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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칼럼] 성경적 관점과 한.중.일 3국의 역사 (2)

사진: Stephanie Nakagawa on Unsplash

2. 일본 역사 기록의 특징

역사 소설의 고대 일본사

일본의 역사 기록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중심으로 한다. 이 책은 663년 백강전투로 인해 백제가 완전히 멸망한 후에 57년이 지난 720년에 편찬되었다. 고대 일본인이 「일본서기」(日本書紀)를 기록할 때에 역사를 기록하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덕일 교수에 의하면 네 가지인데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 최초의 정권은 한국의 가야 계통의 사람들이 3세기경에 일본 큐슈지방으로 건너가서 시작하는 야마토 왜의 정권이다. 그런데 이 기원을 약 1천년의 역사를 끌어 올려 주전 660년경에 야마토 왜가 성립되었다고 조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천년의 역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 1인 왕의 정치 행정을 둘 혹은 세 사람의 왕의 행적으로 분할하여 만들어 냈다. 둘째, 백제가 상국(上國)이었고 야마토 왜가 제후국이었는데 이것을 뒤집어서 야마토 왜가 상국이고 백제가 제후국으로 역사를 바꾸어 기록했다. 셋째, 야마토 왜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임나) 등을 정복했으며 그들이 모두 야마토 왜에게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라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 넣었다. 넷째,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사실 일본 열도에 진출해 분국들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본국의 사역과 뒤섞어 놓아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이덕일, 「이덕일의 한국통사」 (서울: 다산북스, 2021), p. 108.

문화사를 바꾸다

고대 중국인들이 역사를 기록할 때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을 높이고 불리한 것을 감추거나 축소는 해도 아예 주객을 바꾸어 버리는 기록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본의 역사 기록은 왜곡, 변질, 주객전환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문명과 문화의 역사마저도 바꾸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것은 일본의 초기 문화는 남방에서 일본으로 온 조몬인(繩文人)들이 조몬 문화를 형성했고 그 후 대륙에서 한반도를 통해 야요이인(彌生人)들이 들어오고 그들에 의하여 야요이(彌生)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일본은 남방의 조몬 문화와 한반도를 통해 들어온 야요이 문화가 혼합하며 일본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전 10세기부터 일본 전통의 조몬 문화가 있어서 이들에 의하여 일본 역사와 문화가 계승된다고 하면서 전래 문화를 왜곡, 축소, 무시하고 있다.

3. 한국 역사 기록의 원리와 특징

한국의 역사책

한국의 역사책들은 고구려의 「유기」(留記), 「신집」(新集), 백제의 「서기」(書記), 신라의 「국사」(國史) 등이 있으나 지금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로서의 역사서는 고려의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三國史記)이다. 그는 이 책을 쓸 때에 「구삼국사」(舊三國史)를 보고 기록했다고 한다. 고려의 역사는 조선에서 편찬한 「고려사」(高麗史)가 있다. 조선의 역사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 있다. 그리고 1864년부터 1910년까지 구한말과 일본 강점기 전의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를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이 있다. 이 책은 비록 황현(黃玹)이라는 선비문인의 개인 기록이지만 많은 사료를 담고 있기에 정사(正史)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

해방 후 한국의 역사 서술의 흐름

해방 후 한국인의 역사 서술의 흐름은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민족주의 사학 계열이고 둘째는 공산주의 사상을 따라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셋째는 일본의 식민사관을 따라 역사를 논하는 것이다. 해방 후에는 민족주의 사학이 한국의 역사학을 주도해야 하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그렇게 되지 못하고 또 한국전쟁 때에는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납북되어 한국에서는 민족주의 사학이 거의 소멸되었다. 공산주의 계열의 사학은 북한에서 뿌리를 내렸고 남한에서 납치해온 민족주의 사학자들과 함께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을 제거한 역사학을 전개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남한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 계열의 사학이 제거되자 남은 것은 식민사학이었다. 그런데 일본 역사학자들을 따르는 식민사관을 해방 후에 그대로 사용하기 어려워 식민사관을 실증주의 사학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남한의 역사학을 장악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남한에서는 다시 민족주의 사관을 갖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형성되었다. 한국의 민족주의 사학은 민족을 위해 역사를 과장하고 부풀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일본의 식민사관으로 인해 왜곡되고 축소된 역사를 정상화 시키는 작업이다.

사상과 체제로서의 역사관

역사를 논할 때에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칼 마르크스(Karl Marx)에 의하여 공산주의 사상으로 역사를 논하는 흐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역사를 5단계로 나누었다. 첫째는 원시공산 사회이고 둘째는 고대 노예제 사회라는 것이다. 셋째는 중세 봉건주의 사회이고 넷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회는 원시 공산사회 이외에는 모두 평등을 망각하고 계급이 형성되어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형태였으니 다섯 번째의 단계로 이것을 다시 환원하여 인류가 모두 경제적 평등에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 완전한 평등을 이루는 공산주의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류 역사의 분류는 단지 민족과 국가 중심의 역사관에서 물질과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보편적, 세계적인 역사관이 나타났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공산주의 역사관이라는 것은 자본주의자를 착취의 주체로 보고 이들을 공산주의 혁명으로 제거함으로 무산자 계급의 평등 세상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현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사상이며 역사관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평등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다른 능력과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 자라나면서 노력하는 정도가 다 다르다. 그러므로 사회에서 계층이 생기는 것이고 그 계층에 따라 사는 것이 오히려 정당한 것이다.

공산주의는 단지 사상을 주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피의 혁명으로 공산주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니 가장 위험한 사상이며 역사관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공산주의 사상을 따라 한국전쟁을 일으켰다. 만일 그의 전쟁이 성공했다면 한국인은 이 세상에서 제일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 민족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한국인의 역사관은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개인주의, 성경에 근거한 종교 개혁적 개신교, 그리고 민족주의 사학으로 한국의 역사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기독교와 민족사학이 우리 역사 인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한국의 영토 개관

한국의 역사는 단군(檀君)이 세운 조선(朝鮮)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선은 주전 2333년에 현재 중국의 수도인 북경 근처의 난하(灤河)지역에서 세워졌다. 그 이후 중국의 전국 시대에 연(燕)나라의 장수 진개(秦蓋)가 조선의 땅 2천리를 빼앗았다. 그러므로 단군의 조선은 현재 중국의 요녕성의 요하(遼河) 지역으로 나라를 옮겼다. 그 후 중국 한(漢)나라의 무제(武帝)가 주전 108년에 조한(朝漢)전쟁을 일으켜 단군의 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낙랑, 진번, 임둔, 현도라는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다.

조선의 제후국이었던 부여(夫餘)에서 나온 주몽(朱蒙)의 고구려는 한사군을 멸망시키고 난하(灤河) 지역까지 옛 조선의 강역(疆域)을 회복했다. 그 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는 멸망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장군 대조영(大祚榮)이 발해(渤海)를 세워 고구려의 명맥을 유지했다.

그 후 발해는 거란에 의하여 멸망하고 유민(遺民)은 왕건이 세운 고려(高麗)로 귀속했다. 고려는 요하지역까지 국경선을 유지했으나 원명교체기에 위화도 회군과 이후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事大主義)를 국시로 세운 이성계와 조선 왕조에 의해 요동지역을 잃게 되었다.

서양문명을 빠르게 받아들인 일본은 1910년부터 조선을 36년 동안 강점하고 한국인에게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주입하였다. 이후 해방은 되었으나 소련에 의하여 세워진 북한정권은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에 나라를 가난하게 하고 국민을 게으르게 하는 공산주의 사상으로 인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민족의 번영이 어려운 지경에 있다. 다행히 남한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인하여 나라가 번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속히 공산주의 사상을 제거하고 북한을 흡수통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대주의를 없애고 서쪽으로 진군하여 고조선의 옛 강역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으로는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가야(伽倻)의 분국(分局)이 있었던 일본의 큐슈와 서남부 지역까지 영토를 되찾아 그 땅에 일본이 우리에게 조작했던 식민사관을 묻어야 할 것이다.

4. 성경에 나타난 역사 기록의 특징

민족과 국가

성경은 인류의 처음과 끝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이다. 인류는 언어를 따라 민족을 형성하였고 나라를 세웠다. 신명기 32장 8절의 말씀을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영적 이스라엘인을 각 민족과 나라에 흩어 놓으셨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그들을 부르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각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민족과 국가의 강역(疆域)을 지키며 살아간다.

(신 32:8)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초막절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과 국가를 이루셨다. 그리고 민족과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 지를 하나의 예로 전 세계의 민족과 국가에 보이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의 특징은 이집트에 400여 년간 노예로 살았다는 것이다. 대개의 민족은 그러한 역사를 숨기고 싶어 하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와 같은 노예의 역사를 전혀 숨기지 않고 그대로 기록하였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우고도 매년 초막절이란 절기를 통해 온 가족이 장막을 갖고 여행하며 자신들이 노예였고 광야의 삶을 거쳐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 말을 다시 쓴다면 일본이 세운 조선 총독부를 없애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고 한국인들이 자신이 사는 곳에서 가족 단위로 텐트를 준비하고 걸어서 여행하여 조선 총독부 건물을 보고 한국인이 36년 동안 일본강점기에 치욕과 고난을 당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윗왕의 치부(恥部)

또한 우리 같으면 광개토태왕이나 세종대왕 같은 분의 역사를 쓰라고 한다면 아마도 좋은 점만 쓰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의식과는 다르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명군(名君)은 다윗 왕인데 그들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하고 전투를 핑계로 우리아를 살해한 것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을 믿고 거인인 골리앗을 죽이며 이스라엘을 제국으로 만든 공로가 있지만 그가 방심했을 때에 마음에 성적인 탐욕이 일어나 충성스러운 부하의 아내를 범하고 그 부하마저 죽이는 악한 행위를 하는 것을 역사로서의 성경은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시비(是非)의 기준으로서의 하나님

역사는 시비(是非)를 논한다. 만일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시비의 관점과 기준이 없다면 그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갖는 시비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양심과 이성이다. 역사가는 양심과 이성에 따라 판단하여 역사를 기록한다.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 또한 양심과 이성을 따라 기록한다. 그런데 인간의 양심과 이성의 근원은 하나님의 계시라고 본다. 즉 인간의 양심과 이성도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일의 시비(是非)의 기준은 하나님이시다. 기독교 역사가는 이 원리로 역사를 논한다. <끝>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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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조용선 칼럼] 성경적 관점과 한.중.일 3국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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