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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알라’와 우리 하나님

사진: pixabay

밖에서 보는 이슬람(23)

무슬림들이 가진 알라에 대한 이해

무슬림들은 7가지 원리를 가지고 그들의 신(알라)을 이해한다. ①생명: 알라의 존재는 시작도 끝도 없다. 그는 무슨 일이 발생하든 이익도 손해도 보지 않는다. ②지식: 알라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을 안다. 그는 망각하지 않고, 소홀히 여기지 않고 실수가 없다. ③능력: 알라는 전능하다. 그가 원하면 돌이나 나무도 말하게 한다. 그 능력은 영원하다. ④의지: 알라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는 행동할 필요가 없으며, 선과 악은 그의 의지로 존재한다. 누군가 믿음이 좋거나 없으면 그것은 알라의 뜻이다. ⑤들음: 알라는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든 소리를 듣는다. ⑥봄: 알라는 모든 것을 보는데, 심지어 검은 고양이가 밤중에 검은 돌 위에서 걸어가는 발자국까지 볼 수 있다. ⑦말함: 알라는 혀 없이 말한다.

무슬림들이 가진 알라의 유일성

본 칼럼을 통해 계속해서 언급되는 내용이지만, 무슬림들이 가진 이슬람 신학은 6신(六信) 5행(五行)으로 요약된다. 무슬림들은 평생 여섯 가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며, 다섯 가지 규범을 삶에서 지키며 살아간다. 이 다섯 가지 삶의 규범 중 첫째가 ‘신앙 고백(샤하다)’인데, 여기에는 무슬림들이 가진 알라의 유일성이 드러난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자이다.”. 이 신앙 고백은 모든 규범보다 우선하며, 심지어, 이 고백 하나로도 무슬림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알라’의 유일성은 무슬림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꾸란에서는 ‘알라’는 한 분이며, 모든 것이 그에게 의존하며, 그는 나지도 않고, 낳지도 않으며 그와 같은 이가 없다고 말하라고 기록하고 있다(꾸란 112:1~4). 알라와 다른 신들과 교제가 있다는 것은 무슬림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이다. “알라는 그와 같은 자리에 있는 동반자를 절대 용서치 않는다. 그가 기뻐하는 자는 모두 용서한다. 누구든지 알라와 동반자를 만드는 자는 진실로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꾸란 4:48).

이슬람에서 말하는 알라의 위대성은 무슬림들이 늘 외치는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아크바르(Akbar)’라는 말이며, ‘알라’는 위대하다는 아랍어이다. 무슬림들은 이것을 끊임없이 말하며 살아가는데, 이는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알라는 위대하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사 인간의 마음속에 속삭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인간의 목에 있는 혈관보다 내가 더 인간에게 가까이 있노라(꾸란 50:16).

또한, 이 말은 무슬림들 사이에서 어떤 말보다도 더 많이 고백한다. 무슬림들은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수없이 많이 사용한다. 전쟁 시에는 고함으로, 아기가 태어났을 때 기쁨의 표현으로, 장례식 때 끊임없이 부르는 애도가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이 고백을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와서 하는 무슬림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데는 의문이 든다.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알라의 초월성

무슬림들이 말하는 알라의 초월성은 본질적으로 전적인 타자이며, 인간을 포함한 그의 피조물과 전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피조물을 향한 알라의 자비도 재판관으로서 그의 위엄을 부각하기 위함이다. 알라가 인간과 개인적 접촉을 한다는 것은 알라의 초월성을 위협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처럼, 무슬림들이 알라를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알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알라를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는 의미 속에는 어머니의 존재뿐만 아니라 아들과 딸의 개념도 함께 수반하는 것으로 본다. 알라가 인격적인 존재라는 말은 알라가 인간과 닮았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무슬림들은 이를 거부하며 살아간다.

무슬림들이 생각하는 ‘알라’의 요약

아래 간략한 도표를 통해서도 이해할 수 있듯이 무슬림들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 사이에는 매우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이슬람의 알라기독교의 하나님
– 단일신– 삼위일체의 유일신(마 28:19)
– 인간과의 교제가 없으며 접근 불가의 신–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마 1:23)
– 전지전능의 신– 전지전능의 아버지
– 복종을 강요하는 신– 순종을 요구하는 하나님(삼상 15:22)
– 두려움의 신– 사랑의 하나님(요일 4:8)
– 오직 충성을 요구하는 신– 간구에 응답하는 하나님(렘 33:3)
– 오직 찬양만 받는 신– 인간을 향해 탄식하고 애원하시는 하나님(렘 3:22)

이슬람의 알라에게도 사랑이 있나?

위와 같은 도표를 본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의 ‘알라’한테는 사랑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슬람 안에는 ‘알라’의 속성을 99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중 47번째에서 ‘애정을 가진 자’라고 말한다. 꾸란 안에서도 “너희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그분께 회개하라. 실로 나의 주님은 자비와 사랑으로 충만하심이라”(꾸란 11:90)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속성 중 가장 중요한 이 ‘사랑’이 이슬람의 ‘알라’한테도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위와 같이 꾸란에서 얘기하는 사랑이나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알라의 속성 중 ‘애정을 가진 자’라는 아랍어 표현에서처럼, ‘애정’이라는 단어는 아랍어로 ‘와두드(Al-Wadud)’라고 하는데, 아랍 문화권에서는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는 일반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아랍어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얘기할 때는 ‘마합바(Mahabba)’라는 다른 아랍어 단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4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말씀에서 사랑은, 무슬림들이 알라의 속성을 말할 때 사용하는 ‘와두드’가 아니라 ‘마합바’이다. 물론, 무슬림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사랑인 ‘마합바’를 물어본다면,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와 같이 대답하지 못하겠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깊은 정서’ 정도로는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알라가 겉으로 보기에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비슷한 사랑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로 희생시킨 우리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과는 거리가 멀고, 전혀 다른 개념이다. [복음기도신문]  

김종일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졸업, 전,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현, 터키어권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M-NET KOREA) 회장, 저널 ‘전방개척선교(KJFM)’ 편집인, 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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