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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이아침 칼럼] 계속 신뢰하기

▲ 사진: Pablo Heimplatz on unsplash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베드로전서 5:8~11)

하나님을 계속해서 신뢰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어떻게 실제 몸으로 익어지게 되는지 베드로전서 말씀을 통해 볼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좋으신 분이라면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계속 신뢰하겠습니다’ 하고 달려가셔야 할 것입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하나님을 순결하게 바라본다고 생각했는데 오류가 참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성실함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하는 사람이니까,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 비전을 크게 가져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깊이 만나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꿈을 갖고 비전을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을 사랑하셔서 양에게 풀밭이라는 비전을 주셨다면, 그래서 양이 비전을 품고 푸른 풀밭을 찾아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자를 잃어버립니다. 비전은 주님께서 갖고 계십니다. 양이 푸른 풀밭을 비전이라고 여기면 길을 잃고 이리의 먹이가 됩니다. 양은 목자를 따라갈 때 푸른 풀밭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야 하는 인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계속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좋으신 분이다, 나는 그 주님을 신뢰한다! 이렇게 우리 믿음의 패턴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비전을 따라간다며 비전에 모든 에너지를 다 쓰는데,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럼 그분이 우리를 푸른 풀밭으로 이끌어가십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전서 5:8~9)

마귀는 우리를 적으로 삼고 공격합니다. 우리도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믿음의 빛깔을 보고 수정해야 합니다. 마귀도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도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 나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물불을 안 가리고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면 우리는 당해낼 재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대적해야 합니까? 유일한 무기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대적해야 합니다. 비인격적이고 비정상적인 것만을 귀신 들렸다고 보면 큰 오해입니다. 인격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즉 정상적으로 보임에도 사탄에게 붙들려 있는 것을 보아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은 용맹과 순결함과 거룩함이 있었습니다.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시심(詩心)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소년 때부터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남달라서 용맹스러웠습니다. 한밤중 산골짜기에서도 양을 구하기 위해 맹수와 싸웠습니다. 다윗이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리며 한 민족을 구했고 다윗은 수많은 전쟁에서 능력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의 마음에도 음란함과 교활함과 잔혹함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 날 다윗의 마음에 갑자기 죄가 들어와 죄를 짓게 한 것이 아닙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죄악 중에 출생했고 어머니가 죄 중에서 자신을 잉태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태생 자체가 죄덩어리라는 고백입니다. 죄덩어리 어머니에게서 죄덩어리인 내가 나왔다는 것을 빨리 깨달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어긋나면 우리의 죄성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무언가 깨달을 수 있는 ‘나’를 신뢰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내가 생산자이고 공급하는 사람인 것처럼 여기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의 판단, 나의 경건, 나의 어떠함 때문에 교만하고 우쭐해 하는 것을 봐야 합니다.

근신하고 깨어 있으라는 단어를 원어로 보면 ‘술 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맑은 마음, 맑은 생각입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생각이 단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계속 신뢰하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고요하고 단정한 마음은 우리의 결심으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본심과 본성 자체가 죄악 덩어리입니다. 죄악 덩어리는 주님의 은혜 아래 있을 때만 주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됩니다. 은혜의 손길을 거두시면 여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힘과 에너지를 주님께 쏟겠습니다! 주님을 신뢰합니다! 계속해서 주님을 신뢰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님의 손길만이 우리를 새롭게 한다는 것을 신뢰한다면, 주님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지 않는 마음과 능력을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린도전서 1:8)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디모데후서 1:12)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며 찾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물거나 삼켰다면 우리는 어떤 상태가 될까요?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어서 사회생활도 못하는 어떤 상태가 될까요? 아닙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귀신은 떠나갈지어다!” 큰소리로 그렇게 기도해도 능력은 안 드러날 것입니다.

비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아주 인격적인 상태임에도 귀신에게 물린 자가 많습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귀신을 대적하는 것은 그냥 주술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상황과 조건과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굳게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베드로전서 5:9)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에는 우리도 포함됩니다.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 모두 해당됩니다. 우리 실존은 모두 세상에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사람 중에 모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영원한 영광에 우리가 참여하게 하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심을 받으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마음이 함께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 걱정, 근심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세상에 있지만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심 받은 것입니다. 아무리 흉흉한 일이 일어나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주님과 연합되어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그 일을 방해합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공격해서 대적한다는 말은 우리 마음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세상에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이 우리 마음에 붙어 있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리더십들과 ‘분별’에 대해 나눴습니다. 공동체가 실제 삶에서 무엇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인지, 악령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많이 기도한다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해 있는지, 땅에 속해 있는지를 보면 압니다. 하늘에 속해 있다면 속사람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거듭남이라고 하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로마서 8:5~7)

공동체 모임에서 땅의 언어가 많고 세상 이야기가 많다면, 성령이 아니라 악령의 영향이 많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빛의 천사로 위장합니다. 괴상한 모습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도 옵니다. 오히려 괴상한 모습으로 오는 것은 드물고 빛으로 자주 오기에 우리는 광명의 천사를 보고 우와하고 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구별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건강이 악화되어서 3주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앞이 캄캄해질 것입니다. 잘 되던 사업이 갑자기 망했고, 자녀가 갑자기 사고라도 치게 되면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합니다.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 온 사탄은 어떻게 이야기할까요? 믿음의 경륜이 있고, 좋은 교역자라면 “ㅇㅇ집사, 염려하지 마. 3주? 아니야! 주님께 올인해 봐, 그럼 그 병 고쳐주실 거야!” 이것이 위장한 광명의 천사의 말입니다. 그럼 진짜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게 들릴까요? “ㅇㅇ집사, 그 건강 회복되지 않아도 영원한 생명 얻을 수 있어! 건강 망해도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길 있잖아. 그 건강 때문에 마음 흔들리지 말고, 마음 빼앗기지 말고 주님께 마음 붙여!”

구별됩니까? 믿음은 이것입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것 아니야~ 그 주님 바라봐~” 그럼 주님께서 그 집사님이 푸른 풀밭에서 할 일이 더 남았다고 생각하시면 다시 건강 주실 것이고, 놀라운 은혜 가운데 더 들어가게 하시려면 빨리 데려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지고 실감이 나야 합니다. 사탄에게 덥석 물려서 “이것이 부족하니 죽을 것 같아요! 내가 지금 복 받는 인생이 아닌 것 같아요!” 하고 말하면서, 땅의 것으로 내 존재를 증명하고 내 비전을 이루려고 하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사탄의 속임수로부터 이제는 빠져나와야 합니다.

“염려하지 마! 주님이 함께 하잖아! 주님이 능히 고칠 수 있어!” “믿음의 사람이 무슨 염려야! 주님이 하실 줄 믿습니다!” 제가 그렇게 말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그것에 마음 빼앗기지 마.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을 이미 받았어. 비전은 주님께서 갖고 계셔. 주님이 하심을 바라보자니까! 병이 낫는 것이 구원이 아니야! 우리는 주님 따라가는 인생인 거야!”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어릴 때 아버지 야곱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질투가 난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고 요셉은 결국 인신매매를 당해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요셉은 팔려가면서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정말 많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탈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자식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주님께 구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기어이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득죄하리요, 하면서 바르게 행동했습니다. 결과는 다시 감옥이었습니다. 그쯤 되면 낙망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그때쯤이면 하나님을 원망해도 하나님께서 좀 봐주셔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그때에도 요셉은 믿음을 씁니다. 주께서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감옥에서 나와 마침내 총리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듭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주이신 주님이 친히 하시니까,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고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에필로그

주차팀 남자 집사님들을 축복해주면서 생각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40대, 50대, 60대 남성들의 어깨를 보고 등을 보면 안쓰러움이 밀려옵니다. 안타까움과 슬픔, 분노의 마음도 있고, 중보할 수 있는 마음도 주십니다. 남성들은 완고할 정도로 고집이 셉니다. ‘이 고집이 무너지면 내 존재가 무너져!’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집이 세면 하나님께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사회에서는 듬직하게 쓰일 수 있겠지만 믿음 안에서는 큰 약점입니다. 남성들끼리 쭉 앉아 있으면 견주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문제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숨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치고자 하시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견주는 마음, 접어놓은 마음, 겉으로 좋으니 괜찮다고 여기는 그 마음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사역의 자리입니다. 삶의 모든 구간에서 100% 믿음을 쓰는 믿음을 구하셔야 합니다.

여리고성은 우리의 지략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무너집니다. 성을 일곱 바퀴 빙빙 돌고 마지막 날 나팔 불고 소리 지르면 성이 무너진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밑도 끝도 없이, 법궤를 메고 바다로 들어가라고 하시면 두렵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할수록 저는 긴장합니다. 제 생각과 맞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할수록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 말씀대로 했더니 여리고성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을 그대로 믿었던 이스라엘, 여호수아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믿음을 100% 쓴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성은 점령하지 못합니다. 믿음을 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능력을 가지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신뢰해야 삽니다. 인생의 전 구간에서 우리를 욱여싸는 문제들이 있겠지만, 우리를 삼키려고 우는 사자의 입이 코앞에 있을 수 있지만, 그 두려움 가운데 우리의 시선은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늘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계속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럼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하게 하십니다. [복음기도신문]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3:2)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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