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조용선 칼럼] 하나님이 보호하는 한국(1)

ⓒ 안호성

(신 32:8)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신 32:8)When the Most High divided their inheritance to the nations, When He separated the sons of Adam, He set the boundaries of the peoples According to the number of the children of Israel.

至高者将地业赐给列邦,将世人分开,就照以色列人的数目立定万民的疆界。

1. 선교지에서 깨달은 것

중국 역사를 공부하다

이 세상의 모든 민족과 나라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 것이다. 나는 중국 선교를 위하여 중국의 역사를 공부했다. 선교를 하면서 중국인들에게 중국 역사를 예로 들면서 강의하니 그들 가운데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감동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들도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외국인인 내가 중국의 역사를 그렇게 많이 공부하여 중국인들에게 말해주니 그것만으로도 감동이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참으로 감사했다.

조선족의 현실

그런데 어떤 기회에 연길에 가서 중국의 조선족 기독교인들에게 강의를 하게 되었다. 5일 동안 가르치는 것이었는데 그들에게도 조선민족의 역사를 예로 들면서 성경과 기독교에 대해 가르쳤다. 그런데 그들은 조선민족의 역사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날을 잡아 하루 종일 우리의 역사를 그들에게 가르쳤다. 그러자 어떤 기독교 지도자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또 어떤 지도자들은 나중에 다른 시간을 마련할 터이니 다시 와서 연길의 청소년들에게 조선민족의 역사를 강의해달라고 했다. 저들 연길의 청소년들은 부모가 돈을 벌기 위해 다 한국으로 가고 조부모 밑에서 자라는 경우가 허다한데 모두 술과 담배와 마약과 도박과 성(性)에 노출되어 연길의 조선사회가 망가져가고 있다고 했다.

한국역사와 로마의 역사를 공부하다

이런 일들이 기회가 되어 나는 한국의 역사에 대해 시간을 내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기간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였고 한국 역사 전체를 들여다보고 글로 완성한 후에는 조선족 신학교에서 조선족 신학생들에게 5일 동안 강의를 했다. 후에는 심양에 있는 한국국제학교에서 5년 동안 국사와 세계사를 강의했다. 이 시기에 나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중국사와 한국사를 넘어 로마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서양 역사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로마의 역사는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필수이고 또 현대 서양정신의 근본이 로마의 문명과 문화에서 나오기에 아주 중요하다.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나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뿐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를 추천한다. 우리가 흔히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하신다는 것이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는 약속의 선언이기도 하다. 성경을 다 살펴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단지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을 생각하면서 나라의 영역이 정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2. 중화(中華)와 동이(東夷)

중국(中國)이란 이름의 기원

그러므로 우리 민족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따라 민족과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온 것이다. 한국인은 동이(東夷)족에 속한다. 이 말은 중국인들이 자신들을 화하(華夏)족이라고 하며 다른 민족들과 구분하면서 특히 자신들의 땅의 오른 쪽에 해당하는 민족들을 동이족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역사 연구를 보면 중국인들의 조상 역시 이(夷)족에 속하는 서이(西夷)족이라고 한다. 이들 가운데 화족(華族)과 하족(夏族)이 통합하여 화하(華夏)족이 되었다. 이들이 중화(中華)민족이란 생각을 하며 중(中)자를 쓰게 된 기원을 살펴보면 주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살던 지역이 하락(河洛)이란 곳이다. 이 지명(地名)은 황하가 산악지역을 굽이쳐 내려가며 흐르는 것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황하(黃河)에서 하(河)자와 낙양(洛陽)에서 낙(洛)자를 합하여 그 장소의 이름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후에 이 지역의 사람들이 주(周)나라를 세우면서 자신들이 거주하는 장소를 천하의 중심이란 뜻으로 ‘천하지중’(天下之中)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중화(中華), 혹은 중국(中國)이란 이름의 기원으로 추정한다. [1]

동이(東夷)족과 서이(西夷)족

그러므로 중국인도 원래 이족(夷族)으로서 동이(東夷)족이 볼 때는 서쪽에 있는 이족(夷族)이라고 하여 서이(西夷)족이었다. 이 서이(西夷)족이 하락(河洛)지역에서 주(周)나라를 세우고 자신들은 이족(東夷)과 다른 문명과 문화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을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 사방의 민족들을 오랑캐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원래 수렵을 하면서 초원문화를 갖고 있던 이족(夷族)의 생활에서 황하를 중심으로 한 농경문화로 바뀌면서 자신들의 문명은 이족(夷族)의 문명보다 높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이족(夷族)의 삶은 풍성한 것이었다. 특히 동이족이 분포한 지역은 해변과 산과 들이 있는 발해와 산동 반도와 한반도 지역으로 이 지역에는 소금이 있고 해산물도 있으며 수렵과 채취까지 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족에서 이(夷)란 뜻은 ‘활을 쏘며 대인(大人)으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었다. 서이(西夷)족이 볼 때에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지역은 강물의 범람으로 인해 농사를 짓는 것이 곤란했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유를 통제하며 관개농업을 이루어야 했기에 인간을 뜻하는 인(人)자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복종하는 모양을 뜻한다. 그런데 손과 발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자유로움을 뜻하는 것이 대(大)자였고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대인(大人)이었다. 그러므로 황하주변의 사람들이 볼 때에 동이족은 대인(大人)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들이 화하(華夏)족으로 연합하며 세력이 강해지고 황하를 이용한 농업도 발전하면서 자신들의 문명은 이족(夷族)과 달리 훨씬 높은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동이족을 비하하기 위해 활로 수렵을 하며 넉넉한 삶을 사는 대인을 뜻하던 이(夷)자의 뜻을 오랑캐 이(夷)자로 바꾼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들은 이제 초원문명의 이족(夷族)이 아니고 강을 낀 농경민족으로서 이전의 이족(夷族)과는 다른 중화(中華)민족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마천이 만든 중국인의 역사 「사기」(史記)

1) 「사기」(史記)에서 삼황(三皇)을 뺀 이유

이와 같은 역사의식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중국의 역사에서 삼황(三皇)을 빼버리고 오제(五帝)부터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삼황(三皇)시대를 역사가 아닌 전설로 본다는 것이지만 실제적 이유는 태호복희(太皞伏犧)씨와 염제신농(炎帝神農)씨와 황제수인(黃帝軒轅)씨라는 삼황이 이족(夷族)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마천이 이와 같이 중국인의 조상이 이족(夷族)인 것을 감추려고 한 것은 사마천 자신이 갖고 있는 민족주의 의식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사마천이 살던 당시의 통치자가 한(漢)나라 무제(武帝)였기 때문에 역사를 그렇게 썼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무제(漢武帝)는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한족(漢族)이라고 부를 만큼 중국의 문명과 문화를 높인 황제였다. [2] 그러므로 중화(中華)의식이 팽배한 당시의 상황에서 역사서를 기록한다는 것은 한족 자체의 고유한 기원이 있다고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마천은 동이족 일색인 삼황의 시대서부터 중국의 역사를 시작하지 않고 오제의 시작을 황제(黃帝)로 하여 황제(黃帝)가 중국 한족의 기원이라는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3] 원래 오제는 소호(少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당요(唐堯), 우순(虞舜)을 오제라고 한다. 그런데 사마천은 소호(少昊)가 너무도 분명하게 동이족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그를 빼고 대신에 황제를 넣었다. 그러므로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는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당요(唐堯), 우순(虞舜)이 오제가 되었다.

2) 황제(皇帝)와 치우(蚩尤)의 갈라치기

사마천이 행한 또 하나의 문제는 황제와 염제가 연합하여 동이족인 치우(蚩尤)와 싸워 이겨서 비로소 중화민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고 역사를 편집한 것이다. 패배한 치우의 세력은 산동 반도 지역에 남은 자들이 있고 하나의 세력은 남방으로 가서 묘족(苗族)과 백족(白族)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세력은 북쪽으로 올라가 곰을 숭배하는 족속과 연합하여 단군 조선을 건국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편집

그런데 중국은 최근에 황하문명보다 훨씬 더 빠른 초원문화로서 요하문명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허베이 지방 이북에 요하문명이 있었다는 고고학의 발굴이 나타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중화민족만이 중국의 기원이 아니라 동이족도 중국의 조상이라고 하면서 황제, 염제와 더불어 치우(蚩尤)를 중국의 조상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이런 역사는 중국인들이 자신들은 문명과 문화의 민족이고 주변의 민족들은 오랑캐라고 하는 중화의식을 포기하게 만든다. 고고학의 발굴은 초원을 중심으로 한 요하문명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강을 중심으로 하는 황하문명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초원을 중심으로 했던 것은 이족(夷族)들이었고 그중 서이(西夷)족 중의 한 부류가 중국을 만든 것이다. 화하(華夏)족은 후에 한나라 시대에 한족(漢族)이 되는 것이고 당나라시대를 거치면서 당인(唐人)이란 단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1] 이덕일 교수의 「TV역사특강」 2020년 2월 21일자.

[2] 그는 비단길을 열어 무역을 증진시켜 한나라의 경제를 높였고 흉노족을 통제했고 고조선을 멸망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동중서(董仲舒)의 정책을 받아들여 유학(儒學)을 나라의 근본 사상인 유교(儒敎)로 삼았다.

[3] 우리가 보통 말하는 황제는 황제(皇帝)는 제국의 군주를 뜻하는 것이고 삼황의 황제(黃帝)는 누를 황(黃)자를 쓰며 개인의 이름으로서 고유명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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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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