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호 /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복음에 대한 두 반응 (6)
눈에 보이는 어떤 현실보다 더욱 현실인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곳은 주님의 교회요, 우리 심령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이 심령에 실제라면 누구도 함구할 수 없는 변화와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타나야 한다. 이 어마어마한 복음의 영광과 능력과 축복이 내 삶에 과연 실제인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1~4)
하나님과 분리된 채로 저주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하셨다.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죄 없으신 당신의 아들을 나 같은 죄인의 모양으로 보내어 내가 받아야 할 심판 자리에 예수님을 내 이름표 달게 해서 심판을 집행하셨다. 갈보리 언덕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내 운명을 끝장내셨다. 울어도 몸부림쳐도 안되던 인류의 근원적인 숙제를 끝장내시고 내 인생의 슬픔과 저주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하셨다. 아멘! 그리고 주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말은 내가 이제 부활하신 예수의 새 생명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내가 아니요,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가시는 신비한 연합을 믿음으로 순종할 때 날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영광을 경험하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심령이 가난하고 목마른 자가 애통한 심령으로 절망 가운데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나 자신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를 때는 몰라서 망할 짓 하더니, 율법을 알고도 나는 내 마음을 스스로 다룰 수가 없고 말씀대로 살아지지 않아 죽을 것 같습니다. 오 하나님, 어찌 합니까?’하고 탄식 가운데 털썩 주저앉을 때 귀로만 들었던 주님이 생명으로 들어오신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가난하고 목 마른, 실패하고 완전히 깨어진 심령에는 구명줄을 잡듯 십자가 부활의 복음이 생명으로 받아져서 인생이 훌렁 뒤집히게 된다.
예수님을 만나 동행하며 살아온 40여 년 동안 ‘복음의 실제’는 내게 하나의 주제였다. 아무 쓸모없던 나는 멸망 제1순위였다. 전혀 가능성이 없고 내 자신을 포기한 채로 자학증에 시달리던 내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찾아오셨던 그 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평생 그 감격만으로도 감격하다 죽을 만큼, 요한복음 3장 16절은 내 생명의 고백이 되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018년 6월)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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