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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선 칼럼] 훈련소의 추억 그리고 군종장교 임관

사진: pixabay.com

공군목사 이야기(13)

1. 특수 장교들의 족구 추억

경상북도 영천에는 육군 제 3사관학교가 있다. 이곳에서 군종장교, 법무장교, 의무장교 후보생들이 훈련을 받고 장교로 임관한다. 법무장교와 의무장교 후보생들은 어떻게 구성되는지 모르지만 군종장교 후보생들은 기독교와 천주교와 불교의 지도자들로 구성된다. 문제는 천주교의 신부들은 이전에 이미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천주교구의 행정 명령에 의해 다시 입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부들은 병사로서 군대 경험이 있다.

이것이 12주 훈련받는 동안 계속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신부들은 과거에 다 훈련을 받았던 것이니까 받지 않거나 대충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와 불교의 지도자들은 본인이 장교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들어온 것이기에 훈련을 열심히 받으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 이 두 생각의 차이는 웃기는 일도 많이 만들어내고 심각한 사건이 되기도 했다.

우선 족구 경기부터 말하자. 총신대와 신학대학원에서 7년간 공부하는 동안 특히 학부 때 동기 목사들 가운데는 족구를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 친구들은 저녁밥 먹고 도서관에서 공부하기 전에 구관 건물 앞에서 운동을 위해 족구를 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그렇게 족구를 잘하는 줄 몰랐다. 그중 군종장교 후보생들이 있어 함께 입소했다.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3사관학교의 족구는 나를 포함해 모두를 경탄하게 했다. 불교와 천주교 쪽에서도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를 담당했던 장교를 구대장이라는 직함으로 부르는데 구대장이 자신이 붙었나보다. 법무 장교 팀인가? 어디 다른 훈련팀의 구대장과 함께 족구 내기를 했다. ‘10만원 빵’이라고 기억한다. 그리고 훈련병들에게도 무엇인가? 먹을 것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쪽 팀도 족구를 정말 잘했다. 다섯 판을 했는데 한 시간 넘게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결국은 이겼다. 저쪽 팀에서는 ‘종교인들이 맨날 족구만 했냐?’고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이긴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2. 고기의 추억

앞서 박사과정에 있던 훈련병이 냉커피 한 잔을 마시지 못해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회고한 바 있다. 훈련받을 때에 군종장교 후보생들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기억난다. 고되게 훈련을 받고 저녁 식사를 하게 되면 밥이 참 맛있다. 어떤 때는 통닭 튀김이 나온다. 8명이 한 식탁에 앉아서 먹는데 대개 목사가 5-6명 정도이고 신부와 법사가 2-3명 정도가 앉는다. 내 머리에서 법사들은 고기를 안 먹을 것이니까 조금 더 풍성하게 먹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들었다. 그런데 웬걸, 아, 나는 중이 고기 먹는 것을 그냥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런데 어느날 내게는 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처음에 약 한 달은 면회금지이다. 그런데 그 후에는 주말에 면회를 할 수 있다. 군종장교의 가족과 친구 등 위문을 오는데 괜찮게 생긴 젊은 법사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주말에 예쁜 여자가 면회를 왔다. 누구냐? 고 물었더니 아내란다. 그리고 그 여자는 이름이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탤런트란다. 내가 지금 글을 쓰다가 그때를 생각하면서 몇 번씩 ‘아, 참’ ‘거, 참’을 계속 말하고 있다. 아니 고기 먹고, 마누라 있고, 술 마시는 것은 못 보았지만 술도 마시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도 피겠구먼! TV에서 보니까 중들이 모여서 호텔에서 도박도 하던데, 아니 못하는 것은 무엇이 있고 안 하는 것은 또 뭐가 있나? 그러나 목사들 가운데서도 이런저런 실정법을 어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니 할 말은 없다.

여하튼 현재 중요한 것은 밥 먹을 때에 고기반찬에 대한 문제였다. 법사가 고기를 먹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이제 정확하게 고기를 나누어 먹어야 했다. 그런데 목사들이 불리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밥 먹을 때에 신부들은 손으로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먹으면 되고 법사들은 다 먹은 다음에 손 모으고 고개 숙여 합장을 하면 되었다. 그런데 기독교 목사들은 밥 먹기 전에 기도를 해야 했는데 기도 끝나고 나면 이 신부와 법사 군종들이 고기를 양심껏 가져간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자신들 식판에 갖다놓는 것이다. 그러니 목사들은 늘 고기가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목사들에게 제안했다. “우리 훈련받는 동안 밥을 먹고 난 후에 기도를 하자. 아니면 눈을 부릅뜨고 기도하자. 설마 눈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신부와 법사들이 고기 다 가져가겠냐?” 정말 좋은 제안이라고 여겨지지만 목사들에게 채택되지는 않았다. 그냥 우리는 주님의 이름 때문에 고기를 못 먹고 손해를 보더라도 밥 먹기 전에 눈 감고 기도하기로 했다. 눈감고 기도할 때에 저 양심 없는 자들이 우리의 고기를 저들의 탐욕만큼 다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우리 목사들은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아픔을 참고 인내하기로 했다. 정말 우리는 거룩했다. (한 가지, 오해를 말기 바란다. 이것은 진짜 대책회의가 아니라 나와 가까운 목사 몇 사람이 우스갯소리로 말한 것을 전체인 것처럼 재미있게 말한 것일뿐이다.^^)

3. 화산 유격장의 추억

영천 3사관학교에서 40km 떨어진 곳에 화산 유격장이 있다. 월요일에 완전 군장하고 이곳을 걸어가서 유격훈련을 받고 금요일인가? 토요일에 다시 걸어서 사관학교로 복귀하는 훈련이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했다. 대구, 영천 이 지역은 분지라서 6월에 꽤 더웠다. 그래서 한 시간을 걷고 소금을 약간 먹었다. 포카리 스○○ 분말가루가 있는데 이것을 수통에 타서 마셨다. 그래도 완전군장을 하고 걷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었다. 어느 다리 밑에서 밥을 먹는데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그런지 개울가에 놀러온 사람들이 푸른 고추와 양파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그렇게 맛있어 보일 수 없었다. 내가 쳐다보는 것이 측은했는지 그 사람들이 고추와 양파와 고추장을 조금 가져다주었다. ‘고맙습니다.’ 하고 먹는데 그때 먹었던 그 시원함을 잊을 수 없다.

보통 군인들은 저녁나절에 산 위 화산 유격장에 도착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대한민국 특수 군인이다. 저녁도 화산 아래로 보급해서 먹었다. 그리고 이제 화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르다가 부대가 해체되었다. 너무나 힘드니까 걷는 속도들이 달라져서 결국 대오가 완전히 흩어졌다. 허 목사라고 해군으로 간 동기 목사가 있다. 산에 오르다가 어느 지역에 산딸기가 무척 많았다. 허 목사와 나는 철모를 벗어서 거기에다가 산딸기를 따서 모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때를 생각하니 유쾌하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40km를 걸어와서 정말 힘든데 철모에 새콤한 향이 그득하고 과즙이 톡톡 터지는 산딸기를 먹으며 나머지 산길을 올랐다.

이때까지는 좋았는데 산에 다 오른 다음에 우리 목사들은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신부들이 우리와 함께 걸어오지를 않고 처음 출발할 때만 같이 걷는 척하다가 택시를 타고 화산유격장에 와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군인으로서 훈련을 충실히 받으려는 마음인데 그들의 일탈 행동에 정말 마음이 상했다. 군화를 벗고 샤워를 하고 유격장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발바닥에 물집이 수십 개가 생겼다. 유격장 조교가 알려주는데 물집에 실을 꿰어 두라고 했다. 저마다 발에 수십 개의 실을 꿰어두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군화를 신는데 발바닥의 통증 때문에 유격훈련을 받기가 힘들었다. 빨간 유격 모자를 쓴 조교들이 입가에 웃음 하나 없이 우리를 훈련으로 내몰았다. 유격 훈련을 하면서 재미있는 사건들도 있었다.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훈련을 위해 약 12미터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이 있다. 그러면 뛰어 내린 후에는 밧줄에 걸려 약 100미터를 공중에 매달려 이동이 된다. 조교가 시범을 보이는데 ‘애인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애인 있습니다.’ 하면 애인 이름 부르고 뛰어 내리라고 한다. 처음에는 조교가 막 연기를 보여주는 데 무서워서 비행기 기체를 잡고 안 뛰어내리려는 모양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다른 조교의 강압에 의해 마침내 애인 이름을 크게 또박또박 부르면서 뛰어내렸다. ‘배’ 라고 외치기에 그 조교 애인의 성이 배씨 인줄 알았다. 그 다음에 말하기를 ‘신’-‘자’하는 것이다. 빵 터졌다. 그 조교 애인의 이름이 ‘배신자’라니 웃기려고 한 것인데 너무 재미있었다.

법사 한 사람이 뛰어 내렸는데 원래는 어깨에 있는 계란형 쇠갈고리에 밧줄 두 개가 걸려야 한다. 그런데 이 법사의 한 쪽 어깨 밧줄이 풀렸다. 줄 하나만 걸려서 100미터를 날아가는데 밑에서 우리가 볼 때는 너무 웃기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 법사는 얼굴이 긴장해서 완전히 빨개졌다.

헬기 레펠(rappel)은 헬기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이다. 이것도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약 12미터의 높이에서 행해졌다. 원래 뛰어내릴 때에 안전장치로 밧줄을 쇠고리에 걸고 뛰어내린다. 그런데 어느 목사 한 사람이 밧줄이 쇠고리에 걸리지 않았다. 그냥 뛰어내린 형태가 된 것이다. 다행히 이런 경우를 대비, 그물 모양의 줄들이 수직으로 서 있어, 뛰어내리면서 그것을 잡게 되어있다. 그 목사는 뛰어내린 후 그 그물 모양의 줄을 잡아서 사고가 나지 않고 살았다. 아 글을 쓰다 보니 기억난다. 화산 유격장에는 훈련받다가 사고가 나서 죽은 사람들의 추념비가 있다.

또 하나 기억나는 훈련이 있다. 산에서 전우가 부상을 당했다면 그 부상자를 업고 밧줄을 타고 바위산을 내려오는 설정의 훈련이다. 업고 오는 사람은 밧줄을 몸의 쇠고리에 걸고 내려오지만 부상당한 사람은 아무 안전장치가 없다. 오직 자신을 업고 내려오는 사람의 목을 잡고 업혀서 내려오는 것이다. 결과는 거의 대다수가 부상자를 업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나도 업는 사람 역할을 했다. 나에게 업힌 친구가 내 목을 하도 꽉 잡아서 “목을 좀 풀어줘. 내려가기도전에 목 졸려 죽겠다”며 내려오던 일도 떠오른다.

4. 충돌 그리고 임관

이렇게 재미있고 웃기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지만 목사와 신부 사이에서 안 좋은 일도 발생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유격 훈련은 단체 행동이다. PT 체조라고 해서 손발을 펼쳤다 오므리면서 구호를 붙이는 훈련이 있다. 가장 기본인 이 훈련은 지휘관이 20 번을 명령하면 ‘열아홉’까지만 구호를 붙이고 ‘스물’ 이란 말은 아무도 해서는 안 된다. 만일 누군가 ‘스물’ 이란 소리를 내면 PT 체조 회수는 벌칙으로 40번을 해야한다. 누군가 목사 쪽에서 실수를 했다. ‘스물’ 소리가 나오면서 체조는 다시 마흔 번을 향해서 나아갔다. 그런데 신부 쪽에서 이것을 고의로 여겼다. 이번에는 신부가 ‘마흔’을 외쳤다. 이제 체조는 ‘여든’을 향해서 나아갔다. 모두 조마조마했다. 긴장한 가운데 ‘일흔 아홉’을 하고 이제 더 구호를 붙이지 말라는 뜻으로 일흔 아홉은 아주 크게 소리를 냈다. 그런데 목사 중에 누군가가 ‘여든’을 큰 소리로 냈다. 싫은 소리와 욕이 나오기 시작했다. ‘백 예순’은 누가 했겠는가? 어떤 신부가 했다.

누군가 외쳤다. ‘그만해 새끼들아’ 훈련은 백병전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당시 목사들은 사실 싸움 할 줄 몰랐다. 신부들 가운데 다혈질의 사람들이 좀 있었고 그들은 이전에 군대에서 배운 전투기술을 그곳에서 사용하는 듯 했다. 특공대처럼 신부 몇이 공격적으로 움직였고 목사들은 거의 방어였다. 그러면 법사들은? 법사들은 무리지어 언덕 위로 올라 아미타불을 외치듯 합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불구경하듯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싸움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목사와 신부들이 이만큼 따로 떨어져 앉아있었다. 그런데 신부 쪽에서 누군가 욕을 했다. 그러자 목사 측에서 키가 크고 눈이 큰 김 목사가 신부들을 향해 “야, 하나씩 덤벼” 했다. 그러자 대구 출신의 한 씨 성의 신부가 “뭐야 새꺄!“ 하면서 돌진해왔다. 그리고 군화발로 앉아 있던 김 목사를 향해서 뻗었는데 다행히 빗맞았다. 그거 정확하게 맞았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이 일은 국방부 군종실로 보고가 되었다. 상부에서는 폭력을 사용한 신부들에게 입소를 해지하고 천주교에서는 10년 동안 사제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엄한 벌을 내리려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단 하나 유일하게 사건을 잘 해결하는 것은 목사들이 잘못한 신부들을 위해 청원서를 넣어주면 10년 사제직 금지도 해결되고 그 신부들은 군종장교로 임관할 수 있었다. 밤에 신부들이 찾아와서 목사들에게 사과했다. 자신들이 잘못했고 요구하면 자신들이 ‘완전군장하고 연병장 몇 바퀴라도 돌겠다.’ 고 했다. 목사들은 회의를 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신부들을 안 좋게 해 놓을 것은 없었다. 그래서 용서한다는 문서를 주었고 좋게 해결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래서 목사, 신부, 법사는 모두 12주의 훈련을 마치고 군종장교가 되었다. [복음기도신문]

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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