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의 목사 (유평교회)
경기도 용인의 남단에 위치한 봉명리에 위치한 유평교회. 아담하지만 시골교회라고 하기에는 다소 규모를 갖춘 전원의 목가적 풍경을 가졌다. 교회 뒤편의 넓은 잔디도 교인들이 야외활동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아보였다. 이 교회를 찾게된 데는 인터넷 복음기도신문에 격일로 게재되는 그레이스투코리아의 고정 필진으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탁월한 성경적 지식과 따뜻하지만 복음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 조정의 목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함이었다.
– 교회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네요.
“이곳 옆 마을이 유평마을입니다. 1965년 무렵 이곳에 복음이 전해졌어요. 미국에서 온 매카피 선교사가 선교의 터전을 위한 목장을 세우고 복음을 전했는데,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생겼어요.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게 유평교회의 첫 시작이에요. 지금 교회 건물은 3번째로 이사 오면서 지어진 것이죠. 예수를 믿고 모인 분들 중에 어떤 분은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목자가 되기도 하셨는데, 그 중에 한 분이 교회에 정착해 주로 사역을 하게 되시면서 35년을 사역하셨어요. 그 분이 제 아버지세요.”
– 선교의 씨앗이 열매가 된 교회군요. 아버지를 이어 목회자가 되셨군요.
“저는 시골 교회에서 가난하게 살다보니 목회는 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대학교 때쯤 교사를 하려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까 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쳐 주려고 교사를 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어요. 최종 목적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었는데, 그게 바로 목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소명을 받고 목회를 하기로 했죠. 그렇다고 목사가 그냥 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교회에서는 그동안 다음세대를 준비해야한다는 말씀을 계속 해오셨어요. 아버지 세대의 두 분의 목사님이 계셨는데(조성훈, 염창훈 목사님), ‘우리는 곧 그만둔다. 우리가 그만두면 후임을 30대를 세울 것이다. 밖에서 초빙하지 말고 교회를 잘 알고 성도들과 같이 자란 사람 중에 성경적인 은사가 있고 자격이 갖춰진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게 더 좋지 않겠냐. 3명을 세우자.’고 하셨어요.”
교회가 기도하고 다음세대 목회자를 세우다
– 네. 이미 다음세대 리더를 준비해오셨군요.
“후임자들이 신학을 해야 했기 때문에 미국 마스터스 신학교에 가기로 하고, 먼저 영어공부 부터 교회에서 시작했어요. 외국에 계셨던 한 부부를 초대해서 2년 동안 영어를 배웠어요. 처음에는 많은 청년들이 영어를 배우러 왔는데, 마지막에는 저를 포함해 3명이 남았어요. 결국 그 3명이 신학을 하기로 하고, 이병권 목사님은 여러 사정 때문에 한국에서 신학을 하기로 하고 저와 7살부터 친구였던 최종혁 목사님과 함께 미국에 가게됐어요.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2년 정도 인턴으로 교회를 섬기다가 두 분 목사님들이 은퇴하시고 우리가 교회를 섬기게 됐어요.”
– 놀랍군요. 교회가 후보자를 기도하고 결정하고 그를 영적인 지도자로 세운다는 것. 그게 바람직한 성경적인 원리에 따른 목회자를 결정하는 것 아니겠어요?
“아버지가 목회를 하실 때, 먼저 신학을 공부하신 게 아니라, 목회자가 된 이후 필요 때문에 미국 엠마오 성경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셨어요. 목회를 하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끼신 거죠. 그래서 다음세대는 반드시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아버지는 존 맥아더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서울에서 100개씩 구해서 복사해서 들으셨어요. 영어를 잘하셨거든요. 그러다 로잔 컨퍼런스에 초청을 받아서 가셨는데, 그곳에서 교파가 다르고 인종도 다른데 복음은 다 똑같다는 것을 보게 되면서 보는 것이 열렸다고 해요. 이후 한인교회에 초청을 받아서 미국에 가셨다가, 존 맥아더 목사님 교회에 가보게 되면서, 거기에 마스터스 신학교가 있는 것을 보시고는 다음세대를 세우면 무조건 여기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그렇게 우리가 거기서 공부를 하고 오게 된 것이죠.”
– 그렇군요.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게 어떤 유익이 있으셨나요?
“아버지가 교리적으로 아주 깊이 있게 가르치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공부하면서 보니 기존에 배웠던 것과 다른 것은 없었어요. 아버지도 성경적인 것을 추구하셨고, 크게 다르지 않게 교회를 이끌어 오셨다는 것을 보게 됐죠. 은퇴하실 때도 활동하실 수 있는 나이였어요. 그러나 늘 말씀하시던 것이 현재 목회자 보다 20년 어린 사람을 세울 거라고 하셨고, 비슷한 세대를 세우면 비슷하게 가기 때문에, 다음세대를 인도할 사람은 다음세대여야 한다고 하셔서 일부러 어린 사람을 세우신 거예요. 이들이 이끌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하신다고 하시면서 일찍 그만두셨어요.”
– 들어볼수록 훌륭한 선배님들이시네요. 그 뒤를 이어받은 목회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선배님들은 교회에 무슨 일 있으면 간섭하지 않고 너희가 결정하라고 하세요. 아버지는 35년 동안 30분 정도 설교를 해 오셨어요. 여기가 시골이라 하루 종일 농사일 하고 저녁 집회를 오시기 때문에 설교를 50분씩 듣기가 너무 피곤한 거예요. 그러니까 핵심만 전달하자 생각하고 해오셨는데, 저희는 존맥아더 목사님한테 배워왔잖아요. 처음에 와서 무조건 55분 해야 된다고 생각했죠. 본문을 충분히 설명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30분 설교를 들었던 분들이 갑자기 저희 설교를 들으니까 힘들잖아요.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한번은 원로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요즘 아내가 몸에 좋다고 잡곡밥을 먹는다. 그러나 소화는 잘 안 된다. 그동안 30년 우리가 설교한 쌀밥에 적응됐지만, 지금 먹는 잡곡밥이 훨씬 건강한 것이다. 적응을 하셔야 된다.”고 하셨어요. 겸손하게 성도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셔서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큰 힘이 돼요. 사실 목회를 은퇴하고 같은 교회에 남아있는 게 정말 힘들거든요. 그런데 지지해주셔서 힘 있게 잘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기간에도 교인은 증가해
– 네 한국교회에서 정말 보기 드문 리더십 교체 이야기네요. 요즘 교회 상황도 궁금하네요. 코로나 이후 교인들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코로나 기간 동안에 저희는 성도가 오히려 늘었어요. 지금은 20% 정도가 안 나오는 상황이지만, 매주 260명 정도가 예배에 참석하세요. 최근에 교회에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이분들이 필요로 하는 게 영적인 양식이었어요. 봉사활동이 정해져 있고, 자기 구역에 따라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교회 생활이 매우 바쁜 거예요. 그런데 정작 복음을 들을 기회는 별로 없어요. 주일 설교도 복음을 계속 강조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니까 성도들도 복음에 대한 이해가 잘 안 돼있더군요. ‘하나님을 언제 만나셨냐?’고 물으면 신비적인 한 번의 경험이나 부흥회 가서 뜨겁게 체험했던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도 알고 복음도 알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진짜 복음이 뭔지, 거듭난다는 게 뭔지를 잘 모르는 분들을 보면서 안타까웠어요. 어떤 면에서는 예배당에 사람은 많은데 교회는 없는 거죠. 교회 만 개 문을 닫은 게 아쉽지만,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진리대로 살아있는 교회를 살리시고, 그렇지 않은 교회는 사라지게 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예전에 사스와 메르스가 돌았을 때 병원에 입원할 일이 있어서 갔는데 병원이 너무 한산한 거예요. 병원 근무자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진짜 치명적인 질병이 도니까 나이롱환자들이 집에 갔다는 거예요. 교회도 환난이 있던지 유혹이 있던지 하면 나이롱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지금 교회는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들만 남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 주님을 언제 만나셨는지 개인적인 신앙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교회에서만 자랐어요. 성경에 대해 특별히 부정하는 게 없었죠. 초등학교 때 선조를 적어오라는 숙제에 ‘조아담’이라고 적었어요. 진짜 아담이 선조라고 믿었던 거죠. 성경에서 내가 죄인이라고 하면 믿었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복음이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서 알고만 있는 건지, 진짜 믿는 건지 헷갈렸어요. 그러다 믿어지는 계기가 왔어요. 복음 집회가 있었는데, 어른들은 메시지를 듣고 저는 아이들 케어해주는 곳에서 있었어요.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이런 고민을 이야기하니까 ‘엄마가 시장 가서 과자를 사올게 하면, 엄마가 돌아왔을 때 장바구니 열고 과자를 찾겠냐, 아니면 사왔겠어라고 생각하겠냐.’고 묻는 거예요. ‘당연히 달려가서 찾겠다.’고 하니까 ‘그런 게 믿음’이라고 이야기 해주셨는데, 그때 ‘이게 믿음이구나.’를 깨달았던 거 같아요. 믿음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이 깨달아지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구원에 대한 것도 사실이고, 이것 역시 믿는 것이란 사실이 깨달아졌어요.”
모태신앙인에게 이방인처럼 복음 전하면 어려워
– 그런 믿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나요?
“흔들린 적이 많았죠. 주님께서 오시면 휴거된다는 걸 믿으니까 집에 왔는데 부모님 안계시면 ‘휴거되고 나만 남았구나.’ 하면서 불안해하고 친구 집에 전화해서 ‘너네 부모님도 안 계시니?’ 물어보고 그랬죠. 자라면서 중고등학교 사춘기 지나면서는 저의 악함도 많이 보게 됐어요. 많이 의심도 하고 그랬지만,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는 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주님만 바라보면서 살아오게 하셨어요. 지금 한국에 교회 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많잖아요. 그들은 이방인처럼 복음을 전하면 안 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이미 웬만큼은 아니까 오히려 유대인처럼 전해야 돼요. 이들은 강사가 와서 자기가 죄짓다가 구원받은 이야기를 전하면 안통하죠. 그래서 제 사례가 이들에게 도움이 많이 됐던 거 같아요”
– 신학을 하는 과정을 통해 주님이 주신 은혜가 어떤 게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을 섬기고 싶어서 공부하러 간 거였어요. 공부하면서 느낀 건 그냥 사람이 좋고 사람 섬기는 게 좋으면 꼭 목사를 안 해도 되는 거예요. 목사 일을 한다면 결국 진리를 가지고 사랑하는 거라는 결론이 내려졌어요. 진리로 목양을 하는 게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서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가 3명을 공부시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교회가 매달 모인 헌금을 박박 긁어야만 겨우 학비가 되는 거예요. 교회 주방에 물이 샌다고 해도, 스피커가 고장 났다고 해도 돈 없어서 고칠 수가 없었어요. 성도들이 대단하게 헌신한 건데, 오래 공부를 한다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마치게 되셨나요?
“공부하러 가기 전에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삶을 이해하려면 직장생활을 해봐야 한다고 해서 2년 정도는 직장생활을 했어요. 거기서 번 돈을 가지고 갔었는데 그것도 3개월 만에 떨어졌어요.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학교에 우리가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한인교회의 한 장로님을 소개시켜 주셨어요. 사업을 하다가 어려운 일을 겪고 계시는 중에,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으신 분이셨어요. 이분이 복음의 빚을 졌다며 한국에서 이 학교에 오는 학생이 있다면 돕겠다는 마음을 품고 계셨는데, 저희가 그 가정을 만나게 된 거죠. 그렇게 졸업할 때까지 생활비 지원을 받았어요. 우리가 상상도 못했던 일인데 하나님께서 끝까지 공부하게 하신 게 감사했어요.”
– 성도들의 헌신과 주님의 은혜로 이렇게 다음세대 목회자가 세워진 거군요. 목회를 하시면서 신앙의 위기를 겪고 있는 분들을 어떻게 도와주시는 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돌이키는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이 일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잖아요. 내가 어떤 말을 해서 사람들이 돌이킨다기보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말씀하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시는 거라서, 그런 기회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려고 해요. 또 하나는 많은 사랑을 받으면 변화되는 경우가 있어요. 진리와 사랑을 많이 드리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요. 우리 교회도 젊은 일꾼들이 세워지면서 아름다워 보이지만 어려운 면도 있어요. 제가 걸음마하는 아기 때부터 보시던 분들은 제가 강단에 올라가서 ‘이렇게 사셔야 한다.’고 하면 얼마나 어렵겠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저보다 한 두 살 많은 형들이 저를 자신의 목회자라고 인정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을 것 같아요.”
– 듣고 보니 그런 어려움도 있었겠네요. 어려움을 극복한 방법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걸 넘어가는데 있어서 주님이 말씀의 권위를 사용하신 것 같아요. 조정의란 사람이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강단에서는 하나님 말씀이 전파된다는 게 매 주일마다 확실하게 나타나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아내와 같이 섬기면서 성도들의 마음이 녹아내리게 됐던 거 같아요. 결혼하고 미국에서 5년 살고, 들어와서 2년쯤 지났을 때 아내가 암에 걸렸어요. 그때 저는 담임 목사로 세워졌는데, 동시에 아내는 치료를 해야 했던 상황이었어요. 이런 중에도 아내가 같이 도와서 성도들을 섬기는 모습이 성도들에게는 사랑으로 와닿았나봐요. 아픈 게 힘들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이게 은혜였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것으로도 성도들을 위로하게 하시고요.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 그레이스투코리아에 다양한 칼럼들을 연재하고 계신데요, 다방면으로 정리가 참 잘 돼있더군요. 어떻게 이런 훈련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취미가 독서와 음악감상이에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백과사전 읽자고 하고, 학급회의 때, 체육시간 없애고 책을 읽자고 할 정도였어요. 다방면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하나님이 관심사를 보여주셔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글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써낼 수 있는 것도 타고난 게 아니라 그레이스교회나 마스터스에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거 같아요. 강해설교는 본문을 삶과 연관되게 설명을 해야 되는데, 그러다보니까 삶의 여러 부분들을 어떻게든 성경적으로 설명을 하고 싶어서 노력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칼럼을 쓰기 시작했고, 그런 것들을 책으로 내게 되면서 더 속도를 내게 된 것도 있어요.”
– 아쉽게도 인터뷰를 마쳐야겠는데요, 끝으로 이 인터뷰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한국에 와서 여러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진리 안에 깨어계신 분들은 한국교회를 염려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게 됐어요. 한 분은 한국은 목사가 되고 싶다고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곳이라면서 안타까워하셨어요. 전과가 있든, 삶이 어떻든 상관없이 일정한 자격증만 따면 목사가 될 수 있다고 이래서 되겠냐고 하시더군요. 성경대로 안 하는 거죠. 성경에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 대해 나오는데 말이죠. 저는 한국교회가 성경의 기준을 떠나지 않고 성경대로 하는 교회가 됐으면 해요. 성경은 들러리나 목회에 필요한 도구 정도가 아니죠. 성경이 곧 하나님 말씀이고, 그것대로 하는 것만이 참된 교회를 세우는 방법이죠. 그런 교회가 많아졌으면 생각해요.”
– 성경대로 한다고 할 때, 지금 교회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죠. 교회는 목사와 집사로 구성된다는 이런 게 아니라 복음이 뭔지, 거듭난다는 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려줘야 해요. 한국교회의 특징은 토속신앙과 기독교가 섞여 있어요. ‘우리 자식 잘되게 해주세요. 시험 붙게 해주세요.’ 이런 걸 예수님만 붙여서 하는 게 많은데, 그게 아니라 복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전달하는 교회가 돼야 해요. 그 복음의 부르심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예수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교회가 정확하게 알려주고 가르쳐야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네 감사합니다. 끝으로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저희가 아직 젊지만 다음세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3세대 법칙이 있다고 해요. 모든 신학교가 3세대 정도 되면 변질된다는 것. 교회도 마찬가지로 3세대 정도 되면 타협하기 시작하고, 변질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저희도 성도들에게 다음세대를 제대로 세워야 되지 않겠냐고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제대로 서야 되고, 유평교회 성도들이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마음과 사랑을 잃지 않고, 지금처럼 진리를 사랑해서 끝까지 진리를 지키기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기뻐 사용하시는 교회, 촛대를 옮기지 않고 끝까지 이 교회를 통해서 주님이 영광 받으시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는 깨끗하고 주님이 사용하시기에 좋은 겸손한 종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 장시간 귀한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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