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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온 이스라엘”(롬 11:26)과 대체신학 이슈 (7)

사진: Robert Bye on Unsplash

목 차

I. 들어가는 말
II. “온 이스라엘”(롬 11:26)에 대한 네 가지 해석
III. 교회 공동체로서 “온 이스라엘”(롬 11:26)과 대체신학 이슈
1. 종말의 메시아와 바울의 메시아 왕국에 대한 이해
2. 유대인을 위한 전무후무한 구원의 시대?
3. “이방인의 충만한 수”(롬 11:25)의 반대 짝과 대체신학 이슈에 대한 응답
4. 구원자가 시온에 오심
1) 구원자의 출처 시온
2) 구원자의 사역
3) 하나님의 언약
5. 후회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
IV. 나가는 말

  3) 하나님의 언약

사도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아 “온 이스라엘”(롬 11:26a)이 되는데, 이러한 “온 이스라엘”은 예수의 초림으로 시작되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메시아 왕국의 백성 “전체”가 된다고 선언하였다. 바울은 그 사실을 확증하기 위하여 구약 성경 이사야 59:20~21a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롬 11:26b~27).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롬 11:26b~27).

이 말씀 속에는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구원자의 출처와 사역의 대상,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이다. 구원자의 출처와 사역의 대상에 대해 앞에서 이미 논의하였다. 이제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사도 바울은 시온에서 오신 구원자로 인하여 야곱이 죄 용서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진다고 언급하였다. 그렇다면, 그 언약은 어떤 것인가? 세대주의자들은 이 언약을 예수께서 재림하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상관없이 유대인 모두 다 구원받게 하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맺으신 “영원한 언약”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언약을 곧 예수께서 성찬 예식을 제정하고 선포하신 “언약”, 즉 공관복음과 고린도전서에서 다음과 같이 각각 소개되는 “언약”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막 14:24).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고전 11:25)

로마서에 인용된 “언약”(롬 11:27)은 고린도전서와 공관복음에 기록된 “언약” 또는 “새 언약”과 서로 다르다는 것이 세대주의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로마서 11:27의 언약은 메시아 예수께서 재림하심으로 시작될 메시아 왕국 시대에 그 왕국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이스라엘의 혈통적 후손들에게만 유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점진적 세대주의자 크레이그 블레이징(Craig A. Blazing)의 설명을 들어 보자.

로마서 11:26~27절에서 인용된 언약이 언급하는 언약(사 59:20~21)은 분명코 약속의 땅에서의 유업을 포함하는 민족적인 구원의 완전한 축복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사야의 바로 그 다음 구절들은 종말론적 왕국의 수도로서 예루살렘이 높아질 것을 예언하며(사 60장), 바로 그 구절은 요한계시록 21~22장에 기록된 요한의 환상에 영향을 주었다. 새 언약은 다른 언약에 표현된 이 같은 민족적인 소망을 재확증했다(롬 11:29).[1]

세대주의자들에 따르면, “두 언약 신학”에 기초한 구원의 길이 두 가지가 있다.[2] 하나는 예수께서 그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의 혜택을 받아 구원받은 길이고(마 26:28; 막 14:24; 눅 22:20; 고전 11:25), 또 하나는 이스라엘의 혈통적 후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상관없이 구원받는 길이다. 크리스터 스텐들(Krister Stendahl)이 그러한 두 언약 신학에 대해 최초로 논증한 학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3] 그러나 사도 바울의 서신들이 포함된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은 교회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하나의 언약 혜택을 받고 있다고 일관되게 선포한다. 이 점에 대하여 존 스토트는 톰 라이트의 주장을 인용하며 이렇게 설명한다.[4]

톰 라이트가 인종적 유대인이 대규모로 최후의 순간에 구원받는 것이라는 개념을 거부한 것이 옳든 그르든 간에, 현재 복음 전도를 하는 것에 대한 그의 강조는 건전하다. 바울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유대인들이 끊임없이 교회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상상하고 있다. 두 언약 신학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폐하신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구분을 영속시키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톰 라이트는 이렇게 쓴다. ‘이것의 아이러니는 20세기 후반의 반유대주의를 피하기 위해, 바울이 반유대주의라고 간주하는 바로 그 입장(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을 주장한다는 것이다.’[5]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하늘 보좌에 앉아 메시아 왕국의 왕이 되셨다. 그 후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의 바울을 불러 그의 사도로 세우시고 복음을 선포하도록 하셨다. 유대인들 가운데 그가 선포한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더러(일부)는 남은 자가 되어 구원을 얻게 하시고, 더러(일부)는 완고케 하심으로 그 구원의 혜택이 이방인으로 넘어가게 하시고, 그리하여 완고케 된 이스라엘의 더러(일부)가 시기나게 하여 그들도 구원 얻게 하심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바울은 이방인 모두가 다 구원을 받게 되는 것도 아니고, 유대인들도 모두가 다 구원받게 되는 것이 아니지만,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유대인의 충만한 수”가 각각 구원을 받아 메시아 예수의 초림으로 시작되었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메시아 왕국의 백성으로서 “온 이스라엘”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다메섹 사건을 통하여 체득한 하나님의 비밀이었다. 그 비밀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함께 구원하시는 구원 계획이었다. 그리고 로마 교회 공동체를 비롯한 온 세계 교회 공동체가 바울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비밀이기도 하다.

5. 후회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또는 적어도 절대 다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지금과는 구별된 전무후무한 종말론적 구원의 시대가 도래하기를 기대하는 신학자들의 수가 작지 않다. 그들의 기대는 로마서 11:28~32를 기초로 설명되기도 한다. 특별히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 없느니라”(11~29)라는 구절이 그들의 주장을 확증해 주는 말씀이라고 주장한다.[6] 그러나 헨드릭슨은 그 ‘은사’가 모든 이스라엘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남은 자들”(그루터기)에게만 주어진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그 부르심도 내적인 혹은 유효한 부르심, 즉 “남은 자들”에게만 해당이 되는 부르심이기 때문에 후회함이 없다고 해석한다.[7] 바울은 그가 터득한 비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동시적으로 구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선언한다.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버리셨느냐?”라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현시대에 실현되고 있다고 선언하기 위하여 그 살아 있는 증거로서 자신을 제시하고 있다(롬 11:1).[8]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출범한 메시아 왕국 시대, 즉 교회 시대에 진행됨을 “이제”라는 표현을 세 차례에 걸쳐 사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이제”)[9]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신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 11:30~31).

위 본문에서 “너희”는 이방인이고, “그들”은 유대인이다. 그 둘이 순종치 아니하는 때도, “이제“이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구원을 얻게 되는 때도 다름 아닌 “이제”이다. 그러나 홀베르다는 “‘이제’가 이미 진행 중인 구원 과정을 가리키는 반면에 이 표현은 바울의 이상을 현재적 순간으로 제한하는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방 세계와 유대 이스라엘 세계에 대한 종말론적인 충만함이 있는데, 이 충만함은 절정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하였다.[10] 그런데 헨드릭슨은 바울이 “이제”라는 말을 반복하여 사용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 혹은 재림 직전에 발생할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창세 이전부터 세워졌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성취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바울이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2)라고 선언하는데, 여기서 “모든 사람”은 곧 “너희”(이방인들)와 “그들”(유대인들)이다. 여기서 라이트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보자.

매우 적절하게도, 마지막 설명은 하나님에 대한 진술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2절의 내용을 반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인류 전체를 “불순종”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두셨으며, 그 목적은 그들이 그때 받게 될 것을 순전한 긍휼로 보게 하기 위함이라고 선언한다. 바울이 주장하는 내용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이제껏 진행되어온 이 편지의 긴 주장 전체로 돌려 보아야 한다. 그는 인류 전체가 죄의 권세 아래 놓였다고 선언하고 증명했다.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있었고, 이스라엘의 토라가 한 일은 오로지 그 민족을 죄에 더 꽉 묶은 것, 그렇다면, 또한 죽음에 묶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약속의 담지자였으며, 모든 인간이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행하실 것이다.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으로 오신 메시아는, 다른 사람이 실패한 그 지점에서 성공을 이루어냈고, 그의 신실한, 그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을 달성했다.[11]

라이트는 이어서 이렇게 질문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구원을 (이제껏 약속 밖에 있었기 때문에, 순전한 은혜와 긍휼을 통해서만 들어 올 수 있는 것이 명백한)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에도 가져올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은 구원과 관련하여 결국 “최혜국 조항”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가?” 그의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을 다음과 같이 라이트는 소개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시 “불순종” 안에 가두어 두셨으며, 그 목적은 육체를 따른 유대인들이 예수를 부활하신 메시아요 주라고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될 때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그들이 향유하게 될 칭의 그리고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구원은 이방인들만큼이나 그들에게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긍휼의 문제가 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패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언약에 진실하셨고. 하나님의 의가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 예수 메시아의 복음 안에서 계시되었다(1:17). 32절은 9~11장 결론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로마서 내용 전체의 결론이다.[12]

팔마 로벗슨(O. Palmer Robertson)은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불순종의 상태에서 긍휼의 상태로 이동하는 전체 패턴은 현시대에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13] 따라서, 바울의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6a)의 선언 속에 언급된 “온 이스라엘”(롬 11;26)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된 그의 교회이며, 이 교회의 주인공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롬 11;25)와 “유대인의 충만한 수”(롬 11;12)이며, 이 교회가 곧 메시아 왕국이요, 메시아 성전이요, 회복된 이스라엘이며, 나사렛 예수는 구약에서 예언된 종말의 메시아이며, 그 종말은 예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전 기간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1] Craig A. Blazing & Darrell L. Bock, 『점진적 세대주의』, 365.

[2] John Stott, 『로마서 강해』, 405.

[3] 위의 책, 405.

[4] John Stott, 『로마서 강해』 405.

[5] Tom Wright, The Climax of the Covenant, Christ and the Law in Pauline Theology (T. and T. Clark, 1991), 249. 재인용, John Stott, 405.

[6] Craig A. Blazing & Darrell L. Bock, 『점진적 세대주의』, 365.

[7] William Hendriksen, 『로마서 하』, 125.

[8] O. Palmer Robertson, 『하나님의 이스라엘 』, 198.

[9] David E. Holwerda, 239. 홀베르다는 “이제”라는 문구가 원본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얼마간의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지만, 오늘날 본문 비평가들은 이 문구를 괄호 안에 넣어 본문에 삽입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 문구를 포함시키는 것이 아마 원형적임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였다. 개역 개정 성경에는 “이제”(now)가 없지만, NIV등에는 있다.

[10] David E. Holwerda, 『예수와 이스라엘』, 240.

[11] 롬 라이트, 『로마서』, 526.

[12] 위의 책, 527-528.

[13] O. Palmer Robertson, 『하나님의 이스라엘 』,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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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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