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이아침 칼럼] 나의 왕과 함께

사진: Yannick Pulver on Unsplash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로새서 2:2~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1~4)

“이것이 있으면 참 좋아, 이것이 없어서 아쉽네.” 하고 말하는 것은 모두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돌이켜야 합니다. 하늘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늘에 뿌리를 내리면 정말 안심이 되고, 하나님의 손길을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로새서 3:1)

다시 살리심은 곧 거듭남입니다. 다시 살리심을 받으면 위의 것을 찾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계신 것을 봅니다. 거듭나지 않고서는 위의 것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실존은, 거듭났음에도 위의 것을 찾는 일에 주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갈 것이라 다짐해도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거듭났으면 생각과 마음을 하늘에 두고, 반드시 위의 것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다 계십니다. 그런데 왜 위의 것을 찾고 거기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보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땅의 것을 생각하면 안 되나? 반드시 하늘의 것만 생각해야 하나?” 이런 생각 안 하십니까? 위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그 이유가 3장 3절입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로새서 3:3)

우리가 이미 죽었고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안에 감춰진 생명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서 3:4)

위의 것을 찾으면 결국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실감이 잘 안 납니다. 보물과 같은 말씀인데도 실감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을 경험한 사람은, 부활과 승천을 경험해 함께 하늘에 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노라 했던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예수님께서 앉아 계시는 것을 보는 것이 신앙의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는 아무것도 끼어 있지 않습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 안에 계신 예수님, 예수님 안에 계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의 것을 찾으면 반드시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된 것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 안에만 생명이 있는데 아버지와 하나가 된 예수님을 통해 그 생명이 나에게 온다는 말씀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할 때만 생명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에서 땅의 것을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 있지 않은 것처럼, 우리와 주님 사이에도 아무 것도 끼어 있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은 허물과 죄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려면 우리와 주님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 있지 않는 것을 봐야 합니다. 돈이 끼어 있지 않고, 인정욕구가 끼어 있지 않아야 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자녀가 끼어 있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탄에게 크게 속은 것이 있습니다.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재산을 잃는 것입니까? 건강을 잃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식이 잘못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죽음과 사탄이 말하는 죽음이 다릅니다. 사탄이 말하는 죽음은 육신이 죽는 것입니다. 사탄은 육신이 죽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고 우리를 속였습니 다. 그래서 육신을 유지할 수 있는 재물, 쾌락, 인정욕구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입니다. 치명적인 속임수입니다. 반면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단절된 것을 죽음이라고 가르칩니다. 죽음이란 육신의 옷을 벗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 있지 않은 것을 보게 되면 사탄이 주는 두려움이 떠나가고 영원한 생명을 보게 됩니다.

가끔씩 정말 비참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교회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안 풀리는 사람 있습니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형제자매도 없고,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 라면으로 끼니를 이어가기도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돈도 없고, 건강도 안 좋고, 관계도 틀어집니다. 잘 믿어도 그런 사람 있습니다. 그래서 하소연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그런 어려운 일이 계속 생겨야 합니까!”

그런데 제 마음에 굳게 새겨진 것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해도 영원한 지옥불보다는 괜찮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마음에 오면 그런 일도 그렇게 해석됩니다.

아가서는 목동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갈릴리 서남쪽 수넴지역의 여인입니다. 포도원에서 일하고 있는 여인이라 땀을 많이 흘리는 구릿빛 피부에 머리는 곱슬머리일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인상과는 조금 다를 것입니다. 그 여인이 목동과 사랑에 빠졌는데 목동이 어느 날 먼 길을 떠납니다. 지고지순한 여인은 목동을 기다리고, 어느 날 드디어 목동이 돌아왔는데 술람미 여인은 그 목동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목동이 왕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솔로몬입니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의 신분도 바뀝니다. 존재가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구간으로 오셨습니다. 공생애는 초라하게 사셨습니다. 고통 가운데 별 볼 일 없이 사셨습니다. 여러분은, 그 예수님을 닮아가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은 결론을 알고 있으니 아멘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멘이라고 하셔도 속마음으로 계속 땅을 생각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보잘것없이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것을 아니까 아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영광 중에 오십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을 보게 되면 그것이 일깨워집니다. 재림하시는 그 예수님이 나의 예수님이라는 것! 그래서 지금 아무리 힘들고 곤고해도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생명의 역사! 하나님 아버지 속에 있는 생명이 실제되는 역사가 예수님 안에 감춰졌다는 말씀이 일깨워집니다. 믿음은 언어의 유희가 아닙니다. 고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을 만난 것처럼 우리도 실제로 재림하실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하늘에 있어야 하고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기에 찾아야 합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로새서 2:2~3)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이 감춰져 있다고 합니다.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취할 수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모든 보물이 그리스도 안에 감춰져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주시면 좋아합니다. 돈이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와 지식을 주겠다고 하면 실감이 안 날 수 있습니다. 속아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땅의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이라고 속아서 그렇습니다. 재정이 풍성해지면 복 받았네요 하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런데 지혜와 지식이 풍성한 것에 대해서는 복 받았네요 하고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어야 이 지혜와 지식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이 나에게 왔어! 예수님의 생명이 나에게 왔으니 이 땅에서도 하늘의 지혜와 지식이 나를 살게 해! 이것이 보물이고 보화야!” 예수님을 관계적으로 알기를 축복합니다. 하늘에 마음을 둬야 하는 이유는 하늘에 지혜와 지식이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돈보다 지혜와 지식이 더 좋습니까? ‘네’ 하고 대답하셔도 속은 섭섭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 더 주시면 안 될까요 하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식은 어떤 상황이나 관계, 사건이나 사물, 환경 등을 알아보는 안목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풀어낼 수 있는 것이 지식입니다. 지혜는 그 지식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안다고 곧 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이 때로 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 그것을 어디서 배웁니까? 세상에서 그것을 배웁니까? 하나님을 기뻐하거라! 그럼 너희 소원을 이루신단다! 그것은 또 어디서 배웁니까? 세상에서는 못 배웁니다. 주 안에서 배우고 깨닫고 지식으로 배웁니다. 그럼 삶에서 그 지식을 쓰고 삽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지혜는 세상에서 그 지식을 쓰는 것입니다.

민수기 13, 14장에 12명의 가나안 정탐꾼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탐한 뒤 보고하는 내용이 다릅니다. 10명이 보고한 내용은 부정적인 보고였을까요? 객관적이고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보고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정적인 보고였다고 말합니다. 저도 한국, 미국, 중국, 러시아, 북한의 상호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은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근거를 갖고 이야기해도 부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0명의 정탐꾼 이야기가 그런 것입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믿는다고 하시면 안 됩니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떤 보고를 했습니까? 지금 시대에 목사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보고했다면 교회에서 쫓겨날 수 있습니다. ‘저 목사 양반,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네’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생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수기 14:8)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에게 그 땅을 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해 보니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아낙 자손이라는 거인족이 살고 있고 철기문명이고 군대가 있고 전차도 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백성은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길 수 있는 근거가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한낱 메뚜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근거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면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지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지혜가 되려면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문제보다 하나님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상황보다 하나님이 먼저였습니다. 객관적인 정세 분석보다 하나님이 먼저였습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아람어로 ‘지금 듣고 있는 귀’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토록 기뻐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듣고 있는 귀’인 ‘지혜’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아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고 위의 것을 찾는 사람에게 허락되는 지혜입니다.

다윗이 괴나리봇짐 지고 심부름 가서 형들이 싸우고 있는 전쟁터에 가서 본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거인 골리앗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사울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가 현실이었습니다. 목동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을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여호와가 자신의 반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삶에서 실제가 됩니다. 돈이 없는 것도 맞고, 문제가 생긴 것도 맞지만 그것보다 하나님께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리앗에게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나아간다고 당당하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실제 되는 것이 지혜입니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되면 문제가 됩니다. 주님과 실제 사귐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이런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란다. 마음에 그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란다! 나를 기뻐하거라!” 그런데 우리는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래서 금식하고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주님을 기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려는 마음을 돌이키며 하늘에 뿌리를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이 감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봐야 합니다. 생각과 마음이 하늘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사역도 그냥 하시면 안 됩니다. 사역을 통해 한풀이를 하셔도 안되고, 우쭐대셔도 안되고, 무의미하게 하셔도 안 됩니다. 사역은 주님을 바라보는 영광스러운 통로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영광이 내 안에 채워지도록 기도하며 사역해야 합니다. 우리가 통로이니까 주님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하면 반드시 문제 생깁니다. 주차 사역이든, 식당 사역이든, 영광스러운 통로로 세워지지 않는 내가 보일 때, 그래서 무언가 부족한 것이 보이고 관계가 어려워지는 것 같으면, 그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주님으로 채워야 한다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님을 더 갈망하라고 사역을 허락하신 것인데 무엇을 더 바라며 사역을 한다는 것입니까? 우리 인생의 기쁨의 근거는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에필로그

주님만이 나의 힘이라는 것! 세상에서는 못 배웁니다. 주님 안에 들어올 때만 주님이 나의 반석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가 안 됩니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는 그 무엇보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예수님께서 앉아 계신 것처럼,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와 주님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 있지 않도록 위의 것을 바라보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십니다. 말씀의 신비를 경험하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잘 안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마음에 주님이 제1현실 됐을 때, 나의 산성, 나의 요새, 나의 피난처, 나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됩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1년 예산을 세우지만 우리 교회는 1년 예산을 세우지 않습니다. 교회 시작할 때부터 예산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산 세우면 우리가 주인되니까, 그래서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것 경험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한 번도 궁핍해 본 적이 없고 한 번도 선교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 개척하고 아이들까지 20여 명, 그러나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비 지원하며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곤란하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욕구를,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깨닫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의 언어를 기뻐하실까? 이상하지요? 주님을 깊이 생각하는데 기쁨이 없는 것은 왜 그럴까요? 우리의 생각이 중간에 끼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옳은 말, 바른 말, 날카로운 지적으로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깨닫기를 축복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옳은 말합니다. 하늘에 뿌리를 둔 생각과 마음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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