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이아침 칼럼] 잠잠히 하나님만

사진: Jon Tyson on Unsplash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 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 다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시편 62:1~12)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서만 구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잠잠하게 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잠잠하다는 것은 나의 영혼과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구원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 앞에서 주님만 바란다고 했습니다. 바란다는 것은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려면 잠잠해야 합니다. 내 영혼이 잠잠하지 않고 고요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고 기다릴 수 없습니다.

생각을 단정하게, 마음은 고요해야 합니다. 생각이 단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생각이 나는지, 바깥에서 어떤 생각이 들어오는지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또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무엇을 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고 싶어 하고, 무엇이 담겨 있고, 무엇을 담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그에게서만 구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로부터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했으니 구원받았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말씀도 앞뒤 말씀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내가 영접했으니 구원받았다는 생각은 나로부터 구원받은 것입니다.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12~13)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 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요한일서 5: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자녀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돈이 그리스도가 아니고 오직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돈이 부족해도 예수님이 구원자, 건강이 안 좋아서 죽어갈 때에도 고쳐지고 회복되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자입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영접이란,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주인은 믿음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회개가 주인을 바꿉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주인이 바뀐 사람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그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은 선물입니다. 입술로 영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과 베드로, 수많은 사도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구원 때문에 잠잠해야 합니다. 마음이 단정하고 생각이 고요하지 못하면, 구원이 흔들립니다. 가장 필요로 하는 것, 가장 큰 문제를 이야기하라고 하면, 대부분 돈, 건강, 자녀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생각나지 않고, 세상의 염려부터 생각납니다. 그것은 구원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마음이 고요하면,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문제와 염려가 내 마음에서 분리됩니다. 그럼 어떻게 주님을 우리 마음에 채울 수 있을까요?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시편 62:3~4)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는 우리의 소속감과 안정감이 흔들리는 것을 뜻합니다. 일제히 공격해 옴으로써 목숨이 위태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 마음은 주님이 아니라 문제에 가 있는 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때 고요하게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이야기합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편 92:8)

하나님 앞에 마음을 토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라고 합니다. 마음을 토한다는 것은 마음에 담긴 것을 쏟아놓는 것입니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으로, 우리 마음을 통째로 드리라는 뜻입니다. 잘못된 것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통째로 드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 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시편 62:10)

포악을 의지하지 말고 탈취한 것으로 허망해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돈이 많아져도 마음을 거기에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는 세상에 마음을 둔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싶지 않아도 우리 마음이 그리로 갑니다.

시편 62편의 배경은 압살롬의 반역 사건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흙탕물이 맑아지려면 잠잠해야 합니다. 다윗은 압살롬 때문에 마음이 아주 시끄러워졌을 것입니다. 수치스러운 상황을 생각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분노가 올라오기도 하고, 마음은 그야말로 전쟁보다 더 괴로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고요함은 우리의 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 같은 이 마음이, 시끄럽고 복잡한 이 마음이, 온전하게 주님 앞에서 고요해지기를 중심으로 원해야 합니다. 그럼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고요해지기 어려운 이유가 이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으로! 진짜로 원해야 합니다. 부족해도, 연약해도 중심으로 주님을 원해야 합니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는 것 허용하기 싫다고, 마음을 통째로 주님께 드리고 싶다고 중심으로 원해야 합니다. 그럼 알게 됩니다. 마음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주님께서 어떻게 바꾸어 가시는지 알게 됩니다. 중심을 드렸을 때는 주님께서 반드시 일하십니다.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시편 62:9)

사람은 입김이고, 저울에 달면 입김보다 가볍다고 합니다. 우리가 수고하는 모든 것이 입김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물이 수증기가 되면 2000배나 늘어난다고 합니다. 입김의 양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포악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을 원어에 가깝게 직역하면 ‘갑질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갑질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힘의 논리로 무언가 이루려고 하는 욕구가 포악입니다. 탈취한 것으로 허망해지지 말라고 하는 말씀은 빼앗아서 벌어들인 것으로 무엇을 이루려는 허망한 욕구에서 벗어나라는 뜻입니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62:2)

돈 문제로 힘들어 할 때, 구원의 하나님의 손길로 돈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독하게 악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어서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건강이 나빠져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다시 건강해지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회중의 요구에 맞춰 설교가 말씀을 변형시키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이 반석이요 요새이십니다. 건강이 나빠졌을 때도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입니다. 오직 그만이 우리의 능력이고 반석입 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이시기에 마음에 하나님만 채워집니다. 하나님만 채워지려면 마음이 고요해야 합니다. 중심으로부터 그 고요함을 소원했을 때 하나님께서 채우십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편 62:5)

우리가 생각하는 소망은 중장기적으로 무언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돈을 모은다든지, 자녀가 잘된다든지 하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그분 자체입니다. 예수님만이 소망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우리의 소망이라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시편 62:11~12)

‘하나님이 한두 번 하셨다는 말씀’을 원어로 보면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내가 두 가지를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이깁니다. 온갖 맹수로부터 양들을 구합니다. 한 민족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지 못하면 우리가 권능을 만들어냅니다. 그 만들어낸 권능이 무너지면 죽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구조로 시대가 바뀌어가는 것 같습니다. 권능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골리앗을 만났을 때도 다윗은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했습니다. 칼과 단창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 마음을 다 쏟았더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인자함은 한결같은 사랑입니다. 그 인자함도 주님께 속했습니다. 마음이 고요해져서 하나님께만 능력이 있다고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일하 십니다.

호세아는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시대 사람입니다. 이사야는 남 유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불러 갑자기 장가가라고 하십니다. 아담도 중매하신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는 창녀 고멜을 중매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스스로 호세아라고 생각하며 답답해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저도 항상 호세아가 나라고 생각하며 말씀을 봤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호세아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고멜과 결혼하라고 하면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호세아는 순종하여 장가를 갔고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첫 아이 이름이 이스르엘, 둘째는 로루하마, 셋째 이름은 로암미입니다. ‘이스르엘’은 씨를 뿌린다는 뜻인데 ‘흩어버린다’는 부정적인 뜻이 강합니다. 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뜻인데 부정(No)을 뜻하는 ‘로’ 자가 붙었으니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는 뜻의 이름입니다. 로암미는 ‘암미’가 나의 사랑하는 백성이라는 뜻인데 역시 부정(No)을 뜻하는 ‘로’가 붙었으니 ‘나의 사랑하는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같이 살던 고멜이 다시 집을 나가 이른바 퇴물이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다시 불러 아내 고멜을 데려오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아내 고멜을 들판으로 데리고 가서 사랑을 받아들일 때까지 고백하라고 하십니다. ‘고멜 사랑해, 그래 너를 사랑해’ 하면서 그 사랑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고백하라고 하십니다. 호세아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 마음 아프지? 힘들지? 죽을 것 같지? 이제 내 이야기 좀 하자,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사랑했단다. 그런데 백성들은 나가서 세상과 벗하더라. 세상의 온갖 문제를 마음에 품고 내 생각은 요만큼도 안 하더라. 돈이나 자녀에 마음을 쏟더라. 세상의 우상은 마음에 다 심더라.”

그래서 호세아가 우리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자, 주님께 돌아가서 마음을 찢자고 말합니다. ‘인자하심은 주께 속하였으니 그 신실하신 사랑이 주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호세아 말씀을 읽을 때마다 힘들었는데, 저 스스로를 호세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았습니다. 제가 고멜이었습니다. 목사임에도 수많은 갈등, 분노, 욕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 기가 막힌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싶어서 ‘잠잠히 고요하게 나를 바라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하나님!” 중심으로 원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자체가 소망이 되어,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반석이 되어 역사하는 손길을 맛보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에필로그

고요하게 주님 앞에 있다는 것은 내 마음 모두를 주님께 쏟아붓는 것입니다. 일련의 환경, 사건, 어려움, 고통, 아픔, 바람, 욕구에 마음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중심으로부터 그것을 소원해야 합니다. 중심으로부터 그것을 소원하면 반드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일상의 일들을 가지치기해야 합니다. 많은 욕구를 가지치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해야 합니다. 중심으로부터 하나님을 소원해야 합니다. 실제로 소원하는 것은 돈이고 사업의 번창이고 건강이고 자녀라면, 하나님을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 그 소원은 결국 무너집니다. 바이러스 하나도 쉽게 이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입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을 소원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것이 존재 자체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중심으로 주님을 원합니다!” 그런데 잘 안 됩 니다. 그런데 잘 안 되는 것 때문에 갈등하며 다시 중심으로 주님을 원하는 것이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양심에 화인 맞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양심에 화인 맞으면 그것을 모릅니다. 세상을 마음에 품고, 세상에서 잘 된 어떤 것으로 선하고 좋은 것을 위해 봉사하고, 주님의 일에 써야겠다는 생각도 양심에 화인 맞은 것입니다. 주님이 마음에서 왕 되시고 가장 중요한 제1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의 경륜의 차이가 아닙니다. 중심의 문제입니다. 마음의 중심으로 하나님을 소원하고, 하나님이 채워지지 않는 갈등을 애통해 하며, 그 마음을 그대로 올려드릴 때,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 이 나를 구하시고 지키셨어, 하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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