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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국 칼럼] 아버님은 주님을 영접 하셨나요?

▲ 사진: Szilvia Basso on Unsplash

아버님은 주님을 영접 하셨나요?

간혹 교제 가운데 내게 주어지는 당혹스러운 질문이다. 특히나 장례식장에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저 마음이 먹먹해져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버님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아버님은 집안의 가난 때문에 중동의 일터로 내몰리셨다. 아버님은 척박한 인생 속에서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한 번도 외국을 나가보지 못했던 그 시절 ‘생계’ 때문에 그 멀리 타향 땅을 향했던 것이다.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니고 그저 새끼들 목숨부지 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한 대한민국 아버지들이 겪어야 할 그 길에 서신 것이다. 대부분의 아버님들은 공부시켜야 할 자녀를 위해, 보필해야 할 부모를 위해 그렇게 중동 땅을 향해 가셨고 일했고 헌신하셨다.

힘겨운 노동으로 사시다 어느날 한국에 들어오셨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건강검진을 받으시면서 머리에 꽈리처럼 부푼 뇌혈관 하나를 발견했다. 수술하지 않으면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 때가 40대 중반이셨다. 무식하고 가난한 우리 가정에 그 소식이 그나마 ‘해뜰날’이 찾아온 현실에 다시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이 되리라고는 가족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담당의는 수술해도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대로 두면 언제 터져 비명횡사 하실지 모른다고도 말했다. 결론은 ‘수술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버님은 40여년 전 수술대에 오르셨다. 그것이 아버님과 정상적인 대화의 마지막이 될 줄은 우리 가족은 전혀 몰랐다. 수술 후 후유증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5세 어린아이가 되어 버리셨기 때문이다. 가장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 할 그 때 아버지는 우리 가정의 또 다른 ‘한 아이’처럼 되셨고 어머니에게 또 하나의 큰 짐이 되었다.

우리는 그때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 같다. 한번은 4식구가 지하 단칸방에 살 때 삽시간에 쏟아지는 빗물로 인하여 새벽에 모두가 방으로 쏟아진 오물에 흠뻑 젖어서 얼마되지 않은 살림을 햇볕에 말리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동사무소에서 연탄 30장과 3만원을 지급받았던 것 같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춥다.

그렇게 다 큰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아버님과 함께 살아가는 내 삶의 무게는 큰 짐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항상 필요한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혼자 내버려 두실 수 없었고 하나하나 챙겨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누나는 생계 때문에 일터로 가시고 나는 학교가 끝나는대로 집으로 와서 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아버지는 그렇게 3년을 더 사시다가 결국에 길에서 쓰러져 돌아가셨다. 그때 남겨진 우리 가족은 ‘눈물보다는 망연자실’하며 장례식 내내 앉아있던 기억이 난다. 철 없이 날 뛰던 내게 아버지의 죽음은 슬픔이 되어야 하지만 슬픔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이 아버지의 무능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곁을 홀로 떠나셨다.

난 꿈이 없었고, 내 마음 속에 텅 빈 허무는 그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는 청소년기를 지나가게 했다. 하지만 영원 전에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그 택하심이 찾아오셨다. 지치고 힘든 삶을 살던 그때 난 복음을 만났다. 복음을 만나고나니 삶이 새롭게 보였다. 슬퍼했던 일들이 기쁨이 되고, 절망했던 일들이 다시 소망이 되었다. 소망되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이다. 그야말로 나를 찾아오신 주님은 내 안의 모든 절망과 소망이 없던 나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셨고 그 은혜를 따라 다시 살게 하시는 ‘은혜와 평강’의 복음을 주셨다.

복음을 만난 후 나는 가장 먼저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주님은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홀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세 아이들, 누님의 가족들, 장모님에 이르기까지 주님의 신실하심은 계속해서 나의 가족 안에서 역사 하셨고 모두 복음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하며 성령의 인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대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니 나는 더욱 주님께 감사했다. 이런 감사가 있을 때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로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 길이 없고, 내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그 때 우리 가족 모두는 죄인의 길에 서 있었다. 그래서 아버님의 구원에 대한 질문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회한이 어쩌면 ‘가족의 구원’을 위해 더욱 기도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다는 생각이든다. 시간은 정해져 있다. 세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질 심판의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선교도 시간도 주님 오심으로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인데 그 때가 오기 전에 ‘가족의 구원’을 위해 시간을 아껴야 함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절실하게 느낀다. 사업은 번창하고, 하는 일도 잘 될 때 어쩌면 더 중요한 건 가족의 구원을 위해 시간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사업이 어렵고 하는 일도 잘 안 될 때 어쩌면 이 시간이 가족의 구원을 위해 주님이 주시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때는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그 때는 주님만 아신다. 이 정해진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 가족 중 누군가가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어서야 할 때인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절망하는 이때가 오히려 기회의 때이다. 초대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성령의 역사로 일어났고 그 출발은 ‘박해’였다. 고난과 역경이 찾아온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깊이 숙고하며 살아가야 할 때이다. 나는 오직 복음을 위해 이땅에 존재하는 선교적 존재요 그리스도인이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은 지금도 ‘가족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삶으로 함께 살아주기를 당신에게 기대하고 계실지 모른다.

난 기회가 없었나? 어쩌면 나도 그 기회를 내려놓지 않았을까?
주님은 여전히 그 구원의 문을 열어 놓고계시지만 스스로 ‘세상 일이 너무 바빠’ 이 기회를 쓰레기통에 처박는 일이 없기를… 그리고 이 기회의 시간을 붙들고 가족의 구원을 위해 힘써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복음기도신문]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조상국 | 1997년부터 ‘mission’이라는 의류 유통업을 운영해 오고 있다. 2017년에는 oikonomos mission 단체를 설립하고 비즈니스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청지기’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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