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할 때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로 가르친 기억이 있다. 예레미야는 위로부터 확실한 부름에 따르는 기도의 사역자였다. 그는 이처럼 크리스천 교사들에게 부담을 주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지혜의 사람임이 분명하다.
며칠전 월요일에 모인 격월간 목회자 모임(Westminster Fellowship)에서 우린 모임 멤버 중 강사를 통해서 다시 그를 떠올렸다. 목회 현장에서 적용해야 될 큰 믿음과 헌신을 하는 기도의 사람으로 선지자 예레미야를 묵상하게 됐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많은 이들은 피난민이 되어 유럽 및 타지로 흩어지고, 어떤 이들은 어쩔 수 없는 지형적 조건으로 주적이나 마찬가지인 러시아로도 피난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렇다.
이런 환란과 고통의 시간에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떠올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신실한 기도자로 눈물로 주님의 마음을 구한 그의 삶이 오늘 우리에게 생생한 메시지로 다가오는듯 하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어쩌면 예레미야는 각광을 받는 것보다 단순한 시골 생활을 하는 것을 선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는 공인 신분의 예언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자기 백성에게 달갑지 않은 기별을 전하는 일을 주저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방백들과 백성이 다 자기 생각과 악한 길을 쫓는 자들을 비방하여 우상 숭배, 부도덕, 경건하지 않음, 불의가 그 시대에 만연한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제사장 가정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성직자로 가는 길로 예시 될 기로에서 현상 유지를 위한 삶을 부지런하게 살았다. 그는 성역 길로 떠나라는 부름에도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살피며 주저하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그는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성을 설교해야 했다.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영원하시며 무한한 사랑 속에서 부드러웠다. 때로는 기쁜 소식의 제안과 함께 섞인 엄숙한 꾸짖음이 있었다. 허나 잃어버린 백성에 대한 예레미야의 사랑은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를 통해 빛을 발했다. 그러나 백성은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지 않았다.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그렇게 그 백성들에게 거부당했다. 그의 생명은 끊임없이 위협받았고, 그의 기록된 메시지는 갈기갈기 찢겨 유대 왕에 의해 불태워졌다. 그리하여 그는 수렁에까지 던져졌다. 오히려 그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절망적인 외로움까지 겪었다. 조국을 배반하고 거짓 선지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성난 군중들은 그의 생명을 요구했고 그의 뜻에 반하여 이집트로 끌려가 집과 친구, 지지자들을 다 잃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생애에 가장 중요히 여기던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감각적 관계’를 결코 잃지 않았다. 그는 진정 할 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를 전해야만 하는 진정한 선지자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오늘날 의회나 언론에서 우리가 흔히 듣는 말처럼 경솔한 말도, 듣는 사람의 귀를 간지럽히기 위해 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는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해석하며, 기득권층을 달래는 것도 거부했다.
그로부터 분명히 배울 점 중 한 가지는 그는 늘 ‘거룩한 부담을 갖는 눈물을 흘리는 선지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일반적인 지금 시대의 현대적 설교자와는 달리 자신이 설교한 모든 것을 깊이 느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메시지를 다시 엿듣는다.
‘오,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의 샘이 되어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밤낮으로 울게 하소서’.
예레미야는 그가 선포한 것을 이처럼 정말로 믿었다. 그는 그것을 느꼈고 메시지는 본인 자신이었고 이는 그를 사로잡았으며 그의 뼈에서 타는 불길 같았다. 그는 그 뜨거움을 전해야 했고 선포한 메시지는 취미가 아니요 그의 삶 전체였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미세하게 관리하며 예레미야를 극구 살피고, 그를 통한 말씀 선포는 그를 정의했다고 표현 할 수도 있다. 그는 무엇을 ‘얻기 위한 방도로’ 사역하지 않았으며, 예레미야에 관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미세히 조정됐다.
필자는 그런 예레미야의 성실함을 존경한다. 심지어 그의 마을 사람들조차 그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밀 때, 그는 자기를 도살장으로 데려가는 유순한 어린 양처럼 처신했다.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을 향한 그 렌즈는 그 시대를 바라보게하는 하나님의 시선이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자기를 꾀하려고 했지만 예레미야는 끝내 신실하게 예언했다.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다’는 것을 여러 번 읽는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듣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가 들은 것을 말했다. 그러나 모두 그를 조롱했으며, 그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미움을 당했다. 그러나 말씀은 그의 마음에 타오르는 불 같아서 지혜로 인내하며 그는 끝까지 사랑으로 계속 전파했다. 이때 영적인 전투는 모두가 하나님 편이었고 이에 따라 예레미야는 청중의 수를 최대화하는 데까지 전략적이었다.
매년 세 번씩 유대 남자들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야 했다. 예레미야가 성전 뜰로 통하는 문 중 하나 옆에 서서 전파한 것도 이때였던 것 같다. 백성의 죄가 너무 커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여전히 그는 설교를 했다.
이 시대가 범하는 큰 죄라면 말씀을 묶어 두는 것이다. 필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영국의 사도라 부르는 윌리엄 틴데일이 지금 시대에 건재하시다면 어떤 메시지를 주실까? 그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사방의 보안시스템 안에 숨겨 두지 않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 지금의 직장 선교회 모습처럼 그곳으로 – 가서 예레미야처럼 ‘설교를 하라’며 강권 하실 것이다. 예레미야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왕국에 대해 예언적으로 말씀했다. 지금 우리는 주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 얼마나 신실하게 믿으며 충실한 증인으로 마땅한 삶을 살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분의 효과적인 부름에 확고한 예레미야가 그 세대를 위하여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말씀 선포에 그가 생명을 걸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우리에게 주신 바 된 이 세대에로의 확고한 메시지는 우리에게 선포하도록 부름 받은 세대임을 계속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예레미야의 온유한 설교자 모습에서 부드러움을 배울 수 있다. 또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응답이 우리의 헌신과 신실함을 앞당기며 곧 우리 마음에 진정으로 얼마나 갈망하고 있을까? 이 보배로운 특권적인 복음 사역에는 세상의 틀에 얽힌 모습의 은퇴는 결코 있을 수가 없다. 그분의 사랑을 늘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이 성정을 가지신 예레미야와 예수님의 사역의 모습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심령을 다시금 강하게 도전하신다. 아멘!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훔 1:7) 아멘! [복음기도신문]
민경수 | 목사.선교사(본지 영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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