인 터키어를 제쳐두고 오로지 쿠르드어를 사용하면서 쿠르드 민속과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쿠르드족이 산재한 지역의 자원을 놓고 강대국의 이권 다툼으로 주변 국가 사이에서의 정치·외교적 세력 다툼(Power Game)이 또한 그것이다. 그동안 영국과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와 인근 아랍국가나 이란 등은 쿠르디스탄 유전지대의 이권 확보와 자국의 안전보장을 위해서라도 터키 내 쿠르드 문제에 깊이 개입해왔다. 그리스, 러시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터키와 이웃하면서 여러 이해관계로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국가들은 암암리에 쿠르드족을 지원하기까지 하면서 터키 정부를 약화하려는 전략을 추구해 온 것도 감추지 못할 사실이다.

3~4천 미터의 산악지대가 갖는 지형적 한계와 목축과 유목 생활에 의존하던 쿠르드인들에게 조직적 정치통합을 통한 독립 국가의 건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력으로 독립이나 자치정부의 수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중앙정부와 이웃 국가와의 연대와 반목에 따라서 ‘완전 복속’과 ‘부족적 자치’라는 약소 민족의 두 선택이 지금까지 반복되어왔다. 결국, 독자적 무장과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외세와 결탁할 수밖에 없는 쿠르드인 정치조직의 특성이 쿠르드족의 통합과 독립을 방해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의 쿠르드 전략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당시 바그다드에서는 미국이 이라크 내 주류세력인 아랍 민족, 특히 이슬람 시아파와의 원만한 관계 형성 없이는 주권 이양 등 향후 정치 일정의 순조로운 전개가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대(對) 쿠르드 전략의 수정이 필요했다. 특히, 시아파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쿠르드 자치 국가’의 건설 지원은 접어두고 자치권 보장 수준의 ‘현상 유지’ 전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처럼 미국의 전략이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자 쿠르드족들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통과를 계기로 발끈하고 나섰다. 당시 임시정부에 참여한 쿠르드족 출신 각료들은 “유엔 결의안 때문에 쿠르드족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라고 비판하고 있고, 일부는 각료 직 사퇴 의사까지 밝히고 있다.

이러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내용을 둘러싼 쿠르드족과 아랍 민족 간 갈등은 주권 이양을 시작으로 총선, 과도정부 수립, 헌법제정, 국민투표, 주권 정부 출범 등 계속된 주요 정치 일정마다 핵심 쟁점으로 부상해 왔다. 특히, 안보리 결의안 파동은 시작에 불과하며 쿠르드족의 자치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당시 6.30 주권 이양을 시작으로 더욱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터키쿠르드 분쟁의 전망

현재 쿠르드족은 어느 한 국가 또는 지역에 거주하지 않고 여러 국가에서 집단적 난민촌을 형성해 살아가고 있으며, 그중 가장 많은 쿠르드인이 현재 터키의 동부와 국경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그들은 소수민족으로서 터키공화국에 동화되기보다 분리 독립을 추구하고 있기에 끊임없이 압제와 박해를 받을 처지이다.

이처럼 터키 정부와 쿠르드족은 근원적으로 대립 구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쿠르드족이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터키 내에 동화되어 살지 않는 한, 그로 인한 분쟁은 해결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쿠르드족은 팔레스타인인들과는 달리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동지역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도 그 문제가 내정간섭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지원 외에는 달리 지원해 줄 방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쿠르드 문제는 터키를 비롯한 주변 여러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나 터키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마다 정치적 상황과 쿠르드족에 대한 노선과 정책이 각각 다르다는 점 때문에라도 그 해결 방안을 찾기는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2의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번져버린 쿠르드 분쟁은 하루빨리 종식되어야만 한다. 유엔 같은 공신력 있는 국제단체를 통한 인도적이고 비정치적인 적극적인 평화 활동이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하며, 이 지역에서의 전쟁과 살인을 막아 내는 데 적극 힘을 합쳐야 한다.

왜냐하면, 지구촌 내 모든 전쟁과 평화는 이제 우리 모두를 관련 짓게 만드는 상생 공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먼 남의 나라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되며 중동평화가 곧 한반도의 평화와도 직결될 수 있다는 거시적이고도 미래지향적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i] 2022년 6월부터 국명이 정식으로 ‘튀르키예(Türkiye)’로 바뀌었다. 본 칼럼에서는 ‘터키’로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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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졸업, 전,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현, 터키어권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M-NET KOREA) 회장, 저널 ‘전방개척선교(KJFM)’ 편집인, 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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