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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기독교 앞에 놓인 가장 어려운 질문들

사진: Matt Walsh on Unsplash

아래 인용한 글들은 레베카 맥클러플린의 기독교가 직면한 12가지 질문(Confronting Christianity: 12 Hard Questions for the World’s Largest Religion)에서 특별히 내 눈을 사로잡은 것들이다_맷 스미서스트.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비종교인으로 자란 미국인 중 40퍼센트가 성인이 되어서 종교인(보통은 기독교인)이 되지만, 개신교 교인으로 자란 사람 중에서는 20퍼센트만 비종교인이 된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내가 나중에 비종교인이 될 아이 한 명을 기르는 동안, 내 친구 중에 종교가 없는 친구들은 나중에 기독교인이 될 아이를 두 명 기를 듯하다.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지닌 종교적 신념은 자동차 범퍼 스티커에서 자주 보는 ‘공존’이라는 개념에 수월하게 들어맞는 그런 것이 아니다. 북미에서 순수한 기독교가 신학적 자유주의 신앙보다 번성하는 것은 일정 부분 이민자 신자들 덕분이다. … 다음 세대에 물어야 할 질문은 “종교가 얼마나 빨리 소멸할 것이냐”가 아니라 “기독교냐, 이슬람이냐?”이다. (13, 15)

물론 우리는 신문을 펼쳐 보기만 해도 종교 신앙이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종교가 당신에게 해롭다고 말하는 것은, 코카인을 생명을 구하는 약과 구별하지 않고서 “약은 당신에게 해롭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통은 종교 활동이 건강과 행복에 유익해 보인다. 이 자료를 뒤집어 보면, 미국의 세속화 경향은 곧 보건의 위기다. (24)

기독교가 서양 문명을 독차지한 반면에, 서양 문명은 한 번도 기독교를 독차지한 적이 없다. 사실상 기독교를 ‘서양적’이라고 일컫는다면, 문자 해득(literacy)을 ‘서양적’이라고 일컫는 것과 마찬가지다. … 기독교가 다양성을 반대하는, 서구 백인의 특권 종교라는 생각은 신약 성경과는 전혀 양립할 수 없다. (43, 45)

신약 성경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성경적 기독교를 백인 중심적 국가주의와 결합시키려는 것은 고양이를 쥐와 결혼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하나가 상대를 사냥하게 되어 있지, 짝이 되지는 않는다. (58)

다양성에 신경을 쓴다면 기독교를 외면하지 말라. 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다민족적이며 다문화적 운동이다. (60)

의견 차이는 존중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니다. 사실 내가 무척이나 존중하는 사람들과 아주 열띠게 토론하는 까닭은, 그러한 이들의 생각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는 친구 간 토론의 기술이 사라지고 있는 듯하며, 대신에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고 있다. … 우리가 다양성에 대해 피상적인 다짐 이상을 하려면, 우리와 완전히 의견이 다르지만 현명한 사람들과 깊이 사귀어야 한다. (65, 66)

일부 종교는 서로 일치시키기가 가능할지 몰라도, 기독교는 엉뚱한 세트에서 나온 퍼즐 조각 같아서, 가장자리를 아무리 구부려도 맞지 않는다. (76)

십자가에서, 이제껏 살았던 사람들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끔찍한 죽음을, 힘없는 자들을 위해 달게 받으셨다. 기독교는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폭력을 수치스럽게 한다. (131)

종교가 폭력의 원인인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수백만 명이 신앙에 이끌려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섬긴다. 그리고 특히 기독교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거름 역할을, 정의를 위해서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치유를 위해서 권한을 위임받는 역할을 해왔다. 기독교가 없다면 세상에 폭력이 더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면, 사실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32)

합리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과학적 진취성의 최초이자 최고인 토대가 나온다. … 무신론은 윤리적 신념의 기반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정당성도 입증하지 못한다. (157, 159)

에베소서 5장은 결혼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의 근거를 성별 심리학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에 둔다. … 결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여성에 대한 남성 우월주의나 학대나 폄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를 전혀 본 적이 없는 것이다. (206, 209)

처음 기독교인들은 [그 당시 나는 사도행전을 읽고 있었다] 온갖 고난에 처하고 돌에 맞아 죽기도 했지만, 그들이 맞닥뜨리지 않은 싸움이 하나 있었다. 바로 고독이었다. 우리가 기독교 공동체를 성적 관계나 핵가족으로 축소해 버린다면, 성경의 윤리를 전혀 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234)

우리가 깨어진 죄인으로 오지 않는다면 성경을 읽을 수 없고,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심지어 정죄받기까지 한다. 깨어진 죄인으로 온다면, 다정한 포옹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성적인 죄를 무섭게 정죄하시는 반면, 성적인 죄를 짓고서 회개한 죄인들은 마찬가지로 놀랍게 시종일관 환대하신다. (243)

현대 서구 사회는 내게 가르치기를, 진짜 자아를 찾는 일을 가장 우선시하라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양파껍질 같은 내 정체성을 벗겨 내고 거기에서 발견한 것에서 떠나 살아가라고 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면, 내가 하나님과 관련하여 누구인지가 내 진짜 자아이다. 나는 내 심리 깊숙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자아를 발견한다. 그분이 우리를 ‘자녀’, ‘사랑하는 자’, ‘친구’라고 부르실 때,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이며, (남자와 여자,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와 친구와 같은) 다른 모든 정체성은 거기에서 흘러나온다. (254)

부활할 때, 성적 만족감보다 예수를 선택한 이들 중에 아무도 누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 관계에 비하면 인간의 결혼은 테슬라 옆에 있는 장난감 자동차처럼, 또는 연인의 포옹이 아닌 편지 봉투에 하는 키스처럼 보일 것이다. (256)

신약은 포셔가 안토니오의 죽음을 반대하던 방식으로, 즉 노예제도를 완전히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노예제를 반대한다. 예수께서는 노예의 역할 안에 거하셨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일컫고, 도망 노예를 자기 심장처럼 사랑하며, 노예와 자유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신약은 우월성이나 착취나 강제의 여지 없이 그저 형제애와 공통 정체성만으로 구조적인 긴장을 만들어 냈으며, 그 긴장이 마침내 노예제 폐지에서 화산처럼 분출되었다. (270-271)

우리가 기독교를 백인 노예 소유자와 관련짓기를 그만두고 수세기 내내 울려 퍼진 흑인 신자들의 피 묻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세대의 신실한 흑인 신자들이 미국에 있어야 하는가? (285)

우리가 고통에 대해 늘 던져야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이 고통이 무슨 가치가 있을 수 있을까? 당혹스럽게도 예수께서 주장하신 말씀에 따르면, 그분이 그 가치다. (298)

고통은 기독교 신앙에 골칫거리가 아니다. 고통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 삶에 꿰매 넣는 실이다. (306)

예수가 생명의 떡이며, 예수를 잃으면 굶어 죽는다는 뜻이다. 예수가 세상의 빛이라면, 예수를 잃으면 어둠이라는 뜻이다. 예수가 선한 목자라면, 예수를 잃으면 홀로 헤매다가 실종된다는 뜻이다. 예수가 부활이요 생명이라면, 예수를 잃으면 영원한 죽음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희생당하셨다면, 예수를 잃으면 그 대가를 우리가 치른다는 뜻이다. (325-326)

예수의 세계에는 과학 진리와 도덕 간 결합 조직이 있다. 인간은 모두 동등하게 창조되었다고 말할 근거와, 다양성을 넘어 사랑하라는 나직한 부르심이 있다. 악을 일컫는 이름이 있고, 용서의 방법이 있다. 현재 우리 마음이 품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깊은 사랑의 모습이 있고, 우리의 연약한 몸이 지금껏 경험할 수 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진정한 친밀이 있다. 죄로 가득 차 있지만 은혜로 속량할 수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단이 있다. 가난하고 압제당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돌보라는 명령이 있는데, 그 명령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생겨났으며 그 바탕에는 언젠가 모든 눈물이 닦이고, 모든 배가 채워지며, 모든 버림받은 사람이 받아들여지리라는 소망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번지르르한 대답이나 쉬운 길은 없다. 그 대신 와서 죽으라는 명령이 있다. (331) [복음기도신문]

맷 스미서스트(Matt Smethurst · Rebecca McLaughlin), 레베카 맥클러플린(Rebecca McLaughlin) | 맷 스미서스트는 리치먼드에 있는 River City Baptist Church 대표 목사, The Gospel Coalition 에디터, Before You Share Your Faith: Five Ways to Be Evangelism Ready(2022), Deacons: How They Serve and Strengthen the Church (2021), Before You Open Your Bible: Nine Heart Postures for Approaching God’s Word (2019), 1-2 Thessalonians: A 12-Week Study(2017) 등의 저자이다.

레베카 맥클러플린은 런던 Oak Hill Seminary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Cambridge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TGC 정기 기고자이며, The Secular Creed: Engaging Five Contemporary Claims(TGC, 2021), 기독교가 직면한 12가지 질문(죠이북스 역간) 등의 저자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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