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전 하나님의 계획에서 이미 실재인 나의 원형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실재이다. 이 실재가 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믿음’밖에 없다.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만 우리는 ‘나의 원형’이 갖는 축복을 누릴 수 있다.
진리가 중요한 만큼 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믿음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완전한 복음은 오직 온전한 믿음으로만 실재가 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취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하여 이렇게 권면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고후 13:5)”
그래서 진리가 결론이 되게 하는데 까지 이르도록, 실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 13:8)”
먼저, 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은 완전한 복음이다. 창세전에 완벽하게 예비하신 복음이기에 그렇다. 이 복음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고, 실재가 되지 못한 이유가 뭘까? 복음의 내용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다.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도대체 무엇인가?
우선, 믿음에 대한 개념 정리와 원리를 이해하기 전에, 정말 알아야할 것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 즉 기적(=원형의 삶, 축복을 누리는 삶)과 믿음이 중요한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을 선포한 복음서 기자들 중 서두에 ‘복음’ 선포로 시작한(막 1:1) 마가는 다른 공관복음서 기자들과는 달랐다. 원형의 삶(기적=치유기사)을 길게 서술하여 그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거기서 교훈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시는, 기적과 믿음의 상관관계다.
우리의 믿음이 실재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자, 마가복음 6장1-6절을 살펴보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받는 사람과의 관계와중요한 관련이 있다. “거기서는 아무 권능(work of power)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5-6)”
우리가 말씀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넋을 놓고 있는 것은 주님께 합당치 않다. 그렇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불신앙은, 전적으로 그 분을 의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또 예수님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행하실 수 없도록 만든다.
그와는 반대로 전적인 신뢰는,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여기서 우리가 사용하는 ‘믿음’이란 신학용어나 교리적인 명제가 아니다. 사랑하는 자기 자녀의 절박한 필요를 채워주는 예수님의 능력을 어린아이처럼 신뢰하는 믿음(단순성)을 의미한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믿음말이다. [복음기도신문]
김명호 교수(복음기도신학연구소)
필자는 이스라엘에서 구약을 전공하며 히브리어가 하나님의 마음을 담은 언어임을 깨닫고 현재 성경언어학교를 통해 믿음의 세대를 세우는 일에 전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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