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호 /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2020년이 시작되면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의 방학이 끝나면 자격증 취득 공부에 집중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됐고, 잠시 이러다 말겠지 했던 생각과 다르게 확진자가 늘기 시작하면서 마을 이장님의 잦은 방송과 함께 수시로 긴급문자가 날라 왔다. 더불어 아이들의 외출이 자제되었고, 학원이 끊겼고, 곧이어 학교 개학마저 연기되었다. 아이들보다 개학을 더 기다렸던 내겐 일상생활의 불편함이 밀려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자리에 누울 때까지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되어 언성이 올라가고 힘은 점점 빠져갔다.
그때 주일학교 부장선생님의 상황을 듣게 되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마음만 급급해 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난 다음세대를 훈련하는 빛의 열매학교를 다녀온 경험으로 대뜸 부장님께 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보내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과 함께 말씀기도를 해보겠다고 했더니 부장님은 반가워하시면서 그날 바로 세 아이들을 우리 집으로 보냈다. 더불어 주일학교 아이들 2명까지 함께 왔다.
말씀기도를 하기 위해 거실 책상에 둘러앉아 보니 연령도 다양했다. 어른 2명과 아이들 7명이 둘러앉게 되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하여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실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내심 주님이 나를 통해 다음세대에 일하시는구나 잔뜩 기대도 되었다. 그러나 주님은 다음세대가 아닌 나를 일깨우고 계셨다.
아이들은 성경을 읽어가면서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말씀기도를 즐거워했고 예배 인도와 찬양 인도에도 전심으로 임했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매일 그 시간에 거실 책상에 앉았다. 다음 날은 안 오겠지 하면 여전히 아이들은 가방에 성경과 노트를 짊어지고 초인종을 눌렀다.
어느 날 말씀기도 시간 노아의 아버지 라멕을 만나게 해주셨다.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창 5:28~29) 저주받은 이 땅 가운데 죄 된 육신의 몸으로 수고롭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하며 안위하리라 하며 ‘노아’라고 불렀다. 라멕은 세상에서의 마지막 위로와 안위를 기다렸다. 그것은 바로 모든 세상의 생명을 쓸어버리는 홍수였던 것이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 왜 라멕에게는 그렇게도 기다리는 위로와 소망이 되었을까? 그럼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기다리는 자인가 묵상하게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나누게 되었다.
“선생님! 노아의 홍수처럼 코로나로 예수님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코로나바이러스로 세상은 떠들썩했고 사람들은 죽음 앞에 두려워하고, 경기 침체로 근심과 염려를 하고 있었다. 이런 막막한 현실 앞에 나 또한 답답해하면서도 입으로는 ‘예수님 빨리 오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모순된 내 신앙을 보았다. 어쩌면 세상에 홍수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 마땅히 일어날 환난과 같은 일인데 왜 믿음의 눈으로 이 모든 현실을 바라보지 못했는지 아이들 앞에서 부끄러워졌다. 두렵고 떨렸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기에 오늘 우리의 두려움이 끝나고 이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롭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이시며 위로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기다리게 하셨다.
“예수님 빨리 오세요!!” 이 두려움 없는 아이들의 기도에, 세상 끝의 환난이 예수님 다시 오심의 신호인 것을 깨닫는다. 나는 어떤 존재로 무엇을 기다리는 자인지 다시 보게 하는, 말씀이 실제 된 시간이었다. 나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는 신부된 교회이다. 이 현실이 두려움이 아닌 기쁨이 되는 믿음을 지닌 자다. 마라나타! [복음기도신문]
정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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