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대한 두 반응 (5)
하나님 나라는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 발견한 사람의 인생 전부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하다. 내 삶이 복음에 실제로 부딪혔다면 주변 사람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응하게 된다. 나에게만 특별한 복음이 주어진 게 아니라 복음의 비밀,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전부가 뒤집힐 만한 사건이 하나님 나라 복음이기에 복음을 만났다고 하면서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은 복음을 만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찾아다니다가 세상에 하나뿐인 진주를 만난 장사꾼 비유를 하셨다. 가치를 안다면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사는 것이다. 천국 복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발견하면 다 팔아다가 ‘그것’을 산다.
또한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바다 그물에 비유하셨다. 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은 후 좋은 고기, 나쁜 고기를 구별해 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복음은 모두를 향해 열려 있고 주님은 악인과 선인을 구분하지 않고 햇빛과 비를 주시지만 훗날에 반드시 심판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특성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나라의 ‘실제’다. 우리 심령 깊이 주의 말씀이, 그 나라가 임할 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압도적인 능력으로 삶을 변화시킨다.
국가를 이루는 3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다. 하나님 나라는 주권이 왕이신 하나님께 있고 우리가 백성이며 영토는 우리 심령이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예수님의 일성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심령에 임한다.
물론 우리가 가야 할 영원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다. 그러나 그 나라에 이르기 전 이 땅에서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다. 하나님의 통치가 천국의 영토인 우리 심령에 임하면 저주와 사망의 법으로 우리를 끌고 다니며 옛 자아에 종노릇시키던 심령에서 악한 자가 쫓겨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시킨다. 슬픔과 저주, 비극과 아픔이 사라지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아름다움, 성령의 다스림, 의와 화평과 희락이 우리 심령을 차지한다. 우리가 어떤 상황과 처지에 있든지 주님의 나라를 누리며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주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는 주님이 머리가 되셔서 통치하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교회, ‘에클레시아’다. 이 땅을 디디고 살지만 하늘에 속한 주의 백성으로 아직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는 자들을 주님의 나라로 건져오는 하나님 나라의 지점이 바로 우리의 심령이다.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 이다. 이 메시지가 진정으로 믿어지면 완전한 존재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겉모양은 예수쟁이이고 직분도 받았는데 심령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복음을 오해하거나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복음을 알아듣도록 주님께서 영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심령을 옥토같이 만드셔서 주님의 나라가 겨자씨처럼 그 안에 임하여 그 삶을 바꿔주시길 구하는 것이다. 나를 변화시킬 수 없는 복음은 더 이상 내게 복음이 아니다. 나를 움직일 수 없는 믿음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2018년 6월) <계속> [복음기도신문]
269호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김용의 선교사
(순회선교사. LOG미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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