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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세클라스떼산,“하나님으로부터 젖혀지다”

로마서 11장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구원과 이방인의 구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유대인이 젖혀지고 오히려 택함을 받지 않은 이방인이 택함을 받는 사건을, 가지가 꺾인 감람나무 즉 돌 감람나무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로마서 11장 2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음으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사도 바울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였다’고 말한다. 헬라어로 ‘꺾였다’는 의미의 ‘ἐξεκλάσθησαν (엑세클라스떼산)’은 ‘ἐκ(에크)’와 ‘κλάω(클라오)’의 합성어이다. 이 단어의 의미는 ‘~로부터 잘려지다(from, be broken off)’, 즉 ‘하나님으로부터 젖혀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헬라어 단어를 보고 있노라니 우리말 성경이 참 재미있게 번역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헬라어 ‘ἐκ(에크)+κλάω(클라오)’란 표현을 한글의 언어유희로 소리를 빨리 내면, ‘엑(ἐκ)’, ‘칼로(κλάω)’, ‘에크 칼로’라고 발음되면서 확 그냥 잘라버리는 모습이 연상이 되기 때문이다. 불신앙으로 인해 칼로 잘린 모양새가 그리 좋을 리 없다.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에크 칼로(ἐκκλάω)’ 쳐버리신다. 그래서 관건은 믿음이다. 이것은 또 복음의 문제이다.

뒤로 돌아서서 불신앙으로 이리저리 계산하는 자는 복음으로 서 있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다.

18세기,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일컫는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다음과 같은 외마디로 영혼들을 향해 도전적인 메시지를 외쳤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큰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너무 귀한 도전이다. 이 명언이 나오게 된 배경을 보면 정말 우리 하나님이 한 영혼 안에 임하셔서 일하시는 그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 엿볼 수 있다.

윌리엄 캐리는 영국 침례교회에서 늦게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볼품없는 외모로 설교를 그렇게 썩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목사가 되기 전 자신의 불우한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구두를 수선하면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독어와 불어까지 독파하며, 열방을 향한 열정을 품었다.

드디어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이사야 54장 2절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라는 약속의 말씀을 강조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큰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한 마디로, 쪼잔하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말로만 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가 주장한 말씀을 체험하고 누렸다. 그는 성경을 벵골어(Bengali)와 산스크리트어(Sanskrit–고대 인도어), 그리고 인도의 여러 방언들로 번역해 인도의 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시도하고 성취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실제된 사람의 모본이다.

이런 사람이 되려면 말씀을 골똘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윌리엄 캐리 같은 축복의 통로, 복음의 사람이 되려면 성경이 기록된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대한 이해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 한다. [복음기도신문]

김명호 교수(복음기도신학연구소)

필자는 이스라엘에서 구약을 전공하며 히브리어가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언어임을 깨닫고 현재 성경언어학교를 통해 믿음의 세대를 세우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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