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이아침 칼럼] 믿음을 보여라!

사진: Kelli McClintock on Unsplash

하늘에 뿌리를 내린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 됩니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위기를 해석하는 눈도 달라집니다. 나의 존재가 믿음의 존재라면, 무엇에 위기를 느껴야 하는지 그 대상도 달라집니다.

가정이 잘 되려면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생각과 의견이 조금씩 다르고 마음 씀씀이가 다르다 하더라도 화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흘러가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하나가 되고 행복한 법입니다. 그런데 국가적 상황을 보면 진영논리가 점점 강해져 갑니다. 내 편은 정의롭고 상대편은 불의하다는 진영논리입니다. 불편한 것은 많은 크리스천이 그 진영논리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크리스천이라면, 믿음의 정체성이 선명하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진영논리에 참여한다는 것은 저에게 맞지 않는 옷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 근본을 바꿀 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을 단정하게 하고 고요하게 만드는 것이 아직 어렵습니다. 마음이 일렁이고 분노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이 본디 내 마음에 계시면 마음은 밝아야 하는데 어두워질 때가 있습니다. 코로나19 문제로 반목과 대립이 생겼을 때 많은 곳에서 회개하라고 이야기하지만, 회개의 참된 내용은 분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먼저 선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사탄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먼저 분리시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분리시키고, 인간과 인간을 분리시키고, 계층을 분리시키고, 남자와 여자를 분리시킵니다. 생각도 분리시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담을 허무십니다. 화평케 하시고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하시고 머리 되신 당신의 생각을 듣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흘려보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는 앞으로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잠잠해진 뒤 수년 내에 다시 더 큰 바이러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확진 판정 받아도 입원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혼란이 커질 것입니다. 크리스천이라 해도 마음이 흔들릴 것입니다. 바이러스 문제가 삶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기 때문입니다. 그럼 문제가 닥쳤을 때 생기는 두려움과 공포를 크리스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박국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호와를 기뻐한단다! 영원한 생명을 주었다는 것을 알았단다!” 국가적 재난이 닥쳤는데도 하박국은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실제로 마음에 내려 앉았습니다. 이해했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구원이 가득했기에 하나님을 노래하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박국 3:16~17)

소출이 없고 열매가 없어 먹을 것이 없습니다. 소와 양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수년 내에 부흥을 일으켜 달라고 말한 뒤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부흥은 ‘무화과 나무에 잎이 무성하고 포도 나무에 열매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부흥을 이야기하며 ‘양이 없고 소가 없는 상태’가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하박국은 처소에서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몸이 떨렸다고 합니다. 나의 처소는 쉼이 있는 곳입니다. 안정감을 누릴 만한 집이라고 할 수 있고, 조금 더 넓혀서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처소에서 몸이 떨린다는 이야기는 집이 더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고 쉼을 얻을 수 있는 장소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가정이라는 안전기반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구원으로 기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존재의 문제입니다. 나의 존재가 그럴 수 있는 믿음의 존재인가, 아니면 믿음을 도구 삼아 살아온 존재인가! 우리 존재가 분명하게 규명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존재일 때 천국 시민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3:2)

하박국은 하나님께 수년 내에 주의 일을 부흥하게 해달라고,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말아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마치 환난 날을 기다리고 있고 반드시 환난 날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교회가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해달라는 이 말씀을 자주 인용합니다. 이 말씀의 맥락을 이해하고 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일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박국이 살던 시대, 남유다에는 불의한 자가 득세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불의함에도 오히려 승승장구하며 기득권을 누리는 데 심판은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잘 산다고 오해하고 살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심판하신다고 하셨는데, 그 심판의 도구가 바벨론이었습니다. 남유다보다 더 불의한 바벨론을 통해 남유다를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그 바벨론도 심판하십니다. 20여 년 뒤에 남유다는 실제로 망합니다. 그런데도 하박국은 그 주의 일이 부흥케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우리도 이 부흥을 경험해야만 우리가 생각하는 부흥이 일어납니다.

부흥은 히브리어로 ‘하야’입니다. 기본동사로 ‘재생하다, 다시 살린다’는 뜻입니다. 명령어로 ‘하예후’라고 합니다. 영어로 ‘Revive’ 입니다. 남유다를 부흥케 하옵소서, 한 것은 다시 살려달라는 말인데 다시 살리려면 먼저 심판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죽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존재에 관한 문제이지 결의나 다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땅에 대한 우리의 생각, 우리의 가치관, 우리를 휘감고 우리를 이끌어갔던 땅의 가치들이 먼저 심판되어야 합니다. 하박국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진노의 날에도 주님의 긍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박국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복입니다. 불이 났을 때 119로 전화할 수 있는 것은 복입니다. 한밤중에 위험한 상황에서 경찰이 온다면 복입니다. 위기 가운데 주님을 부르는 이유는 위기상황에서 구해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이라면, 실제 주님의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라면, 위기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에 소와 양이 없는 상황을 위기로 느낍니다. 그러나 만약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연합해 거듭났다면, 하늘에 뿌리를 두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위기로 느끼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기반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육신의 목숨이 위험해질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삶의 기반, 관계, 재정, 경제활동, 안전장치들이 무너질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면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코로나19가 닥치니까 존재의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어디에 목적을 두고 살아왔는지 보입니다. 목회 데이터연구소 조사를 보니, 전체 크리스천의 63%가 코로나19를 전염병으로 이야기하고, 37%는 영적인 시각으로 해석한다고 합니다. 유튜브에 나오는 수많은 회개의 내용은 대부분 우리가 사는 이 땅의 기반이 흔들릴까봐 회개하고 있습니다. 땅에 가 있는 우리의 존재를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이 흔들리는 것 때문에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큰일납니다. 사탄이 우리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존재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보아야 합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마음의 중심에서 주님을 향해 춤출 수 있는 사람이 크리스천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이 수년 내에 당신의 부흥과 재생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삶이 흔들리는 것 때문에 기도하면서 그것이 회개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말씀 깨달았고, 영향 받고 감동 받았다고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존재를 돌이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 존재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고 엎어지는 쪽을 보니 알았습니다. 하나님! 이 존재를 돌이킵니다” 세상에 가 있는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마음 두고자 하는 진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이 떨리는 두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럼에도!’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즐거워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늘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1)

주님께서 ‘나의 힘이 되신 것’이 아니라, 주님 자체가 ‘나의 힘’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힘을 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존재가 바뀌어야 이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명기 6:5)

사랑은 무엇입니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을 주님께 다 써버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데 쓸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힘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힘을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와 밭에 다 써버렸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다 쓰며 산다는 것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4~6)

내 발이 사슴처럼 높은 곳에 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늘보좌에 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우리 마음이 하늘 보좌에 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늘에 계신 주님께 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힘쓰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높은 곳에 있다는 말씀은 땅에서 내가 높아졌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믿음의 본질은 땅의 가치가 죽고 하늘에 계신 주님께 마음을 다 쓰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을 축복하며, 세상을 향해 주님의 말씀을 권면하고, 주님의 마음을 흘려보내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필로그

위기 상황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믿음 주셨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면 믿음이 오염됩니다. 이 땅을 기반으로 살려고 했던 마음, 이 땅의 것을 지키려고 전전긍긍했다면 결국 무너집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이 채워지는 것이 위기입니다. 남유다를 치시고 심판하시고 다시 재생시키는 하나님의 일을 수년 내에 하옵소서! 이 하박국의 고백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보라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일깨워져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채우고자 했던 그 많은 것들! 주님이 아닌 다른 것들! 그것이 신앙의 위기입니다. 그 마음을 돌이켜 기도할 때 이 땅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하늘에 뿌리를 두고 믿음을 보여라.
이 나라와 민족을 고치시옵소서.
거룩한 무리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너는 어떠한 존재이니?
믿음의 존재이니?
거룩한 존재이니?
하나님의 물음 앞에
예, 주님!
저를 고치시옵소서.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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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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